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성장형 스타트업’의 엑시트 구조가 없다
“쿠팡은 한국 기업이 아닙니다.”
최근 쿠팡은 정치권과 언론의 포화를 맞았다. 이슈의 발단은 복잡하지만, 핵심은 하나다. “한국에서 돈 벌면서, 미국 회사인 건 부당하지 않느냐”는 정서다.
하지만 이는 단지 쿠팡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배달의민족, 토스, 당근마켓, 리디 등 수많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이미 알토스벤처스 같은 해외 자본의 지원을 받아 성장하고, 결국 외국 회사로 귀결되는 루트를 밟고 있다.
이것은 일개 기업의 윤리 문제가 아니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자체의 구조적 결과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토스는 ‘제2의 쿠팡’이 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고 있다.
알토스벤처스는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한국계 벤처캐피털이다. 대표 한킴은 한국 시장의 가능성을 일찍이 포착했고, 한국에서 창업된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스케일업’을 하기 위한 자금과 전략을 제공해왔다. 그가 투자한 기업 목록을 보면 놀랍다.
크래프톤,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직방, 당근마켓, 리디, 뤼이드, 마켓컬리 등등.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시작해 로컬 시장을 장악한 후, 글로벌 자본에 의해 미국 기업으로 ‘변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쿠팡의 전례: “한국에서 만든 미국 회사”
쿠팡은 2010년 한국에서 창업되었지만, 2021년 미국 델라웨어에 지주회사(Coupang Inc.)를 설립하고 나스닥에 상장했다. 현재 쿠팡은 법적으로도, 회계상으로도 미국 회사다. 한국 법인은 자회사일 뿐이다.
이 구조 덕분에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미국 회계 기준으로 손익을 잡고, 미국 투자자에게 성장성을 인정받고, 한국 정부의 규제에서 일부 벗어나 있으며, 심지어는 한국에 세금도 상대적으로 적게 내는 구조를 유지한다. 이와 유사한 전략을 토스도 밟고 있는 중이다.
토스의 다음 행선지는 ‘나스닥’이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2026~2027년경 미국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토스는 토스뱅크, 토스증권, 토스페이, 토스쇼핑 등 서비스를 통합한 ‘슈퍼앱’ 전략을 구축했고 사용자 수 3천만 명, 월간 활성 사용자 2,500만 명을 넘기며 쿠팡과 유사한 소비자 기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싱가포르나 미국에 지주사를 설립하고, 한국 법인들을 자회사로 묶어 미국 IPO를 준비하는 루트를 조용히 닦고 있다.
왜 굳이 나스닥인가?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 증시는 적자 기업의 상장을 막는다. (토스는 아직 연간 흑자가 불안정하다.) 국내 IPO는 플랫폼 기업에 낮은 밸류에이션을 준다. 미국은 ‘성장 스토리’만으로도 수십조 원의 가치를 부여한다. 미국 VC와 투자자들에게 토스는 ‘디지털 라이프 슈퍼앱’으로 어필할 수 있다.
토스는 더 이상 단순한 금융앱이 아니다. ‘쿠팡은 쇼핑의 슈퍼앱’, ‘토스는 금융의 슈퍼앱’으로, 모두 나스닥이라는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왜 한국 스타트업은 결국 미국 회사가 되는가
이 구조에는 세 가지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
첫째, 한국은 ‘성장형 스타트업’의 엑싯 구조가 없다. 국내 IPO는 흑자 요건, 회계 기준, 규제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M&A는 극히 드물고, 그마저도 대기업 규제에 걸려 매각도 쉽지 않다.
둘째, 투자자는 ‘수확’을 원하고, 미국이 더 좋은 밸류를 준다. 미국 VC들은 나스닥 상장을 통한 엑싯을 전제로 투자한다.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 자본을 받는 순간, 결국은 미국 회사가 될 수밖에 없다.
셋째, 스타트업도 글로벌 기준에서 밸류를 받아야 생존 가능하다. 한국에서 1조 가치로 상장할 바엔, 미국에서 10조 가치로 상장해 글로벌 확장 자금을 유치하는 게 훨씬 낫다.
결국, 스타트업은 시장 논리대로 움직일 뿐이다.
윤리인가, 구조인가
쿠팡이 한국에서 돈 벌고, 미국 회사인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토스가 그렇게 되려 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별 기업의 ‘꼼수’가 아니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가 가진 구조적 모순의 결과다.
성장은 한국에서 하지만, 결실은 미국에서만 맺을 수 있는 구조. 문제는 쿠팡도, 토스도 아니라 한국에서 자란 혁신 기업이 한국에서는 상장도, 확장도, 엑싯도 어렵다는 현실이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3의 토스, 제4의 야놀자도 결국 ‘한국에서 태어난 미국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