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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Feb 05. 2020

글 쓰는 일을 해요.

그러면 글 잘 쓰시겠네요?! 네?

집에서 일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동네 애기 엄마들은 제게 부럽다는 말과 함께 제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글 쓰는 일을 해요.
다른 이들의 글을 편집하는 일도 해요.


이렇게 대답하고 나면...

우와~ 글 엄청 잘 쓰시겠네요!


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너무나 부끄러워집니다. 제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밥벌이로서의 글쓰기가 익숙해서 그저 익숙한 글을 반복할 수 있는 스킬이 조금 있을 뿐인데.... 글을 잘 쓴다니요! 그저 황송할 뿐입니다.




1월 한 달 동안, 일을 하나도 없었습니다. 근 3-4년을 꾸준히 해왔던 일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2019년 12월을 기점으로 계약 종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방학이 겹쳐, 아이들과 같이 집에서 빈둥거렸습니다. 넷플릭스 미드를 정주행 하고, 살면서 처음으로 게임에도 빠졌습니다. 그저 매일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고, 또 다음 주로 미루었습니다. 일을 다시 하고 싶은지, 더 놀고 싶은지, 내 마음이 어떤지 결정도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2월. 신기하게도 일이 몰아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한 달 쉬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일에 빠르게 익숙해집니다. 다시 타인의 글을 매만지며, 어떤 사람이 글을 썼을까 조심스레 상상해봅니다. 은퇴한 어르신이 쓰신 글에는 삶의 연륜이, 청소년이 쓴 글에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주부의 마음으로 동네를 꼼꼼하게 살핀 글도 보입니다. 이웃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인터뷰한 기사에는 좀 더 마음이 갑니다.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넘치는 부분은 자르고, 예뻐 보이게 만들어갑니다.


가을 콘텐츠를 만들어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았습니다. 바깥은 춥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난리지만, 마음속으로는 울긋불긋 단풍빛으로 가득한 단풍여행지가 펼쳐집니다. 바닥에 깔린 낙엽을 밟으면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립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공기와 파란 하늘 덕분인지, 한국에서의 단풍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일을 다시 시작하자 빈둥거리던 삶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걸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무척 중요한 저란 존재에게 ‘일’이 차지하는 부분이 무척 컸구나 싶습니다. 스물다섯 살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어느덧 15년 차입니다. 늘 찾아주시는 클라이언트분들,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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