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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Oct 09. 2018

엄마의 출장

혼자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옳다

프리랜서인 나에게도 일년에 한두번 해외 출장의 기회가 간혹 주어진다. 아이를 봐주셔야하는 친정 부모님, 아이들의 학교 & 학원, 내 개인 스케줄이 모두 가능해야만 떠날 수 있는 엄청난 일이다. 엄마가 출장을 가기 위해 아이가 학교에 현장학습 체험 신청서를 냈다고 주변에 얘기하자, 주변 엄마들의 반응은 하나.


엄마가 출장을 가야해서 현장학습 신청을 내고, 아이가 학교를 빠진다고?
헐, 대박!

출장을 떠나기 전, 정리할 일이 산더미다. 한국을 비우는 시간 동안 일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미리 미리 일을 정리해두는 것은 프리랜서의 삶에서 꼭 지켜야하는 기본 중의 기본.


거기에 출장을 위한 내 짐을 꾸리고, 친정집으로 향하는 아이들 짐을 싸고, 빨래를 미리 해두고, 냉장고 정리해서 음식쓰레기를 빼두고, 출장기간 동안 남편이 먹을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두는 것도 모두 출장 준비이다. 빠듯한 시간 속에서 모든 준비를 말끔히 마치기 위해 to do list, 데드라인 알람이 사정없이 울린다. 아이의 학교, 학원 선생님께 학원 결석 소식도 전해야하는 일도 놓칠순 없다. 마지막으로 부모님 용돈까지 드리고나면 준비 끝!

그렇게 떠나게 된 마카오 출장이었다. 다섯번째 방문이었다. 같은 지역을 이렇게 여러번 온 곳도 마카오가 처음이었다. 10개월만의 마카오라 그런지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아, 또 얼마나 바뀌었을까.


사실 단순히 취재때문에 설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내가 출장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잠자리때문이다. 우리 집은 퀸사이즈 침대 두개를 나란히 붙여 네 식구가 함께 잠을 청한다. 침대 하나당 성인 하나, 어린이 하나가 자면 편안한 구성이지만, 사람 일이 언제나 계획처럼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어떤 날은 아이들 ‘둘’이 엄마랑 자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칼잠을 자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아이들이 가로로 잠을 들어 내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둘째가 싼 오줌에 축축함을 느끼며 강제로 기상한다. 그런 삶에서 출장은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혼자 오롯이 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체인의 호텔을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마카오라니! 꼭 가야하는 출장이다.

출장은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최고로 꼽는다. 게다가 ‘출장’이란 모름지기 남의 돈으로 떠나야 제 맛 아닐까? 출장비를 이용해 맛있는 음식 찾아다니며 먹고,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니! 대신 마카오의 여행 스팟을 소개하는 콘텐츠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만큼, 더 자세한 정보 전달을 위해 그 어느때보다도 많이 움직인다. 평소 5천보 정도 걷는데 반해, 출장 중에는 보통 2-3만보까지도 너끈히 걷는다. 카페 투어를 컨셉으로 하는 여행에서 하루에 커피를 다섯잔 이상 마시기도 하고, 먹방 콘셉트에서는 1일 5끼가 기본이 되기도 한다.

늘 아이들과 붙어 있다가 잠깐 떨어져 있는 시간이라 그런지 출장 다녀오면 아이들이 더 예쁘게 느껴지고, 사무치게 그립기까지 한다. 달콤한 출장은 언제나 옳다.

아이들 학교, 학원, 친구들 약속 시간에 맞추느라 최적의 상태로 움직이는 동선도 느슨해진다. 일부러 길을 잃고, 일부러 버스 정류장에서 일찍 내리기도 한다. 아는 길도 돌아서 가고, 버스에서는 멍 때리고 바깥 풍경에 빠져든다. 그 때만큼은 ‘엄마’ 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원래의 나’로 돌아온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하고 싶은 여행 스타일을 찾아 요리조리 헤매다보면 행복함이 몰려 온다.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출장 또 가고 싶지만, 내년을 기약해 본다. ㅜㅜ

당분간 안녕!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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