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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Sep 21. 2018

엄마의 결혼기념일

벌써 10주년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까마득히 많은 선물보따리 중에 여러개를 고르라고 했다. 작고 예쁜 선물을 하나 골랐다. 이것만 가지고 가겠다고 했더니, ‘이 모든 것이 너의 복이니 전부 가져가라’며 선물 보따리가 내게로 쏟아졌다. 보따리는 솜사탕처럼 가볍고 부드러웠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 났다.


10년 전 오늘 아침이었다.



10년 전 오늘은 우리가 결혼하던 날이었다. 결혼이 어떤 건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앞으로 장밋빛 시간만 함께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지중해 크루즈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은 시작되었다.


결혼하면 매일 함께 저녁먹고, 와인 한 잔하며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런건 TV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장은 서울, 집은 경기도. 왕복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은 3시간. 칼퇴근해서 집에 돌아와도 오후 여덟시 반이었다. 결혼한 지 한달만에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늘 바빴다. 모임과 약속으로 가득한 남편 없이, 넓은 집에는 언제나 덩그러니 나 혼자였다.



주말에는 양가를 오가느라 할일없이 시간만 갔다. 결혼하면 함께 여행하고, 자전거 타고, 같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사라져갔다. 3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던터라 대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연애와 결혼은 전혀 다른 카테고리였다. 그는 활동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었고, 나는 혼자 책읽고 영화 보면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었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다녀와서 힘들어하는 나를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나를 보면서 마음에 안들어하는 그의 눈빛을 나는 참지 못했다.


결혼하고 초반에는 참 많이 다퉜다. 살가운 보살핌을 제공하는 전업주부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살림에 서툰 내게 불만이 많았다. 빨래와 청소 상태에 의문을 제기했고, 나는 같이 일하는데 왜 집안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내가 져야하는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서로 평행선만 그리던 시간이었다. 언제나 바빴던 그는 잠깐 집에 들렀다가는 듯 느꼈고, 홀로 육아하는 내 맘은 그저 외롭기만 했다. 결혼이란 이렇게도 의무만 가득한 걸까? 결혼하고도 한참동안 나자신을 결혼제도와 맞지 않는 인간이라며 후회하곤 했다.



한때는 서로 끝없이 미워하기도 했고, 무관심하고,감정의 바닥을 치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괴로워하기도 했고, 전부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사히 결혼 10주년을 맞이했다.



감정의 골이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했던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는 감정 표현이 솔직하고 거침없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감정 표현을 숨기고 상대방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타입이었다. 그는 즉흥적이고, 나는 준비하는 시간이 조금은 필요했다.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알고, 서로 해결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공대생인 남편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를 인식’하게 하고, ‘to do list’를 구체적으로 주는 일이 제일 중요했다.


요즘에는 서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사실 별것 아닌 것들인데, 항상 바쁜 남편과 살다보면 해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최근 버킷리스트는 신랑과 평일 점심 같이 먹기. 가끔은 집 근처에서 일하다가 휙 사무실로 가버리는 남편에게 좀 서운했달까. 평일에 밥 한번 먹자고 했더니, 그는 남들은 평일에 부부가 점심을 먹기도 하느냐며 신기해했다.  그런 과정끝에 결혼 십년동안 처음으로 평일에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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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결혼 10주년때 또다시 크루즈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올해는 여건상 어려워 아쉬웠다. 10주년 결혼기념일에 남편님께 굳은 다짐을 받았으니 2019년 이맘때는 떠날 수 있겠지?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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