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로 살며 무너지다
지난 이야기에서 어린 시절을 거쳐 어떻게 카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마지막으로 직접 손님들께 커피를 내려드릴 수 있었던 대형 카페 시절의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시기는 숫자보다 시스템, 이벤트보다 일관성,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한계를 온몸으로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M이라는 사람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M은 저보다 나이가 조금 많고,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낸 친구입니다. 한 동네에서 함께 자라며 아기 때부터 함께 다녔고, 학창시절 내내 저의 취미와 공부, 진로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부족한 과목의 가정교사가 되어 주기도 했고, 부모님이 멀리 계실 때는 위험한 순간마다 자연스럽게 제 보호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날에는 한밤중에도 달려와 매운족발을 쥐여 주곤 맵다며 우는 저를 보며 낄낄대던, 그런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제가 먼저 생활고를 겪던 몇 해 동안 생활을 책임져 주었던 것도 M이었습니다.
그런 관계였기에 M이 도움을 청했을 때, 편도 두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M은 오래된 공장을 개조해 200평이 넘는 대형 카페를 열었습니다. 초록이 가득한 공간에는 단체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빵과 음식, 음료가 풍성하게 진열되었습니다. 직원은 서른 명 가까이 있었고, 아침부터 밤까지 매장은 북적였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M의 고민은 깊었습니다. 맛의 균일화, 매장의 이미지, 전반적인 퀄리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는 이 문제로 저를 불렀습니다.
“한 달에 몇 번이라도 좋으니 와서 매장을 모니터링하고, 직원들에게 커피와 응대 교육을 해 줘.”
처음에는 주 1~2회 도와주는 수준이었지만, 어느새 저는 가끔 들르는 조언자를 넘어 매일같이 매장에 머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까운 인연은 저에게 버팀목이었지만, 동시에 제 몸과 마음을 소진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월매출이 1억 원을 넘기도 했습니다. 2호점, 3호점 이야기가 오르내리던 시절, M은 외부 상담과 확장에 집중했고 매장 운영, 직원 교육, 음료 품질 관리는 제 몫이 됐습니다.
어느 날부터 제 하루는 새벽 네 시에 시작됐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M과 함께 매장에 도착하면, 거대한 카페가 불을 켜고 저를 기다렸습니다. 마감이 끝난 밤늦게 피곤한 얼굴로 귀가길에 오르면, M은 다시 매장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새벽 어둠 속 비틀거리며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의 피로가 제 불안으로 옮겨 붙곤 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제 마음 한켠에는 "M과 함께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무렵 매장에는 또 한 사람, N이 있었습니다.
N은 M의 10년지기 친구이자 동업자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묘하게 저를 견제했습니다. 저와 M은 연애로 이어질 수 없는, 어릴 적부터 형제처럼 자라온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N은 쓸데없는 오해를 한 듯했고, 그 오해가 풀린 뒤에도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둘은 친남매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저를 더 가볍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저는 급여도 제때 받지 못했고, 사비를 털어 직원들의 급여를 채워 넣으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매장이 어려워질 때마다 책임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직원들이 그만두는 일조차 제 탓으로 돌려 혼나곤 했습니다. 다른 어떤 매장에서도 들어 본 적 없는 비난이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함께한 동료들 중 일부와는 여전히 연락하며 지냈습니다. 퇴사 후에도 서로 도우며 인연을 이어 왔습니다. 그래서 당시 N이 내뱉던 "모두 네 탓"이라는 말은 더욱 낯설고 부당하게 다가왔습니다.
손님들 중에도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는 분이 있었고, 인스타그램 DM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된 손님도 있었습니다. 직원들 역시 제게 개인적인 고민을 조심스레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그래서 '네 탓'이라는 단정은 더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다행히, 그 인연들—과거의 동료나 손님들 중 일부는 최근까지도 안부를 주고받는 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모순투성이였습니다.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직원인 제가 빚까지 내고 있었는데, 저를 향한 N의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쁜 와중에 손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농담을 주고받았다며 문제 삼기도 했습니다. 억울함을 표현하면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습니다. "직원들이 당신과 일하기 싫다고 했다", "직원들이 N에게도 같은 얘기를 했다."
M은 이미 지쳐 있었고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어디에도 제 편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코로나의 긴 터널이 시작되자 단체 예약 금지, 영업 제한, 좌석 제한이 이어졌습니다. 매장은 급격히 무너졌고, 결국 대표 M과 저, 단둘만 남아 버텼습니다. M은 새벽마다 빵을 굽고 소스를 준비했고, 저는 음료 베이스와 커피 세팅을 맡았습니다. N은 종종 사라졌다가 불시에, 때로는 며칠 만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N은 여전히 저를 흔들었습니다. 거의 매일 "오늘 커피 맛은 불합격"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불합격"이라던 에스프레소가 잠시 후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 "합격"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일관성 없는 평가 속에서 제 자신감은 점점 무너졌습니다. 처음엔 제가 만든 커피의 맛을 인정받아 이곳에 불려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시작점은 사라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 혀보다 N의 말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N은 은근한 말들로 제 불안을 자극했습니다. 나이나 외모, 성격을 거론하며 "이곳 말고는 갈 곳이 없다"는 뉘앙스를 흘렸고, "기능이 필요해서 불렀을 뿐"이라며 관계를 폄하했습니다. 손목이 망가져 더 이상 커피를 잡지 못하자 "그렇다면 어디에 쓸모가 있겠느냐"는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매장이 어려워질 때마다 제가 그만두는 순간 M도, 매장도 무너질 것이라는 분위기를 만들며 모든 책임을 제게 전가했습니다. 죄책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들은 욕설은 아니었지만, 자리를 흔들고 자존감을 깎았습니다. 처음엔 '도우러 온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내가 없어도 된다"는 메시지가 켜켜이 쌓이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은 제 자기인식에까지 스며들었습니다.
특히 반려 고양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충동이 더 강해졌습니다.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존재도 이곳에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때 N이 "이제 정시 퇴근 안 해도 되겠다"며, 제가 더는 약을 먹이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농담을 건넸을 때는 숨이 막혔습니다. 억울함과 분노, 상실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저 자신조차 낯선 어두운 생각에 잠식되곤 했습니다.
"내가 없어도 된다"는 말이나 뉘앙스가 스치기만 해도 괴로웠습니다. 존재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깊어질 때마다, 차라리 내가 사라지면 모든 게 끝날 것 같다는 극단적 충동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감정은 제 본질적 가치가 아니라 누적된 말과 상황이 만들어 낸 왜곡이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역할과 성과 이전에 인격과 존엄에서 시작됩니다. 한 사람의 존재는 그가 맺어 온 관계와 정직하게 살아온 흔적 속에서 이미 충분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몸을 갈아 넣는 하루
새벽에 매장을 열면, 하루치 재료를 세팅하는 것만으로도 아침 시간이 다 갔습니다. 에스프레소 추출에 쓸 원두를 갈아 두고, 시럽과 소스를 정량으로 맞추고, 우유와 음료 베이스를 준비해야 겨우 장사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끼니라고 해봐야 새벽에 잠깐 틈을 내 끓여 먹는 누룽지나 죽 한 그릇이 전부였습니다. 손님이 몰리면 그마저도 놓치기 일쑤였고, 하루 종일 마감까지 단 한 번도 앉지 못한 날이 허다했습니다. 몸무게는 40kg 초반까지 떨어졌습니다.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고 워낙 먹은게 없으니 출근길에 한 번, 마감 후에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
휴대폰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SNS에 글 하나 올리는 일조차 벅찼고, 일주일에 한 번 올리면 많이 올린 셈이었습니다. 댓글이나 DM에 답장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N은 피드의 톤앤매너를 맞추라, 팔로워가 떨어지고 있다고 압박했습니다. “왜 소식이 안 올라오냐”는 말이 매일같이 따라붙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다시 찾아와 “커피가 정말 맛있다”는 말을 남겨 주었습니다. 작은 선물을 건네며 응원하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그 미소와 격려 덕분에 하루를 버틴 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만큼은 지키겠다는 저의 원칙을 끝까지 존중해 준 M의 태도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버티던 나날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직원들이 크고 작은 횡령이나 배임을 저지르기도 했고, 단체로 퇴사해 영업시간에 들어와 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구직급여를 받고 있으니 신고하지 말아 달라며 현금을 요구하는 사람을 고용해야 했고, 지인과 가족에게까지 자질구레한 일을 부탁해야 했습니다. 그것마저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이력과 능력을 속이거나 기본적인 업무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직원, 퇴근만 고집하다 가족을 불러 항의한 직원까지—구멍은 끝없이 생겨났습니다.
비싼 장비가 도난당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손님이 두고 간 물품의 분실과 파손까지 매장이 책임져야 했습니다. 아이를 방치한 보호자 때문에 치료비를 대신 물어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영업배상보험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재정 문제는 더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원천징수를 떼고 급여를 지급했지만, 대표진은 당장 급한 불을 끄겠다며 그 돈을 운영에 쓰다가 끝내 납부하지 못했습니다. 직원들이 피해를 보았고, 저는 언제나 가장 늦게 급여를 받거나 아예 받지 못했습니다. 제 사비를 보태 직원들의 월급을 메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세무사에게 받은 급여명세서 PDF를 단순 전달했을 뿐인데도, 직원들은 저를 경영진과 동일시하며 “왜 아직 돈이 안 들어오느냐”는 메시지를 매일 쏟아냈습니다.
인원이 줄어들면서 음료, 식사, 홀, MD, 행정의 경계가 무너졌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음료를 만들었고, M은 식사를 책임졌습니다. N은 종종 사라졌다가 불시에, 때로는 며칠 만에 나타났습니다. 메뉴와 빵 종류는 점점 줄어들었고, 먼 길을 온 손님들은 품절 소식에 실망하며 돌아갔습니다. 주문 후 한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음식을 받는 일이 잦아지자, 리뷰에는 “맛은 괜찮지만 기다림이 너무 길다”는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손님도, 직원도 줄어들었고, 빈자리는 결국 둘이서 메워야 했습니다.
MD는 외주에만 의존하다 보니 퀄리티가 떨어졌고, 매장과 어울리지 않는 상품들이 들어왔습니다. 도난은 잦았고, 책임은 늘 우리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무게는 끝내 제 손목을 망가뜨렸습니다. 더 이상 커피를 잡지 못하게 되자 M이 바를 대신 맡았지만 가게는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단골 손님들이 하나둘 떠나갔습니다. 살려 보겠다며 동아리 모임, 전시, 대관,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시도했지만, 일반 손님에게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습니다.
말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은 정부지원에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원사업을 챙기느라 매장 관리가 비면 손님은 더 줄었습니다. 제 카드와 통장, 보증금까지 모두 바닥난 뒤에는 N이 M 몰래 저를 협동조합은행으로 데려가 “당신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M이 이를 막아 주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제게 그 한 번의 제지는 또 한 번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겨울, 마지막 결정타가 찾아왔습니다. 반려 고양이의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마다 약을 먹여야 했고, 아침과 저녁마다 집을 왔다갔다하며 챙겼습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밤, 아이는 코와 입으로 피를 흘리며 밤새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루 입원비만 수십만 원이었지만, 제 통장은 이미 오래 전 바닥이었고 카드 한도마저 소진돼 신용도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함부로 쓴 돈이 아니라, 카페 운영으로 떠안아야 했던 빚과 압박의 결과였습니다. 그동안 내 카드로 N이 와인과 본인이 기르는 반려동물용 간식을 자주 사 왔던 사실을 알았을 때는, 화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한 원장님이 “나중에 돈이 생기면 달라”고 하시며 며칠간 입원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몸은 점점 굳어 갔습니다. 의사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이제 숨쉬는 것만으로 괴롭습니다. 이제 그만 보내 주시죠.”
그렇게 고양이는 제 곁을 떠났습니다. 임시보호 차원에서 데려왔던 아이였지만, 이렇게 오래 함께할 줄은 몰랐습니다. 끝내 살리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상실감은 깊고도 길게 남았습니다.
M은 일하다 말고 곧장 차를 몰고 달려왔습니다. 손님 눈에 띄지 않는 매장 구석, 작은 컨테이너 뒤편에 아이를 함께 묻었습니다. 장례를 치를 돈조차 없었지만, 그날 내리던 눈, 얼어붙은 땅, 함께 올린 기도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M 덕분에 완전히 꺼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눈내리는 겨울 날 새벽 세 시쯤, 텅 빈 도로를 걸으며 고양이에게 가야 한다고 중얼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했을 때, 저는 이미 몸도 마음도 부서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졌습니다.
유일한 가족이라 여겼던 고양이는 곁에 없었지만, 그 뒤로 저는 연애를 시작해 결혼까지 이어졌습니다. 연애 초반, 남편은 “출퇴근을 무사히 했는지만 알려 달라”며 하루 종일 혼자서 사랑 넘치는 메시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주일 교회에서만 겨우 만날 수 있었던 시간들.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대단한 건지, 남편이 대단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한 집에서 서로의 리듬을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시절, 제 몸을 갈아 넣으며 가게를 지켰습니다. 결국 무너졌지만, 그 폐허 위에서 배운 교훈이 지금의 저를 지탱합니다. 사람과 시스템이 함께 서야만 브랜드가 오래 간다는 사실을, 뼛속까지 새겼습니다.
가게는 “돈이 돈을 버는 곳”이 아닙니다.
사장님이 직접 책임지고 서 있어야 돌아가는 현장입니다.
가게를 내팽개친 채 미덥지 않은 직원에게 맡겨 두고, "놀면서 용돈 벌듯 창업해도 된다"는 말은 절대 믿지 마십시오. 내 가게라면 내가 더 바빠야 합니다.
원천징수, 보험, 세금, 발주, 인사, 교육, 민원, 리뷰 응대—모두 사장님의 몫입니다.
좋아서 하시든, 사명감으로 하시든, 버텨야 하는 날이 훨씬 많습니다.
정부지원도, 2호점 계획도 지금 가게가 제대로 서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의 매장과 직원, 손님, 사람을 먼저 우선하십시오.
한 사람이 네 사람 몫을 해내는 구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성실해도 팀과 시스템 없이는 한계가 빨리 찾아옵니다.
제도를 가볍게 여기면 결국 스스로 무너집니다.
원천징수, 보험, 세금은 번거로운 절차가 아니라 필수 안전망입니다.
SNS는 ‘많이 올리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짧아도 꾸준히 기록하고, DM·댓글에 제때 답하는 힘이 신뢰를 만듭니다.
좋은 리뷰보다 중요한 건 한 잔의 일관된 품질입니다.
하루의 커피 맛이 제각각이라면 단골은 남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을 기른다면, 적금이든 보험이든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그 돈은 곧 생명줄이므로 절대 손대지 마십시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어떤 사장은 “너는 귀한 사람이 아니다”, “여기 아니면 못 버틴다”, “우리니까 데리고 있는 거다”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가스라이팅입니다.
근로는 시혜가 아니라 계약입니다.
사장이 “데리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본질을 흐리는 것입니다. 근로계약이 성립되는 순간, 임금을 지급할 의무와 권리가 서로에게 있습니다.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한 만큼 정당하게 주고받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직장 하나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특정 사업장에서 흔들린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과 존엄은 이미 충분히 의미 있고, 그 자체로 귀한 것입니다.
“나가면 더 힘들다”는 말도 흔히 들리지만, 그건 지금의 열악한 환경을 강요하려는 말일 뿐입니다. 법이 보장하는 기준은 누구에게나 같습니다. 누군가 “다른 알바들은 다 참는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집단적 묵인을 강요하는 권력 남용일 뿐입니다.
그러니 기억하세요.
‘너는 귀하지 않다’는 말에 지지 마세요.
사람의 가치는 성과 이전에 존재에서 시작됩니다.
직장이 그 가치를 깎을 수는 없습니다.
비는 언젠가 그칩니다.
40일 동안 세상을 덮던 비가 그치자, 사람들은 약속의 무지개를 보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가게는 사장님의 현장입니다. 매장을 내팽개치고 외부 활동에 치우치면, 매장은 반드시 틈이 납니다. 직원에게 전권을 맡겨 두고 “요령껏 굴리라”고 말하는 순간, 시스템은 무너집니다.
“놀면서 월세만 나오는 가게”는 환상입니다. 창업을 부추기는 말에 기대지 마십시오. 내 가게면 내가 더 바쁩니다. 발주·품질·인사·위생·민원·세무—모두 사장님의 이름으로 남습니다.
정부지원·2호점은 ‘지금 가게’ 다음입니다. 지금 가게와 직원, 손님, 사람을 먼저 지키십시오. 기본이 무너지면 어떤 확장도 모래성입니다.
버티게 하는 힘은 ‘좋아서 하거나, 사명감이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은 좋아함이 사명감이 되고, 어느 날은 사명감이 좋아함을 떠받칩니다. 그 둘이 없다면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당시 가장 큰 실패는 직무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다 보니 공정 전체가 뒤엉켰고, 결국 모든 영역에서 연쇄적인 무너짐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저는 팀별 역할을 명확히 나누는 것이 생존의 조건임을 배웠습니다.
음료팀
에스프레소·브루잉·라떼 제조 전담, 모든 레시피 그램·초·온도 기록
피크타임 로테이션으로 체력 분산, 정기 블라인드 컵테스트
식사팀
파스타·빵·소스 전처리·조리, 전일 준비, 메뉴별 수량 기록
품절 시 통일 멘트 사용, 위생 점검표로 상시 관리
홀팀
좌석·예약·동선, 클레임 대응, 좌석 배치·키즈·펫 정책 고정
클레임 응대 멘트, 노쇼 대응, 배상·신고 문서화
MD팀
굿즈·상품 기획, 입고·진열·판매·결산, 품목 승인·검수 절차
도난·손실 책임 기준 명확화
SNS팀
업로드 주 2~3회 고정
하이라이트에 FAQ(주차·좌석·콘센트·키즈·펫·포장·피크시간)
DM·댓글 SLA(응답 기준 시간) 설정, 전담자 배치
행정팀
업무: 회계·급여·세금·지원사업, 원천징수·4대보험 납부 일정 관리
세금·지원금 전용 계좌 분리, 증빙 폴더 별도 관리
가능하면 회계 대행 의무화
매니저
원두·우유·소모품 발주 및 재고 체크
레시피 카드 표준화, 정기 컵테스트
전기·수도·가스·머신 예열, 위생 점검, 재고 스냅샷(사진+수량)
회계·급여·세금, 지원사업·보험 관리
VOC 기록, 24시간 내 피드백
SNS 피드·스토리 주 2회, FAQ 고정
저녁 아르바이트
오후 피크 음료 제조, 테이크아웃 속도·품질 유지, 테이블 청소, 분리배출
머신 백플러싱, 냉장고 라벨 교체, 제빙기 점검, 당일 판매·폐기 기록
콘센트·포장 등 기본 안내
주말 아르바이트
오픈→영업→마감 단독 수행, 머신·재고·위생 점검, 브리핑 노트 확인
음료 제조, 매장·테이크아웃 주문 처리
정산(현금·카드 대조), 폐기 기록·사유 메모, 위생 점검 후 사진 보고
사람이 부족하니 다 같이 한다는 말은 장기적으로 전 영역의 무너짐을 부릅니다.
최소한의 역할 분리를 통해 책임과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작은 매장도 매니저·저녁 알바·주말 알바처럼 구분된 책임을 설정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참고문헌
고용노동부, 「근로기준법 해설」, 「이직확인서 안내」, 「고용보험(실업급여) 제도 안내」
보건복지부, 「4대 사회보험 제도 안내(국민연금·건강보험)」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 지원사업 운영 매뉴얼」
일본 후생노동성(MHLW), 「To Everyone Who Has Lost Their Job(실업급여 안내)」, 「Employment Insurance Gu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