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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ul 17. 2020

'무자본으로 1,000만 원 벌기'에 대한 우려

자본주의와 무자본 창업

누군가의 노동에 대해 일정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명확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대규모 토목/치수 공사에 동원된 인력에 대해 대가를 지불한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도 영조가 청계천 치수 사업에 동원한 인력에게 노임을 지불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가를 지불했다고 해서 그 시대의 경제 시스템에 대해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는 않습니다. 일을 시켰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으니까요. 


모든 시스템에 포함되는 요소(가령 노동)가 동일하다면 각 시스템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동일한 요소 대신에 생산수단의 소유와 활용 형태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1. 생산수단과 자본주의


'생산수단'이란 노동 그 자체가 아닌, 노동의 결과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성을 쌓기 위해 몇십 명이 끙끙거리며 돌덩어리를 들어 올릴 수도 있지만 도르래나 거중기를 쓰면 더 빨리,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경우 생산수단은 도르래/거중기라는 물리적 실체가 됩니다만, 더욱 근본적으로 파고들자면 결국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네덜란드 상인들이 선박과 선원에 투자하는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들은 기술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했습니다. 다만 기술이 현실화된 배를 혼자서 만들기에는 자본이 부족했기에 십시일반 힘을 모아 주식회사를 만든 것이지요. 


정리하자면 '생산수단(혹은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본이 투입되는데,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경제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고대 이집트로 돌아가 봅시다.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만드는데 투입된 인력들에게 노임 이외의 수입, 예를 들어 피라미드 관광 수익 일부를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완성된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파라오가 가지는 정신적 만족감도 나누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노동 그 자체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급했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대부분의 과실은 생산수단을 가지고 노동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자에게 돌아간 셈이지요. 


네덜란드에서는 배가 무역품을 싣고 와서 벌어들인 돈에 대한 분배가 이뤄졌습니다. 사실 그 돈은 현지 원주민의 노동과 상품을 이동시킨 선원들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애초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초기 투자금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는 바로 이 자본금을 넣었다는 사실, 즉 투자에 대해 대가를 지급하는 시스템인 셈입니다. 


그리고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이 자본재, 즉 투자했다는 그 사실 만으로 대가를 받을 권리가 생기는 생산수단을 만들고 활용해서 더 큰 자본재로 만든다는 뜻이지요.


※자본재 : 부(富)를 생산하기 위하여 사용·소비되는 토지 이외의 재화


가령 어떤 건물을 매입했다고 해봅시다. 우리는 건물을 활용하겠다는 사람에게 임대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테넌트 관리는 물론, 마케팅도 잘했다면 더 많은 임대료를 받게 될 것이고, 건물이라는 유형 자산에 평판과 유명세라는 무형 자산이 추가되어 건물 가격은 더 높아지겠지요. 이 건물을 매각하면 자산 소득(Capital gain)을 얻게 됩니다. 


2.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들


물론 생산수단의 투입과 그 과실을 맛보는 것 사이에는 세 가지 변수가 존재합니다. 운, 사회적 인프라, 경쟁이 바로 그것이죠. 


간밤에 화재가 나서 하루아침에 건물이 잿더미가 된다거나, 자연재해로 건물이 붕괴된다거나 하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영역입니다. 예방하려는 노력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완벽하게 예상하고 방지할 수는 없죠. 


두 번째는 바로 사회적 인프라, 혹은 맥락입니다. 가령 강남 아파트로 떼돈을 벌고 있는 갭 투자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현대',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 속에 있기 때문에 이런 수익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령 한국이 아니라 내전 중인 아프리카 어떤 나라에 건물을 한 채 가지고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개인의 자산이나 소득에 관해 정부가 세금을 걷어가고 사회적 책임을 요구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동네는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는 경쟁입니다. 네덜란드 주주들이 힘을 합쳐 남미로 배를 띄우는 것은 사실 도박에 가까웠습니다. 운이나 인프라를 제외하더라도 당시에는 수많은 선박이 한 탕을 꿈꾸며 남미로 출항하던 시기였습니다. 배를 띄우더라도 다른 배와 해상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고, 배가 침몰하기도 했습니다. 도착지에서는 다른 유럽인들에게 약탈을 당하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결국 우리 회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어내도 시장 경쟁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고 극단적으로는 경쟁사에서 똑같은 상품을 반값에 출시하면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인 셈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자본가들이 그들의 투자에 관해 수익을 가져가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됩니다. 이 치열하고 무서운 경쟁상황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감행했으니 대가를 가져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경쟁상황을 이겨낸 것은 그 자본으로 고용된 경영자와 노동자이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애초에 투자자가 없었으면 경쟁 자체를 시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니.. 어느 한쪽이 옳다기에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3. 무자본 창업이 유행하는 맥락


여기까지 자본주의에 관해 길게 설명한 것은 바로 요즘 직장인 사이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는 '무자본 창업'에 대해 이야기해보기 위해서입니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자본을 투입해서 자본재를 구입하고, 그 자본재가 생산수단이 되어 노동의 결과물을 상승시켜주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운, 인프라, 경쟁으로 인해 내가 투입한 자본이 자본재로 전환되어 생산수단으로 작동하는지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퇴직금으로 떡볶이집을 차렸는데 옆집 음식이 더 맛있어서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내 투자는 분명 자본재이기는 하지만 생산수단은 되지 못한 셈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냥 사회적 낭비인 것이지요.


자본의 투하는 이렇게 불확실성을 가진 어려운 의사결정입니다. 그래서 많은 창업자들은 자본 투하보다는 '무자본 창업'을 희망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콘텐츠나 지식 등 자본재의 도움 없이 개인의 역량만으로 '유명세'라는 무형의 생산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무자본 창업은 최근에 더욱 각광받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극소의 자본 투입으로 개인이 무형 자본을 가지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국가가 인정해주는 공인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인데, 변호사나 의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고용된 형태로 일하되, 자기 명성을 높이는 방식을 찾아서 이를 자본재化하는 형태입니다. 기업의 전문 경영자나 교수, 정치인들이 이와 같은 패턴을 가지고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들 또한 명시적으로 대규모의 돈이 한꺼번에 들지 않는다는 것일 뿐, 사실은 엄청난 자본 투하를 요구합니다. 10년 이상 국가 공인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 혹은 석박사 과정이라는 리스크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죠. 이후에도 레퍼런스, 실적, 유명세, 명성 등을 쌓기 위해 적지 않은 축적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프라가 발달하는 한편,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한 비용이 소모되지 않게 되면서 지극히 단편적인 지식이나 경험으로도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그리고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등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시장에 공급자로 참여하기 위한 초기 자본의 필요성이 극도로 낮아졌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진짜 무자본 창업이 가능해진 것처럼 보이고, 준비기간에 대한 압박도 없어 보이니 주머니 사정과 기술/스펙이 빈약한 2030이 뛰어듭니다.  


4. 무자본 창업과 안정성 이슈


하지만 최근의 이런 '무자본 창업'열풍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자본재가 주는 최소한의 안정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자본재라는 고정자본은 창업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판매가 조금만 부진해도 감가상각이라는 이름으로 실적을 크게 악화시킵니다. 하지만 그 고정자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떡볶이 가게가 망하기도 쉽지만, 어느 정도 기본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면 떡볶이 가게라는 물리적 실체가 최소한의 고객의 발길을 붙잡아 주는 것이지요. 


※ 고정자본 :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서 생산활동에 사용되는 재화. 설비·장치·기계 등이 해당됨.


반면에 자본재가 없는 온라인에서는 고객당 획득 비용이나 서비스 비용이 최소화된 덕분에 엄청난 마진을 챙길 수는 있지만 안정성을 기대할 수 없는 무형 자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유연하지만 같은 이유로 극도로 비즈니스가 불안정한 것이지요. 몇백만의 구독자가 있는 유튜버가 논란 한 방에 사라지는 세계라는 이야기입니다. 


기업체에 있는 분들이라면 경영진이 브랜드나 R&D 같은 무형자산에 대해 강조는 하지만 막상 돈을 쓰려면 인색하게 구는 이유를 이해할 것입니다. 무형자본은 그 특성상 매우 불안정하고 ROI를 도무지 측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일본과의 무역분쟁이나 코로나 19 대응을 보면 국가에 굴뚝 산업이라고 부르는, 대규모의 유형 자산을 운영하는 제조업 기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안정감 차이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세상이 온라인化되고 각종 무료 플랫폼이 넘쳐나면서 유명세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본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필연적인 불안정함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수가 있을까요. 자칫하면 시장의 변화나 논란을 견딜 수 있는 그 어떤 자산도 없이 그 모든 충격을 개인 혼자서 온전히 버텨야 할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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