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 imagine Aug 30. 2018

엄마의 취미

비 내리는 날, 멍 때리기

비가 내린다.
이렇게 비가 하얗게 내리는 날이면, 일부러 집을 나서곤 했다. 혼자 카페 창가자리를 앉았다.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비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를 오래도록 듣곤 했다.

오래전 이야기다. 사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취미라고 생각 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에 맞춰 할 일이 언제나 있다. 가까스로 데드라인을 맞추느라 발을 동동구르며 산다. 아이 도시락통을 챙기고, 삼시세끼를 챙기고, 학원 셔틀 시간을 챙기고, 학원 숙제를 챙기고, 아직 보내지 않았지만 보낼지도 모르는 학원을 챙긴다. 그리고 내 일의 마감을 챙긴다. 매일, 일주일, 한달 단위이거나 가끔 들어오는 프로젝트성 일들. 달력은 아이의 스케줄과 엄마의 마감으로 가득하다.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마음껏 멍때릴 자유라니! 얼마나 사치스러운 취미인가. 비가 세차게 내려야 하고, 그 기간에 통유리창이 있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에 있어야 하며, 커피는 맛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혼자 있어야 했다. 시간에 맞춰 커피숍에 미리 앉아 있으면 비가 내리지 않았고, 비가 내릴만 하면 집에 갈 시간이었다.



어제도 그런 실패의 나날 중 하루였다. 마감을 하나 마치고 숨돌릴 여유가 조금은 생겼던 날이었다.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에 앉아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라떼를 주문했다. 치즈케이크도 함께였다. 열시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맞게 창가자리에 자리를 잡고 비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날씨가 흐려 곧 비가 세차게 내릴 듯 했는데, 한 두 방울 떨어지다가 멈추었다.



결국 다른 취미로 노선을 변경했다.

두번째 취미는 골목길에 있는 작은 파스타집에서 혼자 ‘파스타 & 와인 즐기기’이다.



이건 파스타집을 고르는 일이 조금 까다롭다.

ㅁ 프랜차이즈가 아니어야 하고,

ㅁ 골목에 위치한

ㅁ 규모가 작은 파스타집이어야 했다.

ㅁ 테이블이 일곱 여덟 정도 되는...

ㅁ 그리고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익명성이 보장된 곳을 골랐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너무 작아서 어디를 가든 아는 사람을 꼭 만난다.)


파스타를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아 취미가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했다. 평소에 보기 힘든 잡지도 뒤적거리고, 꽂히는 활자에 정신을 팔리기도 한다. 혼자 파스타를 먹고 있으면 모르는 어딘가로 여행 온 기분이 든다. 내 시간을 가장 충실히 쓰고 있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한시간쯤 천천히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나면 집으로 돌아기 일상을 이어나갈 용기를 얻는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