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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Feb 11. 2022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

2006,  직장이었던 여행사는 박봉이었다. 대한민국 1 여행사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였다. 입사를 위해 2 면접을 보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쌀집에서나 쓸법한 계산기를 꺼내 툭툭 누르더니, ‘급여 150만 원에 식대 10만 원, 연봉 1920만 원인데 괜찮으냐’라고 물었다. 나라는 사람의 가격이 일 년에 이천만 원도 안된다는 사실에 슬퍼할 정신이 없었다. 일단 붙고 생각해봐야겠다는 마음에 ‘사규에 맞게 받겠습니다라는 정해져 있는 답변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사 일은 생각지도 않게 너무 재밌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꿈꾸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출장을 갔고, 일 년에 한 번은 일주일 이상 장기 여행을 떠났다. 박봉의 월급에 출장비를 차곡차곡 더하니, 친구들의 대기업 연봉도 부럽지 않았다. 일본, 중국, 태국, 그리스, 알래스카, 싱가포르, 홍콩, 베트남, 캄보디아 등등의 세계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상품기획자로서의 첫 데뷔는 크루즈였다. 초호화 여행의 대명사였던 크루즈는 당시 가족여행으로 각광받기 시작하고 있었다. 막연한 환상은 있으나 잘 알려진 것은 없었기에 할 일이 무척 많았다. 회사 사람들이나 여행사 대리점 사람들을 위해 교육도 해야 했다. 고객들에게 배포할 안내자료나 상품 브로셔도 필요했고, 여행 떠나기 전에는 상품설명회도 필요했다. 여행 상품을 세팅하고, 특가 상품, 인솔자 동반 등의 특전을 내걸었다. 한 팀 모으기도 힘들던 날에는 경쟁사 담당자와 함께 공동 모객 상품을 만들었다.


여행사 일은 많았고, 시끄러웠으나 재밌었다. 상품 기획부터 교육, 홍보마케팅, 정산, AS까지 담당자가 오롯이 해내야 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여행업계 이전이었기에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는 일이면 무조건 평타 이상을 쳤기에 나는 내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단지 시장 상황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이 좋았던 거였다.



신혼여행을 지중해 크루즈로 다녀왔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시부모님, 아이들과 함께 싱가포르 크루즈 여행을 했다. 십 년간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처음 내게 담당자라는 이름을 붙여준 첫사랑 같은 크루즈였다. 2020 신년 파티를 크루즈에서 하고 한국에 돌아와 크루즈 여행의 여운에 빠져 있을  코로나19 터졌다. 1-2년이면 금세 회복될 것이라 생각했다. 2022년인 지금도 앞으로의 나날은 예측하기 어렵다. 2000년대 초반 여행사에서의 내가 배웠던 것들은 향후 몇 년간은 해보기 어려울 것이다. 혼자서 오롯이 누군가의 여행을 준비하고 계획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전화받는 , 이메일 쓰는 , 좋은 인상을 주는 ,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알리는  등등  모든 사회생활의

기초를 여행사에서 배웠다.


돌이켜보니 여행사 상품 담당자 하나하나가 스타트업이었다. 그래서 스타트업의 생리가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만약 친구들처럼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아마도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겠다는 생각도 간혹 든다.






2022년의 가장  목표는 책을 쓰기 위한 초고를 쓰는 것이다. 가제는 ‘벤처기업가 아내의 고백이다. 결혼한  한 달 만에 창업한 남편을 옆에 두고 보면서 느낀 점을 쓰려고 한다. 올해의 결심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지금  글을 쓴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간신히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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