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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Feb 19. 2020

착한 직원보다 시건방진 직원이 인정받는 이유

며칠 전에 지인으로부터 함께 알고 있는 A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참 착한데.. 상사한테 맨날 이용만 당하고 동료들도 딱히 A를 좋아하는 것 같지가 않아."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트러블도 많이 일으키고 건방지지만 일은 잘하는 같은 부서의 다른 직원(이하 B)과 그 둘 중 전자는 대놓고 무시하고 후자만 싸고 도는 그 둘의 상사(이하 C)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상황을 선악의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상사가 나쁜 사람이고, 사람이 착하니까 주변 동료들도 무시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폭언이나 왕따 등 직장 내 괴롭힘은 명백한 잘못이 맞습니다. 이를 옹호하려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다만, 보통 사람들이 모여서 애매하고 선악구도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종종 생기기도 하는지라 이에 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A는 다음과 같은 직장인 입니다.


사람을 잘 믿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협조적입니다.  

시킨 일을 군소리 없이 열심히 하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실수 투성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업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것 같지가 않은데 또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업무 진행에 관해 디테일하게 가이드라인을 주면 이를 충실하게 따르지만, 상황이 변하면 일의 순서나 내용을 그에 맞게 유연하게 바꾸지는 못합니다. 상황이 바뀌면 또 처음부터 끝까지 잡아줘야만 일이 진행됩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일의 순서를 잘 정하지 못하고, 데드라인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분명히 중간에 합의하고 공유된 일정인데 이에 대해 이야기하면 처음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짓습니다. 

부서 전체가 매우 급한 일정에 쫓기면 바쁘게 일을 해야 하는 시점이며, 상사가 부서 전체에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공유했는데 그 시기에 예정에 없던 휴가를 갑자기 쓰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담당한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엉뚱한 일을 열심히 합니다. 객관적인 상황상 급하지도 않은 일을 주변과 상황 공유도 하지 않고 시작합니다. 왜 하냐고 물어보면 미안해하면서 ‘필요해 보여서요’라고만 이야기합니다.  

가끔 뭔가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일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고, 왜 하고 싶다는 건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업무를 진행하는 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배웠고 어떤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그냥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대조적인 스타일인 직장인 B가 있습니다.  


주변과 곧잘 싸웁니다. 큰 소리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대놓고 이야기하진 않지만, 남보다 본인을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게 주변 사람들 눈에 보입니다. 

일에 대해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무엇을 이루고, 이후에는 어떤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사가 아주 명확합니다. 

일을 시작할 타이밍에 정확하게 시작하고 가열차게 밀어붙입니다. 

시키는 일도 문제없이 잘 처리하지만, 업무 초기 방향이나 방법이 명확하지 않을 때 자기 의견을 잘 내고 일의 체계를 잘 만듭니다. 

상사가 낸 의견이라고 해도 반론을 제기합니다. 

반론을 제기할 경우 이유나 근거, 그리고 그 반론대로 했을 때 달성 가능한 목표 등에 대해 논리적이고 명확합니다. 

새로운 것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거나 빠르게 배웁니다. 

필요하다면 야근이나 주말근무도 가리지 않으며, 주변에도 그에 동참할 것을 요구합니다. 

동료는 물론, 심지어 상사에게도 일정이 급하니 같이 야근하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은 A와 B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 사람들이 부서 동료거나 혹은 여러분의 부하직원이라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이상화 or 매도로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는 C


사람들 중에는 착하고 성숙한 성인군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일부는 타인에게 공격성을 곧잘 드러내거나, 자신의 우월성을 과도하게 믿고 타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유형을 편의상 C라고 하겠습니다.) 


A가 C가 아닌, 성숙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상사나 동료를 만나게 되면 '일머리 없고 답답하지만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겠지만, 오랜 시간 주변에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도와준다면 자기 월급 몫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지요. 그리고 B 같은 경우에는 '일은 잘 하지만 의욕이 과하다', '주변에 무리를 주니 조금 더 부드럽게 행동하라'는 평과 함께, 차츰 모난 성격이 둥글둥글해지거나 자기 성향에 맞는 직장을 찾아 떠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C 같은 성향을 가진 분들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특히 직장에 더 많습니다. 회사라는 조직은 성과를 최우선시하는 곳이고 그래서 아무래도 공격적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사람들이 살아남고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큰 곳이다 보니 그렇습니다. 


그리고 C와 A가 만났을 때, 즉 과도한 공격성을 가지고 남을 이용하길 좋아하는 스타일이 사람은 좋지만 업무 처리 능력이나 자신감, 집중력 등이 약한 사람과 결합되면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C의 대표적인 특징은 사고가 별로 성숙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나이나 경험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고가 성숙'하다는 것은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 각각의 입장을 이해하며 사물을 좋다/나쁘다의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치나 사상에 관해 이분법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C는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접근합니다. 좋은 놈/나쁜 놈, 혹은 내가 좋아하는 놈 아니면 내가 싫어하는 놈으로 나누죠.


그래서 C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 대해서는 섣불리 이상화합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를 높여주는 사람은 착하고 유능하며 멋진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죠. C는 보통은 가해자로 인식되지만 자기가 이상화한 대상에게 이용당하는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최고여야 하는데 직급이나 권위, 능력으로 당해낼 수 없는 사람이 생기면 아예 나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해버리는 거죠. 애초에 나와는 다른 레벨의 사람이라고 규격 바깥에 놓아버리면 자기 자존심은 지킬 수 있으니까요. 회사 생활하다 보면 상무님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면서도 과장, 대리한테는 왕처럼 군림하는 상사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인 것이지요. 등급 바깥의 상무님은 나와 비교 대상이 아니지만, 같은 무대 위에 있는 우리 중에서는 내가 최고라는 마인드입니다. 게다가 이상화한 대상이 사실은 문제가 많은 사람인 경우엔 누가 봐도 휘둘리고 있는데도 '사정이 있겠지', '원래는 좋은 사람인데 무슨 일이 있는 거야'같은 식으로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규격 외 존재로 이상화했으니 그 반작용으로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깎아내립니다. 사람은 균형을 찾는 존재이기도 하고, 규격 안에서는 내가 최고여야 하니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은 선과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C 유형은 이상화한 사람은 무조건 감싸고, 평가절하한 사람은 무작정 멍청하고 나쁘다고 매도하고 혼냅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은 좋지만 업무는 서투른 A같은 사람들은 C의 먹잇감이 됩니다. 일방적으로 혼나고 이용당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 거죠. 아니, 그냥 C한테 맞서면 되지 않냐구요? B처럼 당당하게 자기 의견 얘기하면 되지 않냐구요?



자기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는 A


A에게는 A만의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감과 성실성, 책임감, 현실성이 부족한 것이 그것입니다. 


나름대로 일도 열심히 합니다. B같이 주변 사람들한테 모진 얘기도 하지 않구요. C 같은 상사에게 당하면서도 화도 못 내고 속으로만 끙끙 앓게 되니 당연히 회사 생활이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현실성이 부족하기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C가 자신에게 이유 없이 가혹하게 굴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나아질 텐데 그저 '직무가 나랑 안 맞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운이 없었다'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그냥 상황과의 부조화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운'으로 퉁치는 것이죠. 단지 상황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가 결론이 됩니다. 그리고 운 탓을 하면 운이 좋아질 때까지 그냥 가만있으면 됩니다. 어떤 경우도 내 탓이 아니니 내가 바뀌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이 사회생활 속에서 성숙한다는 것은 대략 세 가지 단계로 이뤄진다고 합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발췌한 것인데, 출처가 생각이 안 나네요.. 꼭 표기하겠습니다)


1) 자기의 입장과 생각을 가져야 하며, 

2) 그 생각이 세상과 몸 담고 있는 조직의 상식 범위 안에 있어야 합니다.

3)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개인의 생각이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집단의 긍정적 가치와 동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숙의 출발점이 되는 '자기 입장과 생각'을 가지려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A는 자기 성찰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A 유형은 업무 체계화나 우선순위화 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진짜 원인이지만 이를 직시하지 못합니다. (여담으로 B 같은 경우엔 그럼 능력이 있으니 자기 성찰도 한 것이냐라고 생각하면 그건 아닙니다. B는 자아 성찰이 아닌, 이성적 판단과 분석 등 지능을 통해 자기 생각을 가지게 된 케이스입니다. 성숙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고 지식과 분석으로만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큰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흠.. 그럼 A는 멍청한 사람이니 괴롭힘 당할만하고 사회에서 밀려나도 싸다는 뜻이 되는 걸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직시하면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는 말을 드리려던 것입니다. 직무 탓, 운 탓을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같은 문제가 반복될 뿐이니까요.


가령 내가 업무 자체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일과 관련된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물어볼 수도 있죠. 


일은 알고 있지만 업무를 진행하는 체계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다이어리에 정리라도 하고, 구글 캘린더에 진행 상황별로 일정을 기입하고 알림 설정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주변에 꼼꼼한 사람에게 일정을 관리하거나 일을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배우는 등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게 됩니다. 


저의 지인 중에는 자기가 일을 진짜 못한다는 사실을 30대 초반에 깨달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은 그 순간부터 매년 다이어리를 5권 넘게 쓸 정도로 본인의 업무와 일정을 꼼꼼하게 체크했습니다. 회의 시간에 나온 상사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적어서 다시 살펴보고, 이해가 안 가는 점은 자기보다 어린 직원에게까지 찾아가서 물어보고 확인하며 일을 진행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비록 일잘러는 아니더라도 1인분은 거뜬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회사에도 성숙한 사람들이 많아서 A 같은 사람에게 부족한 점은 알려주고 도와주면서 채우고, B처럼 과한 면은 조절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참 좋겠습니다만 조직이라는 곳이 속성상 이렇게 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타인을 이용하고 자기가 우위에 서려는 미성숙한 C 같은 사람이 많고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 그리고 머리는 좋지만 타인에게 공감하거나 함께 일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 곳이 회사이다 보니 우리 직장생활이 팍팍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나은 직장생활과 삶을 위해서는 우선 자기를 들여다보고, 공동체가 가지는 부정적인 면은 직시하되 긍정적인 면은 받아들이고 체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리적인 나이나 경험이 쌓인다고 꼭 성숙해지지는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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