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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Dec 23. 2020

행복의 파랑새는 어디 있나

음악이 주는 즐거움

어렸을 때 읽었던 ‘파랑새’라는 동화가 떠오른다. 파랑새를 찾아 온갖 곳을 돌아다녔으나 결국 집에 있었다는 얘기. 어릴 때는 그 얘기를 믿지 않았다. 집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곳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모두 밖에 있었다. 여행, 콘서트, 예쁜 카페, 힙한 바, 친구, 일 등등 모두 밖에 있었다. 여행이 좋아서 여행사에 취직했고, 거의 모든 음식을 사 먹었다. 똥손임을 탓하고, 경제적인 논리를 들었다. 밖에 예쁜 카페들은 많았고, 맛집들도 많았다. 주말마다 밖으로 돌았다.


삼십 대 초반에는 패러글라이딩에 미쳐서 주말마다 돌쟁이를 이끌고 전국을 떠돌았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부터는 여행을 다녔다. 짐을 바리바리 싸고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일상의 시작이었다. 주말에 밖에서 노느라 힘들었으므로 주중에는 대충대충 일을 해치웠다. 도우미 아줌마를 썼고, 물건을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샀다가 대충 구석에 박아뒀다. 창고에는 쓰레기로 가득했고, 여행 갔다가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물건들로 가득했다.


이대로 살다간 집도 나도 쓰레기가 되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지난해부터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혼 때부터 십 년 넘게 살았던 집에는 수많은 흔적들이 쌓여 있었다. 몇 달간 계속해서 버리기만 했다. 쓰레기는 끊임없이 나왔다. 집에서 숨만 쉬어도 나왔고, 집에 없는 순간에도 나왔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집을 정리했고, 단식을 했고, 마음 상담을 받았다.


올해부터는 정리된 집을 가꾸기 시작했다. 누레진 벽을 흰색 페인트로 칠했고, MDF로 만든 싸구려 가구를 정리했다. 안 쓰는 아일랜드 식탁을 철거해서, 온 가족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을 놓았다. 촌스러운 조명을 바꾸고, 베란다에는 인조잔디를 깔고 캠핑 장비를 두었다. 일 년 동안의 가족 프로젝트였다. 뭘 살지 고민하고 얘기하며 가족의 취향에 점점 가까워졌다.


남편의 선물로 샀던 오디오가 어제 도착했다. 블루투스 오디오 비교 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지인들의 오디오도 빌려보면서 결정했던 제품이었다. 평상시 음악을 잘 듣지 않았던 터라 큰 기대가 없었다. 조금 더 좋은 소리를 듣는다고 뭐 그리 달라지겠나 싶었다.


오디오가 도착하자마자 싱어게인을 다시 들으며 음악에 흠뻑 빠졌다. 음악이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집 구석구석이 아름다운 선율로 채워졌다. 아침에 일어나 클래식 기타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데,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다. 행복의 파랑새는 여기, 바로 내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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