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아이들을 보며 배운다. 내가 배웠던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닌 걸 깨닫는데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음미체만 재능이 아니구나. 공부도 재능이구나. 글을 잘 읽고 이해하는 것이 재능이구나.
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어린 내게 ‘내가 널 가르치기만 하면 전교 1등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난 너에게 고기 잡아주는 대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고전적인 멘트로 날 들들 볶아댔다. 엄마는 늘 혼자 알아서 하게 두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알려주지 않았다. 비가 와도 우산 한 번 들고 학교에 온 적 없고, 숙제 좀 갖다 달라고 전화해도 네 잘못이라며 그냥 혼나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스타트업 정신에 노출되어 스타트업 하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교육관 덕분에 엄청나게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랄 수 있었으나 마음 한편에는 내가 어린 시절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아이들이 필요한 순간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엄마가 필요했다고 믿었던 순간에 아이들에게도 있어주고 싶었다. 아이들을 타인의 손에 키우기보다는 부족해도 내가 직접 키우고 싶었다. 엄마가 줄 수 있는 안정감을 마음껏 주고 싶었다. 그러나 타고난 성정과 교육받은 과정이 살갑고 따스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엄마로서의 삶은 다소 버거웠다. 그저 넓고 느슨하게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아이들은 엄마가 잔소리가 많다고 불만이 많다. 특히 악기 연주할 때면 연습하는 5분의 시간 내내 내 입은 쉴 줄을 모른다. 예전에 연습했던 바이올린 악보가 머릿속에 외워져 버렸다. 그래, 나도 안다. 문제가 크다. 아이들에게는 대재앙일 것이다. 심플리 피아노 악보를 보며 연주하다가 미 플랫을 한 백개쯤 놓치면 슬슬 머리에 열이 오른다. 기대한 음과 다른 음을 들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나만 힘들다. 애들은 그저 즐겁다.
‘외워서 연주하면 내 것 같아서 좋단 말이야!’ 악보 좀 보고 연습하라고 잔소리하는 내게 첫째는 항변한다. 계속 잘못 연습하는 건 실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 안 되는 부분을 제대로 반복 연습할 때 완성도가 높아진다. 반복 연습은 재미없다. 안 되는 부분을 반복하는 건 특히 더욱 그렇다. 내가 내 엄마에게 받고 싶었던 건 이런 관심이었다. 내가 안 되는 부분이 뭔지 알려주고, 같이 연습해주는 것. 힘들다고 징징거리면 받아주는 것. 내가 해주고 싶은 엄마를 직접 해보니, 애들도 힘들고 나도 벅찼다. 내 시간이 없다. 즐거움을 어디서 찾을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오늘은 엄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