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금요일

[밤 9시 글쓰기] 24.10.18. 부산 광주 고속버스

by 쿰파니스

광주 고속버스터미널.

아침 8시 30분 발 부산행 버스에 올랐다.


출입문 쪽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우등버스 3번 좌석.

비행기로 치자면 비즈니스석이다.

출발 일자도 시간도 이 좌석이 결정했다.

고작 버스 좌석 하나 가지고 웬 궁상인가 싶으면서도 주책을 떨곤 한다.


툭 트인 시야가 좋아서다.


차선을 따라 줄지어 달리는

승용차들이 개미 행렬 같다.

내려보는 재미가 쏠쏠하여

높이에 비례하여 값이 오르고

드론에 카메라도 달겠지.


책을 읽거나

때론 졸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풍경이 그림책 넘기듯 계속하여 밀려온다.

섬진강을 지나고 낙동강을 건널 때,

어딘가로 멀리 가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은 이렇게 들어야 제맛이 난다.


"섬진강 휴게소입니다.

11시 30분쯤 도착합니다."


"영광도서 부근이 좋겠어요."


사상터미널에 비가 내렸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곧장 서면으로 갔다.

출구를 나서니 야채 좌판이 있다.

모습은 광주와 같다.

가지 세 개 놓고 이천 원.

오이 네 개 담고 이천 원.

값을 부르는 생명력 넘치는 억양에 부산 온 걸 실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시력이 더 떨어졌나 보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며 눈을 가늘게 뜬다.

앞에 와서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초승달처럼 휜 눈가에 자잘한 주름이 잡혔다.

언제봐도 가슴 저릿한 아름다움이다.

심장 깊은 곳에서 불꽃이 일었다.


점심을 먹었고

커피를 마셨다.

노벨문학상을 들먹이며,

한강 소설 느낌을 나누었다.

구청 문화센터 강좌 이야기도 했다.


아포가토를 더 주문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커피에 적셔 한입 두입.

그리곤 묻는다.

피자 생각나지 않아?


하늘엔 검은 구름이 급류처럼 흘렀다.

비는 굵게 가늘게 계속 되었다.

지하도 건너 전포동 카페거리,

이재모 피자, 대기 줄이 길었다.


맞네, 불타는 금요일이네.

맞장구쳤다.


전포역 계단에서 한동안 서성였다.

이야기는 많았지만 침묵이 길었다.

오륙도 가는 24번 버스를 탔고,

사상역 가는 2호선 전철을 탔다.


저녁 7시 33분 출발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글쓰기 숙제를 한다.

청춘 데이트나 중년 데이트나 풍경이 비슷하다.

설마 노년이 된다고 이 설렘이 사라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