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부활’ 시대의 감동과 윤리
얼마전 광화문 대형 전광판 앞에서 한 세대의 기억이 다시 깨어났다.
28년 전 세상을 떠난 듀스 김성재의 젊은 모습과, 그의 생전 창법 그대로 복원된 신곡 ‘라이즈(Rise)’를 통해 도시 한가운데 울려 퍼졌다. 영상 속 김성재는 20대의 미소와 에너지로 그곳에 서 있었다. 팬들은 환호했고, 눈물을 훔쳤다. 마치 시간이 뒤집힌 듯, 기술이 멈춰 있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순간이었다.
디지털 부활의 흐름은 음악계를 넘어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신해철의 목소리는 본인의 자녀들과 함께 대학가요제 무대에서 다시 울려 퍼졌고, 김광석/유재하 역시 AI 기술로 복원된 목소리로 팬들 앞에 섰다. 이제 AI는 고인의 목소리와 표정을 넘어서, 생전의 말투/호흡/습관까지 재현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야구계가 움직였다.
은퇴 프로야구 선수들의 모임인 일구회는 올해 시상식에서 AI로 복원된 고(故) 하일성 야구해설위원의 축사를 공개했다. 2016년 세상을 떠난 그는 “야구 몰라요~”라는 명언을 남기며 한국 야구 중계의 시대를 연 상징적 인물이었다.
일구회는 그의 생전 목소리와 표정, 말투를 바탕으로 버추얼 휴먼을 제작했고, 그것은 상업적 작업이 아닌 후배들이 직접 고인을 기리기 위해 만든 추모 프로젝트였다. 화면 속 하일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명쾌했고, 표정은 생전과 다름없었다. 기술이 고인을 다시 무대 위에 세운 것이라기보다, 후배들의 마음이 기술의 손을 빌려 선배를 다시 한 번 초대한 순간에 가까웠다.
이처럼 고인을 디지털로 부활시키는 현상은 분명 감동적이다.
팬들은 다시 만날 수 없던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되짚는다. 그러나 감동에 젖기엔 너무 많은 질문이 남아 있다.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고인을 어디까지 다시 불러낼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은 ‘의사’다. 김성재는, 신해철은, 하일성은 생전에 자신이 AI로 다시 등장하는 것을 원했을까? 고인의 의사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결국 그 공백을 유족, 팬, 제작자가 해석하게 되는데, 해석은 언제나 서로 다르다.
두 번째 질문은 ‘목적’이다. 추모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소비를 위한 것인가. 일구회의 사례처럼 고인을 기리는 목적이 명확한 경우가 있는 반면, 일부 프로젝트는 고인의 이미지를 상업적 콘텐츠로 이용하며 논란을 일으킨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투팍, 엘비스, 에디트 피아프 등이 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콘텐츠화되며 논쟁이 반복됐다.
세 번째 질문은 ‘명예’와 ‘왜곡’이다. AI는 고인이 생전에 하지 않았던 말, 하지 않았던 표정, 하지 않았던 노래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고인의 인격과 역사를 새롭게 “창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콘텐츠는 추모일까, 아니면 고인의 재해석을 넘어선 ‘개입’일까?
네 번째 질문은 ‘피해자 시각’이다. 고인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던 경우, 그를 미화한 디지털 부활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피해자는 평생의 트라우마 속에 살지만, 사회는 기술을 통해 가해성을 가진 인물을 다시 호명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피해는 계속되는데, 왜 고인은 다시 무대에 서는가?” 이 질문은 간단히 넘길 수 없다.
다섯 번째 질문은 ‘기준’이다. 어떤 고인은 AI로 불러내고, 어떤 고인은 불러내지 않는가? 기준이 없다면 기술은 감동의 매개가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의 도구가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디까지, 어떤 마음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우리는 최소한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유족의 명확한 동의를 전제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을 것, 생전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존중하며 상업적 목적이 추모의 진정성을 압도하지 않도록 할 것, 혹시 모를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없는지 살피고 AI가 고인의 메시지를 왜곡하지 않도록 할 것.
기술은 우리에게 고인을 다시 만날 기회를 주었지만, 그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지 선택하는 책임은 결국 인간에게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깊은 질문이 남는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기 때문에 소중하고, 모든 기억은 언젠가 사라지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면-기술이 우리의 손에서 죽음과 망각의 경계를 지워버릴 때, 우리는 정말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인의 모습이 되살아난 피지컬 AI 앞에서 사람들은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웃음 뒤에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어색한 감정이 깃들게 될까?
우리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앞으로의 기술이 인간을 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혹은 인간의 감정을 소비하는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할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신승호 컬처테크 칼럼니스트 /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