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스타트업의 M&A
이미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5월에 무신사가 스타일쉐어 및 29CM를 인수했습니다.
후배와 여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기업과 스타트업, 그리고 M&A에 관해 몇 가지 생각이 들어서 정리를 해봅니다.
예전에는 M&A라고 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유망한 회사를 그다지 좋지 않은 방식으로 인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인력을 빼돌리거나 납품받은 후 카피 제품을 만드는 식으로 중소기업에 타격을 주고, 기업가치를 낮춘 후에 M&A를 하곤 했죠.
그렇지만 2010년대 이후부터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제 값'을 치르고 매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카카오나 네이버같이 스타트업이었다가 거대하게 성장한 기업들이 이런 성향이 강합니다. 물론 그동안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쌓이고 공정위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덕분이지만, 불과 10여 년이 안 되는 사이에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약탈하는 행위는 매우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제 값을 치르고 하는 M&A가 국내에 정착이 된 것이죠. MBA에 있던 2000년대 초만 해도 미국 기업들이나 그렇게 하는 줄 알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최근 중간 규모까지 성장한 스타트업은 더 큰 스타트업이나 혹은 IT 대기업에 매각하는 형태로 Exit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투자자들과의 계약 때문이든, 경영진의 성향 때문이든 이유야 어찌 되었건 매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의 Exit은 IPO만 있는 게 아니죠. 각 성장 단계별로 매각이 활발해져야, 결과적으로 Exit 형태가 다양해지고 시장의 선순환이 가능합니다. 다만 이런 흐름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 최상위 30대 그룹사들인데,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할지는 불분명한 부분이 많습니다.
대기업들이 국내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고 M&A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IT기업이나 게임회사 등에 비해서는 보수적인 행보인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 글에서도 계속하던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자본규모, 의사결정 능력 측면에서 가장 우월한 경제주체인 대기업들이 그들의 자금을 창업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투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차라리 해외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스타트업을 M&A 하면 기존 기업문화와 노무 측면에서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클뿐더러, 기업 브랜드 측면에서도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해외 스타트업은 기존 조직과 굳이 하나로 묶을 필요도 없고 외국인들에게는 예외를 자주 인정해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 또한 해외 스타트업을 선호하게 만드는 이유인 듯합니다.
대형 스타트업들이 중간 규모 스타트업을 M&A 하는 것은 바로 규모를 키워서 IPO 하려는 목적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자본 시장의 규모도 작지는 않지만 미국 시장에서 IPO를 하는 것이 가치 측면에서는 훨씬 매력적이므로 규모와 시장 장악력을 강화한 후 미국 시장으로 직행하는 모델이 생겨났습니다. 최근 쿠팡의 시도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