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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Aug 14. 2018

엄마의 휴가

성수기는 피해야 할 것 같아요.

안그래도 조용한 동네인데, 유독 더 조용하다. 모든 이들이 휴가를 떠난걸까. 집에 머물며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으려니 괜시리 기분이 묘해진다.


여름 휴가라는 단어에는 그리움이 묻어 난다. 초등학생쯤 사촌들과 해변에 텐트쳐놓고 자던 것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닭백숙하겠다고 들통 가득 삶던 닭, 밤새 화투치던 어른들의 얼큰해진 얼굴과 계곡에 동동 띄워 시원하게 먹던 수박까지. 언제나 친척들과 함께 했던 여름휴가는 싸우며 끝났지만, 다음해 여름이 되면 같은 일이 매년 반복되었다. 내 기억 속 여름 휴가는 그런 것.


중학생이 되면서 학원을 핑계로 우리집의 여름 휴가에 따라다니지 않았다. 대학생때는 방학때 친구들과 여행을 다녔다. 졸업 후, 여행사에 취직하면서 여름휴가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여행사 직원은 7~8월 성수기에는 휴가를 쓰기 어렵다.) 언제나 바쁜 남편은 여름 휴가를 가는 법이 없었다. 체력좋은 그는 금요일 밤에 퇴근 후 출발해 일요일 저녁에 집으로 도착하고도 월요일에 거뜬히 출근했다. 그런 남편과 십 년을 살다보니 남들 다가는 여름 성수기에 왜 여행을 가나 싶은 정도가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첫 여름방학이었다. 유치원 어린이집과 큰 차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기간이 더 길었고, 학원도 모조리 방학을 일제히 시작하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편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어디라도 가볼까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지만, 너무 더운 날씨라 포기했다. 집에서 에어컨 실컷 틀고 보내야지 싶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집에서 보내는 휴가는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둘째 셔틀버스 시간 맞추느라 소리지르며 아이를 깨우지 않아도 되었고, 밥을 먹니마니 잔소리할 필요도 없었다. 학원 데려다주느라 왔다갔다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돌아다니고 싶을 때 돌아다녔다. 밥 먹고 싶을 때 먹고, 시간 구애 받지 않고 낮잠을 잤다. 밤늦도록 미드를 보았고, 아이 둘을 껴안고 책을 읽었다. 아침은 간단하게, 점심은 외식, 저녁은 밥만 해서 반찬가게에서 사다먹었다. 아이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나의 컨디션에 따른 일정이었다. 아이 둘이 집에 있으니 재택근무도 어려웠다. 이메일 알람을 껐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일상만 남았다.



한 때 ‘ㅇㅇ 한달 살기’가 유행하면서 나도 그런 로망을 가진 적이 있다. 초록빛 잔디가 깔린 까만 돌담집에 살며 근처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며 밥을 짓는 삶.  아이들은 피부가 새까매질때까지 바다에서 실컷 놀고, 나는 그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을 바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잘 모르는 동네에 아이들만 편하게 놀라고 둘 수도 없을 것 같다. 아이들과 같이 놀다 보면  저질 체력의 나는 금세 지쳐버릴 것이 분명했다. 휴가때야 이 악물고 버틸수도 있겠지만, 일상적으로 언제나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내려주는 커피 머신이 있고,

푹신푹신한 침대가 있고,

음성지원으로 검색되는 TV가 있는 우리 집.


우리집에서 보내는 여름 휴가.

참말로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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