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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Jul 16. 2018

엄마의 재택근무

30대에 시작하는 프리랜서

아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침은 온다.

새벽 5시에서 6시쯤에는 눈이 떠지는 나지만, 아침에는 언제나 바쁘다.


정신없이 아이들 옷 입히고, 아이들 입 안으로 아침밥을 쑤셔 넣는다. 알람이 울리면 양치를 한 뒤 신발장 앞으로 집결. 거실에 있는 모든 집기를 안 보이는 데 치워두고, 로봇청소기 2개를 돌려두고 집을 나선다. 

어린이집 안 간다는 아이를 어르고 얼러 셔틀버스를 태운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등굣길에 나선다. 아이 '둘'의 등원이 끝난 시간은 오전 8시 30분. 


그때부터 엄마의 재택근무는 시작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를 좀 먹었던 생각은 '내가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인간 같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소비하고, 돈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삶만 지속하다 보니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느낌만 들었다. 아이는 예쁘지만, 아이와 온종일 하는 시간은 아주 가끔 즐거웠다. 왜 아이와는 한 말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하고, 한 일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하는가. 결과보다도 과정이 중요한 일이 육아라지만, 과정도 과정 나름이지.


나는 그냥 돈이 벌고 싶었다. 소비하는 사람이 아닌, 생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아는 나는 한 달에 단돈 10만 원이라도 꾸준히 벌 수 있는 사람이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집에서 다른 사람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 동안 일을 하고,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는 엄마랑 놀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인 분의 구인 공고를 보았다. 지금껏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분야였다. 그리고 중요했던 근무 조건은 주 1회 출근. 출근하는 날 하루는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했다. 



무조건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뿐, 나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으로 재택근무했던 업무는 보도자료 쓰는 일이었다. 이렇게 쓰는 것이 맞나? 싶을 만큼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떠다녔다. 출산 전, 다녔던 회사에서 나름 일도 많이 하고, 일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우습게도 정말 많이 헤맸다. 임신하고, 출산을 경험하는 동안 머리도 많이 굳었고, 손끝의 감각도 무뎌 있었다. 


아이와의 시간을 배분하는 일도 어려웠다. 어린이집에 가기만 하면, 무조건 즐겁게 놀다 올 것이라는 내 생각이 멍청했다는 걸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달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만 있었고, 그나마도 엄마 무릎에 앉아 있어야 했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울며 버티는 딸을 보며 '집에서 일하겠다는 것이 그렇게 욕심인가?' 싶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찾은 나름의 해결책은 아이와 함께 9시 이전에 잠드는 것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밤에 일하려고도 생각해봤지만, 내가 옆에 없으면 아이가 깊게 잠들지 못했다. 일하다가 쪼르르 달려 나와 다시 데려가 재우기 일쑤. 새벽 5시에서 6시쯤 일어나서,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일을 시작했다. 재택근무의 장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언제 어디든 일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까지도. 새벽 2시간쯤 일하고, 아이 어린이집 보내고 2시간쯤 일한다. 반나절 정도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집안일은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만 했다. 최대한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면서 산다.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2대 , 건조기 등등. 



그렇게 시작했던 재택근무가 벌써 꼬박 6년이 넘어간다. 첫째가 돌이 지나자마자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벌써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


이제는 일도 많이 숙련되고, 함께 일하는 실장님과도 합이 잘 맞는다. 서로 별 말 안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이랄까. 신뢰도 많이 쌓이고, 서로 상황에 대한 이해도 높은 편. 




아이를 키우며, 일도 할 수 있는 현재 상황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꾸준히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어 행복한 요즘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곤 한다. 딸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떤 직업을 갖게 될까. 회사에 들어가게 될까? 전문직을 갖게 될까? 우리 딸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때에도 일을 그만둬야만 하는 상황이 닥칠까? 


미래에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상황이 멈췄으면 좋겠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이 이루어져서 남녀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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