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
[밤 9시 글쓰기] 24.10.17. 한강 맨부커상 채식주의자
by
쿰파니스
Oct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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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여 년 전,
아내가 문득 채식 이야기를 했다.
직장 동료가 채식주의자라고.
그러면서 채식 등급을 나열했다.
우유를 먹는 계란까지 먹는
멸치는 먹되 소고기는 안 먹는 식이었다.
머리도 나쁘고 외워야 할 것도 많은 세상에서 그런 용어들까지 머리에 넣고 싶지 않았다.
대충 방식만 이해했다.
완전 채식, 일부 채식, 모양만 채식, 이런 식으로.
내 의견을 물었다.
그분의 식성이 별나다고 경멸했을 수도 있을
내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편협함이었을
생각
들
을
일반적인 의견인 양 포장해 답했다.
호모사피엔스는 본래 사냥하는 종이었다는 나름 있어 보이는 견해도 덧붙였다.
채식주의는 그리 권장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
바람직한 식습관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2.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다시 읽었다.
아내가 채식주
의자가 되었다.
모든 가족이 잘못이라고 했다.
당사자인 영혜 의견은 무시되었다.
아버지는 반항하는 영혜 뺨을 때리며
우격다짐으로 입 안에 고깃 덩어리를 밀어 넣었다.
영혜는 칼로 손목을 그었다.
3.
술집 앞을 지나며 맡은 냄새만으로도,
뒤틀린 위장과 흔들리는 머리로 일주일 동안 지옥문을 들락 거라는
친구가 있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모임이었다.
두어 달 간격으로 만났다.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안부를 묻고 헤어졌다.
이맘때쯤이었다.
태풍으로 새벽부터 비가 퍼부었다.
나무가 뽑히고 간판이 날았다.
다음으로 미루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어쩌다 보니
저녁에 만나게 되었다.
식사를 하고 가볍게 맥주나 한잔하자며 자리를 옮겼다.
한 친구가 술을 못한다며 사이다를 주문했다.
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사이다 주문은 묵살되었다.
괜찮다며,
무슨 남자가 술도 못하느냐며,
먹다 보면 는다며,
강권했다.
술을 절대 못 먹는다고,
한 방울만 마셔도 일주일 병원 신세라고,
그 친구는 진지했다.
계속된 협박에 놀림에 그는 저항을 포기했다.
입에 머금고 목으로 넘기는 모습이,
사극에서 보았던 사약 먹는 장면과 다르지 않았다.
두 모금을 들이켠 후 술잔을 놓고 자리를 떴다.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4.
영혜에게 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부모,
그것을 방관하는 남편과 형제자매들.
친구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며
자기 기준으로 판단했던 우리들.
모두 완전한 타인 또는 적이었다.
작가 한강이 말하는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폭력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에 대한 대변이었고 위로였다.
나는 오늘 혹시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는지.
그래서 깊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내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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