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조금 더 다정해 지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니다.
비건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듯이 변화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일어났다. 언제부터인가 비거니즘, 동물권, 기후위기, 제로 웨이스트 등의 단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주치는 단어들은 나에게 낯섦과 불편함이 아닌 호기심과 관심,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중요한 이슈들로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추구하고 살아가야 삶의 방향을 안내해주는 표식과도 같은 단어들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비거니즘은 나의 삶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이 발단이었다. 이 책은 비건이라는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나를 재촉해 달려가도록 만들었다. 비건과 비거니즘이라는 세계에 입성하여 제대로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그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당연하게 존재하고 여겨졌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난 이후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다양한 비거니즘 관련 책들을 읽고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보면서 기후변화와 동물권, 제로 웨이스트와 같은 단어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거니즘은 연결이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공존하는 삶을 지향하는 방식이자 가치관인 것이다. 나를 살리는 일이 곧 지구를 살리는 일이고, 동물들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 지구의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이후로 나는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조금 더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육류와 유제품을 끊은 것은 아니다. 1년 정도는 비건을 지향하면서 스스로를 플렉시테리언(채식 지향으로 살되, 상황에 따라 육류도 먹으면서 탄력적인 채식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지칭하면서 가끔씩 자체적으로 채식에 쉼표를 찍기도 했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비치거나 타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싫어서 식사 약속이 있을 때에는 고기를 먹기도 하였다. 비건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경계와 틀을 만들어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비건과 비건이 아닌 사람들로 구별 짓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단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비건이라는 단어에 갇혀 내 안에서 틀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완벽한 비건이 되지 않아도 좋다. 그럴 필요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실천으로 옮겨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날라리 비건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특히 요즘에는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하거나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채식에도 락토, 락토 오보, 페스코 등 여러 종류와 단계가 있지만 이렇게 서로 경계를 지어 구분하는 것보다 그저 채식 또는 비건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채식주의와 비거니즘을 존중하고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소수의 완벽하고 극단적이며 철저한 비건들 보다 다수의 완벽하지 않은, 날라리(?) 비건들이 비건 친화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그렇게 점점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지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내가 지금 일상 속에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왜 고기를 안 먹기로 한 거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충분히 되었으리라.
어느 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비건, 비건 지향인의 좌충우돌 비건 라이프가 펼쳐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