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향 평준화의 시대, ‘잘 만든 K팝’은 더 이상 답이 아니다
2025년의 K팝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신인은 꾸준히 등장했고, 음악과 퍼포먼스의 완성도는 평균 이상이었다. 기술, 자본, 인력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대중의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하다. 모두가 너무 잘 비슷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상향 평준화는 산업의 성숙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콘텐츠 시장에서는 지루함을 낳는다. 모든 곡이 ‘성공을 목표로 설계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청자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잘 만든 음악은 많았지만, 기억에 남는 음악은 적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유독 두 개의 키워드만이 반복적으로 회자됐다.
하나는 글로벌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혼성 프로젝트 그룹 올데이 프로젝트였다.
이 둘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K팝은 지금 너무 비슷한 건 아닐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 ‘내 것이 아닐 때’ 비로소 가능한 자유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내부의 논리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아니다. 사자 보이즈, 데몬 헌터, 애니메이션이라는 외형만 보면 오히려 K팝의 바깥에서 만들어진 2차 창작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거리감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이 콘텐츠에는 초동 성적도, 팬덤 충성도도, 재계약도 걸려 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커리어를 책임질 필요가 없었고, 성공을 증명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음악은 가벼울 수 있었고, 그 가벼움은 부담 없는 몰입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즐겼고, 어른들은 “생각보다 잘 만들었다”는 말과 함께 끝까지 보게 됐다.
이 사례는 역설적으로 지금의 K팝이 잃어버린 감각을 드러낸다. 너무 성공한 산업이 되어버린 탓에, 더 이상 편하게 만들 수 없어진 상태. 그러다보니 다 똑같아져 버리고 말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은 이미 ‘한국 아이돌 산업’이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가 차용 가능한 하나의 세계관이 되었다고 말해준다.
올데이 프로젝트가 살아남은 이유: 회사의 에고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데이 프로젝트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눈에 띄었다. 혼성 그룹, ‘프로젝트’라는 느슨한 네이밍, 완결된 팀보다는 진행형 집단에 가까운 태도가 돋보였다.
이 팀이 주목받은 이유는 콘셉트가 아니다. 회사와 시스템의 에고가 전면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K팝 콘텐츠는 과도한 규모감과 컨셉에서 느껴지는 부담감이 존재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 검증된 공식에 대한 집착, 실패할 수 없다는 두려움. 이 감정이 음악과 퍼포먼스 곳곳에 스며든다.
그 결과 완성도는 높아지지만, 숨이 막힌다. 모든 노래가 “나를 선택해 달라”고 외치는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로제의 아파트처럼 힘을 빼고 해야, 다름이 나오지 않을까?
여하튼 올데이 프로젝트는 달랐다. 멤버 개인의 개성이 먼저 보였고, 그 개성들은 느슨하게 연결돼 있었다. 칼군무보다 남녀 보컬이 교차하는 순간이 더 기억에 남았고 필요한 순간 순간에만 K팝의 정교한 문법을 사용했다. 이 미묘한 균형감각이 바로 올데이 프로젝트가 살아남은 이유다.
모두가 블록버스터가 되려는 컨셉놀이를 하는 순간, 시장은 피로해진다
지금의 K팝 시장은 웰메이드 블록버스터만 걸려 있는 극장과 닮아 있다. 폭발은 많지만, 여백은 없다. 중간에 있어야 할 ‘취향 영화’와 ‘삐끗한 실험작’이 사라졌다. 그래서 관객은 피로해진다. 잘 만들었지만,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올데이 프로젝트는 이 흐름에서 예외였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팀. “이 팀은 어디로 갈까?”라는 질문을 남긴 몇 안 되는 사례였다.
2025년의 K팝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매출은 회복됐고, 공연과 IP 사업은 확장되고 있으며, 글로벌 저변도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영업이익률은 하락하고 있고, 아직도 지드래곤, 블랙핑크, BT라는 대형 아티스트 중심의 쏠림은 심화되고 있으며, 새로운 시도를 감당할 여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럴 때 살아남는 콘텐츠는 분명하다. 덜 필사적인 것, 덜 계산적인 것, 그리고 사람의 감정을 먼저 생각한 것. 그것이 가장 희귀한 경쟁력이 되어버렸다.
신승호 컬처테크 칼럼니스트/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