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과 완벽주의자
스타트업을 하려면 당연히 성실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성공 의지를 가진 사람 중에서 책임감과 자기 통제력이 높고 삶과 일을 조직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성공 가능성이 높죠.
누구나 자기가 나름 성실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스타트업 창업자의 절반 이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한 제가 성격분석 툴로 검사했던 2,000여 명의 창업가/창업 희망자 중 성실성 지표가 표준치 이하인 사람이 절반이 넘으니까요. 수많은 스타트업이 창업 후에 망하는 이유가 다 있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성실하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들 중에서도 2~30%는 '완벽주의' 성향을 보이게 되는데요, 이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타트업은 결국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성공 여부도 그렇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업무도 그렇죠. 강박적으로 꼼꼼하게 준비하고 모든 것을 걸었기에 집착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의 경중에 따라 나타나는 완벽주의는 차라리 건강하다고도 볼 수 있죠. 반복해서 확인해도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는 게 결국 사업이니까요.
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모든 일에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혼자서만 완벽에 집착하면 모를까, 보통은 주변 사람에게 이런 성향을 표출하고 모두의 정서적 안정을 망가뜨립니다. '나는 이렇게 목숨 걸었는데 너희는 뭐야?' 하는 마인드죠.
중요한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은 좋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는 건 자기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입니다.
완벽주의자는 일을 구조화시킬 줄 모릅니다. 일의 경중이나 순서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매일 밤새고 준비하는 것은 많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성향은 스타트업 창업 초기에는 치명적입니다. 아무리 준비해도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계획대로 된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이죠. 경험하지 않은 시장에서 만나보지 않은 고객이 내 계획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곧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아주 좁은 일부만 조망하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스타트업 창업 방법론으로 Lean Startup이 등장한 것 자체가 사전에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보다는 빠른 의사결정과 상황 대처, 순발력과 지구력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스타트업 창업에서는 실패를 통해 '학습'하는 것이 핵심이죠.
하지만 완벽주의자는 '경직성'을 띄고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오래 걸린다는 뜻입니다. 매번 완벽하게 준비하느라 Time to market을 놓치는 것은 물론, 초기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고객 반응을 통해 확인한 후에도 인정하고 보완하는데 오래 걸립니다. 그런 식으로 비즈니스가 힘을 잃어가는 것이죠. 열심히 하는 것 중요하고, 때로는 강박적으로 디테일에 집착하기도 해야 하지만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는 이게 잘 안됩니다.
성실한 사람은 일을 빈틈없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는 일을 완벽하게 하지 못합니다. 스타트업 창업은 '정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응'이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자의 유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불안과 연결된 완벽주의, 2) 에고와 연결된 완벽주의, 마지막으로 3) 이상과 연결된 완벽주의가 그것입니다.
1) 불안형 완벽주의자
불안과 연결된 완벽주의자는 불안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적 반응을 나타내면서 한 가지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 일에 몰입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이라는 성향 자체가 그렇습니다. 현실에 뇌의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을 불확실한 것들에 할애합니다. 그래서 불안형 완벽주의자는 호들갑 떨고 올인하는 듯 하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이런 유형이 창업자라면 팀원들을 들들 볶기만 하고 성과는 못 내죠.
2) 에고형 완벽주의자
에고와 연결된 완벽주의자는 '열심히 하는 나'를 보고 만족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척'합니다. 불안형과 마찬가지로 현재가 아니라 주변의 인정이나 내 이미지가 주 관심사라 역시나 일에 몰두하지는 못합니다. 당연히 조직화나 구조화도 안 되는 일못인데 자기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상황에 대해서는 원인을 생각하기보다는 '내 자존감에 상처를 줬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죠.
에고형 완벽주의자는 사실 창업을 하면 안 되는 유형입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도 잘할 사람들은 아닌지라 사회생활 10여 년이 채 되기 전에 스타트업 창업에 기웃거립니다. 의외로 Series A까지는 잘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남에게 보여주는 데는 능력이 있어서 이 정도 투자까지는 받아냅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투자자와 함께 폭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에고가 희생되느니 그냥 같이 죽는 것이죠.
혹시라도 사회생활 경력이 긴 경우에는 그냥 꼰대, 그중에서도 상꼰대가 됩니다. 경직성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인데요. 쉽게 말해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내 생각은 틀린 게 없는데 주변 사람들이나 세상이 더러워서 그렇다고 탓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타인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3) 이상형 완벽주의자
세 번째는 자기가 그리는 이상을 위해 완벽주의자가 된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 창업가의 재목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다'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옳고, 세상과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상형 완벽주의자는 창업에 있어서 최악의 유형입니다. 타인을 도구로 취급하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도 추상적인 목표를 위해 희생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데요, 수감된 살인자가 죽일 사람이 없어 자기를 죽였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어떤 유형이건 완벽주의자는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들기 전에 자기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불안형 완벽주의자 - 불안과 감정 기복이 심하다면 정서적 안정이 우선이고, 충분히 다스리고 난 뒤에 아이디어 현실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죠.
에고형 완벽주의자 - 에고가 과도하게 강한 사람은 사실 고치기가 힘듭니다. 타고난 기질에 성장기의 경험이 학습되어 생긴 문제이므로 의지로 고칠 수가 없죠. 혼자 창업하는 것은 좋지만 딱 거기까지.
이상형 완벽주의자 - 이상을 추구한다면 자기에게 과도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런 자신을 컨트롤해줄 브레이크를 확보한 상태에서 창업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아마도 1984년 이전의 애플 이사회가 이런 역할을 해줬을 겁니다. 자기에 대한 수용과 인정은 경험을 통한 것일수록 가치 있습니다. 잡스가 우리가 아는 잡스가 된 것도 애플에서 쫓겨난 경험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면 집요하게 매달리고 만족스러울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확인하고 컨트롤하려는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 스트레스로 인해 타인의 노력을 폄하하고 분노하며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비즈니스를 망가뜨리게 됩니다.
완벽주의로 일을 대하지 마세요. 중요한 일을 완벽하게 합시다.
패스파인더넷은 기업 성장 전략 전문 Advisory입니다.
Seed ~ Series A 까지의 초기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기업의 Corporate Venturing 전략(사내 스타트업 프로그램 설계 및 운영, 오픈 이노베이션 등)에 대해 조언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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