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의 위기대응, 쿠팡은 예외일 수 있을까...

한국 IT 몰락사의 반복된 패턴

by 신승호

기술이 아니라 ‘태도’가 플랫폼의 운명을 가른다


6545_12319_310.png 이미지=제미나이 생성


한국 IT 산업은 역동적이다.


‘불멸’이라 믿었던 1위들도 쉽게 무너진다. 한메일, 프리챌, 싸이월드, 지마켓, 네이버톡까지. 이들은 기술력이 부족해서, 혹은 자본이 모자라서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 각자의 시대에서 최상의 기술과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던 기업들이었다. 그들의 몰락은 언제나 시장을 지배했다는 자신감이 사용자와 사회를 대하는 태도의 둔감함으로 변질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 한국 물류의 심장이라 자부해온 쿠팡이 바로 그 위험한 경계선 위에 서 있다.


한국 IT 역사에서 1위 기업이 가장 먼저 빠지는 함정은 ‘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오만이다.



한메일의 온라인 우표제가 그 대표적 사례다. 2002년, 점유율 70%에 육박하던 다음은 기업용 대량 메일에 과금하는 실험을 단행했다. 수익 모델로만 보면 합리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사용자에게 이메일은 이미 공공재에 가까운 존재였고, 한메일은 그 질서를 만든 주체였다. 이 암묵적 계약이 일방적으로 깨졌을 때 기업들은 ‘깨끗한 IP’를 찾아 네이버로 이동했고, 이는 포털 패권이 이동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프리챌의 유료화 역시 같은 궤적을 그린다. 커뮤니티 점유율 1위였던 프리챌은 사용자를 동반자가 아닌 수익원으로 인식하는 순간, 관계의 집합체라는 커뮤니티의 본질을 잃었다. 사용자들은 더 나은 서비스 때문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정 때문에 싸이월드로 떠났다. 한국 인터넷 문화에서 ‘떠남’은 종종 기능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였다.


성공의 기억은 또 다른 방식으로 1위를 무너뜨린다.


싸이월드는 모바일의 도래를 몰랐던 서비스가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내부 논의는 존재했다. 그러나 도토리로 상징되는 PC 기반 수익 구조가 너무 강력했기에, 스스로를 부정하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이미 잘되고 있는데 왜 바꿔야 하나”라는 질문은 전환기의 가장 위험한 신호였다. 싸이월드의 실패는 기술이 아니라 타이밍과 감각의 문제로 남았다.


네이버톡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강력한 로그인 기반을 가지고 있었고, 트래픽과 자본 역시 충분했다. 그러나 메신저는 포털의 확장이 아니라 일상의 기본 인프라였다. 카카오톡이 속도와 간결함, 전화번호 기반의 감정적 교류에 집중할 때 네이버톡은 플랫폼 권력의 연장선에서 설계됐다. 사용자는 포털의 부속 기능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


쿠팡의 위기는 이 모든 역사적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쿠팡은 한국 IT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실행력을 보여준 기업 중 하나다. 물류, 기술, 자본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근의 논란은 로켓배송의 속도나 풀필먼트 효율과는 무관하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적 신뢰와 공감의 결핍이다.


쿠팡은 스스로를 ‘생활 인프라’로 정의해왔다. 이 인식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인프라가 된 기업은 사기업의 효율성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노동 환경, 중소상공인과의 관계, 규제 기관과의 소통에서 쿠팡이 보여준 대응은 주로 ‘설명’에 머물렀고, 사회가 기대한 것은 ‘공감’이었다. 이 간극이 반복될수록 기업의 메시지는 방어가 아니라 오만으로 읽힌다.


여기에 글로벌 기업 특유의 한국 사회에 대한 감각 부재도 겹친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논리,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언어는 한국 사회에서 종종 “우리는 당신들의 정서와 무관하게 간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위기 대응에서 논리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특히 1위 기업에게는 더욱 그렇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시장은 단극 구조가 아니다. 네이버는 멤버십과 물류 연합을 통해 대안을 자처하고 있고, 알리와 테무 같은 외산 플랫폼의 공세도 거세다. ‘쿠팡이 아니면 안 된다’는 믿음이 ‘쿠팡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나’라는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 1위의 방어선은 급격히 약해진다. 더구나 입점업체, 노동계, 규제 당국과 누적된 갈등의 총량은 위기 국면에서 한꺼번에 반작용으로 돌아온다.


한국 IT 역사에서 1위의 몰락은 언제나 기술 이전에 태도의 문제였다.


쿠팡은 아직 선택의 시간이 남아 있다. 이번 위기를 일시적 논란으로 봉합할 것인지, 아니면 플랫폼 권력에 걸맞은 책임과 겸손을 학습한 기업으로 기록될 것인지. 역사는 늘 1위에게 가장 엄격했고, 그 평가는 언제나 위기 대응의 순간에 결정됐다.

https://www.kmjournal.net/news/articleView.html?idxno=6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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