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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가 김태연

비축생활 VOL.16 기지가 사는 세상

by 문화비축기지

낯설게 보는 작품 한 봉지

공예가 김태연

Plastic bag

김태연 작가의 손에서 비닐봉지는 실이 되고 직물로 변한 뒤 이윽고 작품이 됐다. 일회용품으로 전락해 사용 유무와 상관없이 버려지는 폐비닐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공예가 김태연의 작품 세계와 생태 환경을 보는 시선에 대해서.




Plastic Flower

작품에 사용하는 비닐은 주로 어디서, 어떻게 수집하나요.

요즘은 요일에 맞춰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가면 폐비닐을 금세 모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비닐봉지를 따로 수거하지 않았죠. 작품 ‘Plastic Flowers’를 준비하며 지인들에게 비닐봉지와 꽃 그림을 요청했고, 수거한 비닐봉지로 실을 만들었습니다. 그 실로 그림을 짜 만든 태피스트리tapestry를 작업할 때 꽃 모양을 넣었고요. 무엇보다 비닐이란 재료의 가능성, 하찮게 여기는 물건의 변화를 보다 직접적으로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시를 마친 후 지인들에게 각자가 보내준 비닐로 만든 태피스트리 작품을 선물했지요.


사용했던 비닐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비닐은 무엇인가요.

검정 비닐봉지예요. 워낙 흔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잖아요. 저 역시 작품에 비닐봉지를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우연히 가방을 만들 때 비닐봉지로 만든 실을 사용해봤는데 ‘반전 매력’을 느꼈어요.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변화가 극적이더라고요. 또 서로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화려한 비닐은 검정 비닐과 섞이면서 서로를 돋보이게요. 그래서 가장 ‘애정’합니다.


Plastic Flower

이전 인터뷰를 보면 ‘환경을 위한다’는 거대한 담론보다 그저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정도의 태도로 여겨집니다. 환경을 염두에 둔 작가님의 일상은 어떤가요.

종종 저를 소개할 때 ‘업사이클링 작가’라는 말을 붙이는데, 마냥 달가운 수식어는 아닙니다. 작품에 따라서 새 비닐을 사용하기도 하니까요. 작품을 만들면서 버리는 부분을 최소화하려 노력하지만, 어느 정도 타협은 필요해요. 작품에서는 욕심을 내는 한편으론 일상에서 물욕이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는 게 중요하겠죠.


Plastic Island

사용한 비닐을 실로 만들어 다시 패브릭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이 자연의 순환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등의 환경문제가 작가님의 작품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요.

초창기 작품에 사용한 실의 재료는 어릴 적부터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 물건이었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환경에 이로웠고, 고유한 실을 만들고 싶다는, 저의 시그너처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비닐을 주재료로 쓰다 보니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됐어요. 얼마나 많은 비닐이 버려지는지, 상상도 못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를요. 비닐로 가방을 만들 때 마음이 복잡했어요. 쉽게 버려지는 물건을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바꿔보자는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요즘처럼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더 보태는 게 옳은 일일까 하고요. 이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환경을 위한다는 게 정말 환경을 위한 일인지 두 번, 세 번 고민해요.


Plastic Flower

요즘 진행 중인 작업은 무엇이고, 앞으로의 계획은요.

직물을 짤 때 자투리는 필연적으로 생깁니다. 작업 후 남은 비닐을 묶어서 매듭이 있는 날실로 만들어 틀에 걸고 짜봤어요. 매듭이 직물 표면에 도드라지게요. 그랬더니 자투리를 연결한 매듭이 작품의 포인트가 되더라고요.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나 싶었어요. 이전에 버렸던 많은 날실이 어찌나 아깝던지요. 당분간은 자투리 날실로 하는 작업에 몰두할 예정입니다.




김태연 홍익대학교 섬유미술과를 졸업했다. 일상에 흔한 비닐봉지를 소재로 실과 직물을 만들고, 폐비닐을 중심으로 새로운 텍스타일 소재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의도치 않게’ 환경을 생각하는 작가가 됐다는 그는 쉽게 버릴 수 없는 물건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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