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브랜딩] 광고제국 WPP는 왜 ‘플랫폼'이 되려는가

AI가 크리에이티브 산업과 애드테크의 판을 바꾸고 있다

by 신승호

세계 최대 광고그룹 WPP는 한때 광고 산업의 제왕이었다.


포드, P&G, 나이키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모두 이 거대 네트워크의 고객이었고, “WPP가 곧 광고 산업”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 WPP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4849_9310_589.jpg WPP 사옥 / 사진=WPP 제공



디지털 플랫폼의 부상은 광고 대행사의 존재 이유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브랜드들은 이제 메타, 구글,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 직접 캠페인을 설계하고 집행한다. AI 데이터 기반 자동화 도구, 애드테크가 발전하면서, 과거 WPP가 독점하던 전략·크리에이티브·미디어 집행의 영역이 모두 플랫폼 내부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광고 시장의 중심이 ‘에이전시’에서 ‘플랫폼’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화 속에서 WPP는 지난 5년간 주가가 꾸준히 하락했고, 실적 전망도 연달아 하향 조정되었다.


광고주는 예전만큼 대행사에 의존하지 않고, 대신 빠르고 저렴한 디지털 툴을 선택한다. 위기의식이 깊어진 WPP는 결국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다시 쓰기로 했다.


그들의 해답은 ‘스스로를 플랫폼화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최근 공개된 AI 마케팅 플랫폼 WPP Open Pro다.


출처 = WPP 유튜브


이 서비스는 브랜드가 직접 AI를 이용해 캠페인을 기획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며, 주요 광고 채널에 배포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마케팅 운영체제다.


Open Pro는 단순한 자동화 툴이 아니다. WPP가 보유한 데이터와 인사이트, 그리고 각 브랜드의 자산을 학습한 맞춤형 AI인 Brand Brain을 중심에 둔다. 이 AI는 브랜드의 색상, 로고, 카피 톤, 시각적 스타일을 이해하고, 그 기준에 맞는 콘텐츠를 자동으로 만들어낸다. 수천 개의 변형 이미지를 단 몇 초 만에 생성하고, Performance Brain은 각각의 광고가 실제 소비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일지를 예측한다.


WPP의 CTO 스테판 프리토리우스는 “인간은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 광고 변형 1만 개를 사람이 포토샵으로 일일이 만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건 AI가 20초 만에 할 수 있다.” 라며 "WPP는 더 이상 광고를 대신 만들어주는 회사가 아니라, AI가 대신 만들어주는 시스템을 브랜드에게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라고 전한다.


하지만 이 과감한 전환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메타, 구글, 틱톡 같은 빅테크 기업들 역시 이미 AI 기반 광고 솔루션을 갖고 있다. 이들은 압도적인 사용자 데이터와 미디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즉각적인 성과를 증명할 수 있다. 반면 WPP는 여전히 미디어를 소유하지 못한 ‘대행 생태계의 플레이어’다. 그들의 AI가 아무리 정교해도, 결국은 미디어를 장악한 플랫폼과 경쟁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결국 WPP의 실험은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을 어떻게 다시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다.


AI가 만들어주는 콘텐츠는 브랜드 일관성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높여주지만, 여전히 진정한 ‘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광고 산업이 기술로 무장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통찰과 철학은 더 중요해진다. 그렇다면 굳이 나의 철학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중간에 누군가가 껴있는 대행사, 에이전시 비즈니스는 필요한 것인가?


WPP의 위기는 단지 한 회사의 위기가 아니라, 창의 산업 전체에 대한 경고다.


디자인, 컨설팅, 미디어, 예술까지 모든 전문 서비스 업이 ‘대행’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맡기는 시대가 아니라, 누구나 스스로 실행할 수 있는 도구 위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WPP는 먼저 움직여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 WPP가 대기업 중심의 용역 컨설팅 비즈니스였다면 이제는 브랜드자율형 AI플랫폼을 통해 구독형 SaaS플랫폼으로의 변신을 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도 이제 AI와 함께 하는 슈퍼개인의 시대가 오고 있다.


신승호 컬처테크 칼럼니스트

https://www.kmjournal.net/news/articleView.html?idxno=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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