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스캠 사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블랙마켓과 첨단 기술은 왜 언제나 함께 진화하는가

by 신승호
6555_12333_4734.png 이미지=제미나이 생성


“처음에는 투자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그냥 하루가 어땠는지, 밥은 먹었는지 그런 얘기였죠.”


2025년 초, 수도권에 거주하던 50대 여성 A씨는 해외 파견 근무 중이라는 한 남성과 SNS에서 연결됐다. 그는 한국말이 자연스러웠고, 시차를 계산해 매일 같은 시간에 안부를 물었다. 두 달이 지나는 동안 그는 가족 이야기와 미래 계획을 공유했고, A씨는 그를 ‘연인’이라 믿게 됐다. 투자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 이후였다. “내가 하는 건 위험하지 않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암호화폐 거래는, 결국 3억 원이 넘는 피해로 끝났다. 남자는 사라졌고, 거래 앱과 고객센터는 가짜였다.


이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 피해는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피해자 연령대도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넓어졌다. 중요한 것은 이 사기가 더 이상 ‘어설픈 거짓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는 감정을 설계했고, 신뢰를 단계적으로 쌓았으며, 피해자의 반응에 맞춰 전략을 바꿨다. 이 과정은 우연이 아니라 산업화된 매뉴얼에 가깝다. 그리고 그 매뉴얼의 상당 부분은 이제 AI와 결합하고 있다.


동남아 메콩 3국 접경지대에 형성된 이른바 ‘스캠 산업단지’는 이 노동을 대량 생산한다.


다국어 채팅, 시간대별 대응, 피해자 성향 분석은 더 이상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시스템의 기능이 됐다. 연간 수백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이 ‘그림자 산업’은 일부 국가에서는 GDP의 절반에 육박한다. 사기는 범죄이기 이전에, 이미 하나의 경제 구조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왜 인류는 수천 년이 지나도 사기와 폭력을 근절하지 못했을까. 기술이 부족해서일까, 법이 약해서일까. 역설적으로 답은 그 반대에 가깝다. 사기와 폭력은 언제나 가장 효율적인 기술을 가장 먼저 흡수해왔다. 위험 대비 수익이 높고, 규제보다 빠르며,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정면으로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 오래된 본성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로맨스 스캠에서 중요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관계 유지’다. 매일의 안부, 적절한 공감, 미묘한 거리 조절. 이는 인간에게는 감정 노동이지만, AI에게는 최적화 가능한 패턴이다. 범죄 조직에게 AI는 지능이 아니라 확장 가능한 설득 엔진이다.


여기에 가상자산과 핀테크가 결합하면서 범죄는 국경을 지우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돈은 스테이블코인으로 바뀌어 순식간에 국경을 넘고, 언더그라운드 금융망을 거쳐 다시 합법 자산으로 세탁된다. 이 과정에서 범죄 자본은 한국, 싱가포르, 두바이의 부동산과 고급 자산 시장으로 스며든다. 블랙마켓은 더 이상 경제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오염시키는 형태로 진화했다.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더 깊어진다.


이 생태계는 일부 합법 플랫폼과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SNS 광고, 검색 노출, 앱 마켓은 의도하지 않게 사기의 확산 경로가 된다. 누구도 직접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흐름의 일부가 된다. 블랙마켓은 늘 이렇게 제도와 공존해왔다.


결국 문제는 AI가 아니다. 문제는 AI가 인간의 욕망과 외로움, 불안을 너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는 기술로 진보했지만, 사기의 동기는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속도와 규모, 그리고 자동화의 정도다.


A씨의 이야기는 개인의 불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AI와 블랙마켓이 결합한 시대에,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신호다. 로맨스 스캠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가장 취약한 지점을 노리는 가장 오래된 산업의 최신 버전이다. 기술은 바뀌었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속아왔는가.



신승호 컬처테크 칼럼니스트 / IP비즈니스 컨설턴트 /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 겸임교수


IP비즈니스 (IP설계워크숍 / 브랜드IP구축 / 위기관리)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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