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기업 경영의 역사에서 조용하지만 의미심장한 장면이 등장했다.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는 분기 실적 발표 영상에 실제 CEO 대신 AI 아바타를 등장시켰다. 디지털로 복제된 CEO가 카메라 앞에서 실적과 전략을 설명했다. 얼굴과 목소리, 말투까지 실제 CEO와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많은 시청자가 처음에는 그것이 AI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 데모가 아니었다. CEO라는 존재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 중 하나, 즉 기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이 인간의 육체에서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례가 곧바로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영상회의 플랫폼 기업 Zoom의 CEO 에릭 위안(Eric Yuan) 역시 실적 발표 영상에서 자신의 AI 아바타를 사용했다. 그는 직접 등장하는 대신 디지털 아바타가 기업 전략을 설명하도록 했다. CEO가 직접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아도 기업의 공식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AI 기술의 발전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 경영 구조에서 오랫동안 묶여 있던 요소들이 분리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CEO라는 존재는 세 가지가 하나로 결합된 구조였다. 인간의 육체, 조직을 대표하는 상징성, 그리고 전략적 의사결정 능력이다. 그러나 AI 아바타 기술이 등장하면서 가장 먼저 분리된 것은 상징과 메시지 전달 기능이다.
이제 CEO의 존재감은 물리적 인간에 의존하지 않는다.
기업의 발표, 투자자 메시지,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디지털 아바타가 대신 수행할 수 있다. 리더십의 일부가 인간에서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를 이해하려면 CEO의 역할을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경영자는 전략을 세우고 조직을 운영하지만, 동시에 기업의 의미를 해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 설명하고, 위기의 의미를 해석하며, 조직의 철학을 전달한다.
이 기능의 본질은 결국 언어와 스토리다.
AI는 인간의 언어 패턴을 학습하고 재현하는 데 매우 강력하다. 그렇다면 리더십의 일부는 자연스럽게 디지털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콘텐츠 산업에서는 이미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가수의 목소리는 데이터로 보존되고, 배우의 연기는 디지털 캐릭터로 재현된다. 이제 같은 변화가 기업 경영에서도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CEO는 점점 인간 개인이 아니라 조직과 시장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가 되어가고 있다.
이 흐름이 더 발전하면 기업은 새로운 존재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AI 파운더(AI Founder)다.
창업자가 평생 동안 남긴 인터뷰, 이메일, 연설, 회의 기록, 의사결정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기업의 철학을 재현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이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도달했을 때 경영진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창업자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최근 K팝의 설계자 이수만 프로듀서가 설립한 'A2O 엔터테인먼트'는 이 담론의 가장 뜨거운 실전 사례다. 그는 자신의 30년 프로듀싱 노하우와 지식을 AI로 구현하여, 자신이 직접 현장에 없더라도 '이수만식 프로듀싱'이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파운더는 과거 데이터와 창업자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가장 ‘창업자다운’ 판단을 제시한다. 이 순간 창업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의사결정 방식은 여전히 조직 안에서 작동한다.
많은 사람은 이런 기술을 보고 ‘기업의 영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개념에는 또 다른 질문이 숨어 있다. 죽지 않는 리더십은 과연 기업에게 축복일까.
창업자의 철학을 보존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이 될 수도 있다. 과거의 판단 기준이 영원히 조직을 지배한다면 기업은 미래를 선택하기보다 과거를 반복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I 파운더는 지혜의 보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권력의 고정화일 수도 있다.
AI는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로 시작했지만 이제 그 영역을 넘어섰다. 지금 AI가 건드리고 있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권력과 리더십의 구조다.
CEO가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기업의 메시지는 전달될 수 있다. 창업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철학은 조직을 움직일 수 있다. 리더십은 점점 사람에서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
신승호 컬처테크 칼럼니스트 /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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