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 imagine Jul 09. 2018

엄마의 바이올린

30대 중반에 시작하는 악기

이십 년 전쯤, 초등학생 시절의 얘기다. 교회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 콘테스트가 열렸다. 어렸을 적 덮었던 낡은 이불을 가져갔다. 한데 남들은 악기를 가져오는 것 아닌가. 플루트며 바이올린 같은 악기가 너무 부러웠다. 갖고 싶었다. 당시 나는 남들 다 배우는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다. 피아노가 그렇게 꼴 보기 싫을 수 없었다. 피아노는 멋없는 악기였다. 게다가 피아노는 들고 다닐 수도 없다. 뭔가 남들 안 배우는 악기를 배워야 했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럴땐 언제나 엄마와 딜이 필요하다.


"엄마!"
"응!?"
"나,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가르쳐줘." (왜 이렇게 요령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던 걸까? ㅜㅜ)
"피아노 배우잖아. "
"싫어. 남들 다하잖아." (돌이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된다 ㅠㅠ)
...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사는데 30만 원이야. 엄마 돈 없어. 배우고 싶으면, 나중에 돈 벌어서 네가 직접 배워."
"싫어. 싫어. ㅜㅜ 엉엉엉."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제풀에 지쳐 악기 논란을 접었다. 엄마는 한번 안되면 안 되는 사람이었고, 더 얘기해봐야 맞는 일만 더해졌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이 그렇듯 나도 피아노를 관두었다. 보습학원에서 영어, 수학을 배웠다.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갔다. 직장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하나 더 낳았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둘째가 돌 때쯤 되었을 무렵, 나의 답답함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맘 속의 화들은 닿을 곳 없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하루는 남편에게, 하루는 부모님께, 하루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아침이면 첫째를 부랴부랴 유치원에 보냈다. 유모차에 둘째를 싣고 잠들 때까지 공원을 미친 듯이 걸었다. 둘째가 잠들면 집 근처 단골 카페로 갔다. 아이가 잠든 달콤한 두 시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인 시절이었다.

한없이 젊다 느껴지는 내가 한 줌 아줌마로 스러져가는 것이 아까웠다. 속도 쓰렸다. 뭔가 해야 하는데, 늘 둘째가 발목을 잡았다. 둘째 어린이집 입소는 3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볼품없이 처진 살들, 낮아진 자존감, 비어버린 통장, 삐걱대며 돌아가는 머리. 우울했다. 슬펐다. 그런 나날 중의 하루였다. 카페 안내문에 바이올린이라고 쓰인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4:1로 바이올린 강습을 한단다. 강습료는 한 달에 5만 원. '둘째는 어쩌지?'하는 고민 대신 일단 등록했다. 바로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했다. 아이는 잘 해낼 것이고, 좋은 선생님이 와주실 거라 믿었다.


그렇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매번 낑낑대는 바이올린 소리가 귀에 거슬려도 재밌었다. 엄마가 왜 어렸을 때 안 시켰을까 아쉬웠다. 우울과 은둔의 시간 중, 바이올린은 한 줌의 빛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바이올린이 벌써 2년이 지나간다. 여전히 소리는 삐걱거린다. 사실 3년이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스즈키 2권에 머물러 있다. 사실 빠른 아이들은 스즈키 4 ~ 5권까지도 나갈 수 있는 시간이다. 손가락이 굳어서 빠르게 옮겨지지도 않는다. 가끔 악보도 희미하게 보인다.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보면 연습할 시간도 많지 않다. 누구탓 할 사람도 없이 혼자징징거리면서 배운다. 그래도 재밌다. 어떤 노래를 연주하면 좋을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마 바이올린은 평생 가져갈 취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른이 되어서, 절박한 상황에서 갖게 된 취미, 엄마의 사교육. 누군가는 허세, 사치라 하지만 굴하지 않겠다.


환갑잔치는 바이올린 독주회로 꾸미련다. 앞으로 이십 년 조금 더 남았다.



I'm still young.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사교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