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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Mar 22. 2021

봄에 읽는 글.

지나간 인연에게

봄이 오면 꺼내 읽는 그의 글.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문득 당신께 편지 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상춘곡은 초봄에 읽어야 제맛이다.
돌아오는 계절마다 다시 읽고 싶어 지는 문장의 힘.
고전적이면서 시를 읽는 듯한 그의 문체는
매화가 지고 목련이 툭툭 떨어지는 계절,
흩날리는 벚꽃처럼 애잔하다.

'빛과 소리라는 말은
어쩌면 '멀리'라는 뜻에서 온 것이 아닐는지요'

'벚꽃도 불탄 검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게
더욱 희고 눈부시리라 믿습니다.
물론 그게 당장 일리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너를 기다렸지, 내가 나쁜놈인데도 네 생각을 했어.

불 켜진 네 작업실 앞을 서성대기도 했는데 

전화기를 들 용기는 없었어. 네 그림자를 봤어.

너는 지금처럼 예뻐야지, 나 같은 거가 뭘 바라겠어.

너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건 없어.

그래도 네가 그렇게 제자리에 있어주면 좋겠어.

춥다 추워, 나 너무 추워. 네 옆은 따뜻할 텐데.

죽고 싶다, 나는 나를 어쩌지 못하겠어..


전화기 넘어 웅얼웅얼 대는 술 취한 목소리를 닫으며

혼곤함 속에서 상춘곡의 문장을 떠올렸다.


이제는 안다.

한번 망친 인연도 더욱 곱게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마주 앉아 웃을 수 있더라도

너는 벚꽃이 아니어서 이리 더욱 검어지는가.

짙은 검정얼룩이 나에게도 훅, 스며들었다.

당신과 나에게 아직 남은 그 무언가가 있다면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구겨진 당신에게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부디, 검은 자리에서 일어나 희고 눈부시게 살아주길.


아침에 찾아든 책 속의 문장들이 유난히 저릿하다.

당신의 마지막 당부와 같은 문장.


'당신은 여인이니 부디 어여쁘시기 바랍니다.'

응, 나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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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책 #많은별들이한곳으로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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