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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un 07. 2020

테크 스타트업에게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

기술력과 경쟁력

최근에 시리즈 A 펀딩 전후 상황에 있는 테크 스타트업들을 코칭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핫한 AI 기반 자동화, 생산 설비 효율화, AR/VR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기술의 성숙도나 팀원 구성, 적용 사례를 살펴보니 충분히 시리즈 A 투자를 받을 만한 기업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테크 스타트업 대부분이 부딪히는 문제를 이들도 겪고 있었습니다. 갖고 있는 기술 수준은 높은데 대규모 레퍼런스나 매출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B2B, 특히 내가 가진 기술을 바탕으로 고객사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영업/마케팅을 강화시켜주는 솔루션 회사의 생존에는 레퍼런스가 중요합니다. 기술 개발에 성공한 뒤에는 레퍼런스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우리 솔루션을 채택한 고객사가 많고, 그 사례들의 규모가 크고, 고객사가 얻는 혜택이 클수록 회사가 추가적인 매출을 얻을 기회는 점점 더 많아지고 빨리 다가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시리즈 A에 근접한 테크 스타트업은 이 부분에서 벽에 부딪힙니다. 




1. 시리즈 A 투자의 의미


10억 원 이상의 지분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스타트업에게 굉장한 성취입니다.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사업 자체가 매우 매력적이다', '향후 급격한 매출 향상과 시장 장악의 가능성이 있는 팀이다'라는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투자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인적 네트워크 때문에 집행하는 경우도 있고, 포트폴리오 운영상 특정 분야에 일정 금액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즉,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성공을 보장받았다는 뜻도 아니고, 앞으로 순조롭게 성장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냉정하게 보자면 '기술 괜찮은 거 인정하니까 이 돈으로 살아남아보세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테크 스타트업이 빠지는 함정


이제 제가 코칭한 스타트업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그들이 처한 상황은 바로 1) 투자자로부터 기술의 차별성은 인정받았지만 2) 레퍼런스를 만들기가 어렵다, 즉 시장과 고객 반응은 시원찮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해당 스타트업의 기술이 재미있어 보이고 또 써보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해보는 과정은 짧아도 1~2년,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일입니다. 새로운 시설을 지을 계획이 있다고 해도 시스템 기획이나 테스트 등을 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기존에 운영 중인 시설에 도입하는 정도라고 해도 레거시 시스템과의 호환성 같은 문제들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AR 콘텐츠 같은 것들은 가볍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벤트성으로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고객사에게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큼 고객사가 지불하는 비용도 낮아질 수밖에 없죠. 즉, 테크 스타트업의 지갑에는 별 보탬이 안됩니다. 게다가 몇 번 써보고 신선한 맛이 사라지면 적용을 중단하는 식의 불안정성도 큽니다.


제가 코칭한 테크 스타트업들 모두 괜찮은 기술 바탕으로 투자자들의 시선을 붙잡는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출발은 잘 한 셈이죠. 하지만 앞으로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고객사로부터 발생하는 매출입니다. 하지만 고객사의 관심이 매출로 연결되지 않거나, 매출이 되기까지 지나치게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아님 몇 번 써보고 마는 식이 많다는 것이죠. 


이런 케이스가 몇 번 반복되면 테크 스타트업의 마음은 급해집니다. 정교하게 잘 기획된 매출 성장 기회가 아니라, 돈이 되는 모든 일에 덤벼들기 시작합니다. 당장 내 주머니가 비어있으니까요. 


이런 상태가 몇 년 지속되다 보면 초기에 세웠던 멋진 계획도, 기술적 엣지도, 창업자의 열정도 사라진 채 그저 고객사의 외주 업무를 맡아서 하는 용역 업체에 머무르게 됩니다. AI로 물류 자동화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물류 시스템 SI업체가 되는 셈이죠. 



3. 근본적인 원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테크 스타트업이 보유한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본질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없는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차별화에만 집중한 나머지, '고객에게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혜택을 제공한다'는 본질적 가치에는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가 개발한 멋진 기술이 실제로 구현된다면 고객사가 얻을 혜택도 클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고객사는 기존에 보유한 설비가 있고 그것을 활용하는 기존 방식이 있습니다. 이 모두를 하루아침에 새로운 기술로 대체할 수는 없죠. 고객사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상황들을 고려하면서 조금씩 개선하며 사업을 영위합니다. 


테크 스타트업들은 고객의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객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중장기적인 역량 강화를 위한 해결책도 동시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차별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은 우리 기술을 활용하는 고객이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죠. 




많은 테크 스타트업들이 시리즈 A는 물론, TIPS를 비롯한 대규모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고 언론에 보도됩니다. 하지만 몇 년 후에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죠. '차별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인정받았지만 실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질적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은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해도 고객사의 업무 효율, 원가 경쟁력 측면에 구체적인 benefit을 주지 못한다면 그냥 기술 자랑에 불과합니다. 


멋진 기술을 만드는 것보다 그것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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