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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Oct 29. 2021

비즈니스 모델 구축, 핵심요소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

어떻게 하면 산업구조를 유리하게 바꿀 것인가.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모든 거래는 당장 눈에 보이는 가격 이외에 여러 가지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된다는 이론입니다. 쉽게 말해서 제품/서비스를 사는 데는 돈도 돈이지만 고르는 시간이나 에너지도 든다는 뜻이죠. 


우리 일상에서 예를 들어볼까요? 대형마트는 동네 시장보다 비싼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격만 생각하면 시장에 가는 게 낫죠. 하지만 시장은 일단 주차가 불편합니다. 그리고 물건을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혹시라도 교환이나 환불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골치가 아파지죠. 그러니 이 모든 것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대형마트를 이용합니다. 거래비용 관점에서 생각하면 부수적인 거래비용( = 주차나 교환/환불 등에 소모되는 시간과 비용, 노력)을 절약할 수 있는 대형마트를 거래처로 선택한 것이죠. 


세상 모든 경제적 활동은 이 거래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달해왔습니다. 재래시장보다 가격은 비싸도 거래비용이 낮은 마트가 각광을 받았고, 이제는 오프라인보다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더 적은 온라인이 중심이 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SNS 역시 마찬가지죠. 오프라인에서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하면 잠잘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SNS에서는 클릭 몇 번으로 소식을 알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죠. 


이 이론을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에 적용하면 몇 가지 재미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보였던 여러 이야기들이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알 수 있죠. 




첫 번째 인사이트는 사업을 시작할 때 거래 비용이 최대한 높은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야놀자나 배달의 민족이 진입한 시장은 온라인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서 업체에 대한 정보나 서비스 품질, 후기 등의 거래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려운 영역이었습니다. 카카오톡 또한 문자 메시지에 건당 요금을 부과해서 돈을 벌겠다는 통신사들의 정책 덕분에 불과 2년 만에 5천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문자 메시지는 전송하는 것 자체로도 돈이 들었지만 다수의 사용자와 함께하는 메신저 형식보다 소통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즉, 거래 비용이 높았던 것이죠. 


게다가 같은 메신저라도 당시 존재했던 네**온, 지* 같은 서비스들은 모두 이메일 기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전화번호 기반이라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이나 주로 쓰는 이메일이 달랐던 사람들에게도 접근성이 좋았습니다. 


스타트업이 제품/서비스를 검증하는 방법론 중 하나인 MVP 테스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시장에 거래비용이 존재하고, 우리 제품/서비스가 이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죠. 


두 번째는 스타트업은 초기에 비록 소수의 고객일지라도 나와 거래하지 않으면 거래 비용이 많이 발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안을 찾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콘텐츠 제작을 하는 회사라면 우리 회사가 아니고서는 이 정도의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플랫폼이라면 여기와 거래하지 않으면 장사에 지장이 발생하게 할 수 있을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프랜차이즈 같은 경우에는 우리 브랜드만 보고도 맛과 가격을 예상하게 만들어서, 고객이 실망하거나 당혹해할 확률을 낮춰야 합니다. 즉, 프랜차이즈 역시 거래비용을 낮추는 기능을 하는 것이고 이것을 확대한 것이 바로 O2O 플랫폼입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도,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가 아니고서는 내 포스팅을 이만큼이나 보고 또 반응해줄 사람들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죠. 만약 새로운 SNS에서 동일한 수준의 도달이나 리액션을 받기 위해서는 사용자 입장에서 이동에 따른 에너지 소모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이라고 하죠. 


비록 소수의 고객일지라도 그들이 나와 거래하지 않으면 전환 비용이 크게 발생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피터 틸이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이야기한 '니치 시장에서의 독점력'이 됩니다. 제가 초기 스타트업에게 제품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고요. 


세 번째, 스타트업은 무조건 자기가 속한 산업의 기업 수보다 고객 수가 많아야 합니다. 


자동차 배터리 관련 개발을 하는 스타트업을 가정해봅시다. 완성차를 타겟으로 한다면 국내에는 고객이 현대자동차그룹밖에는 없습니다. 메이저 부품사라고 해도 만도나 모비스 등 몇몇 업체밖에는 고객이 될 수 없죠. 다른 고객이 될 수 있는 배터리 회사 역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 회사 배터리 기술 수준이 높고 인정받고 있더라도 이런 시장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결국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 정도가 될 것입니다. 물론 국내 고객들에게도 제품을 판매해야겠지만, 사업 초기부터 힘들더라도 해외의 완성차 업체나 부품, 배터리 업체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현대자동차그룹과 거래가 틀어지거나, 혹은 그들과의 거래 조건이 나쁘더라도 기업의 성장과 미래를 담보할 수 있습니다. 그냥 '우리 기술도 괜찮고 대기업에 아는 사람도 있으니까 납품하면서 매출 올리자'라고 생각하면 그 회사의 한계는 너무도 분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혹은 AI 기술을 개발하는 업체를 생각해봅시다. 고객사와 일을 하다 보면 마치 SI(System Integration) 업체처럼 외주를 받아서 납품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회사의 사업은 기껏해야 외주 인건비 따먹는 장사가 될 뿐입니다. 운이 좋아서 초반에 눈에 띄는 경쟁사가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하나 경쟁자들이 등장할 테고 그렇게 되면 고객에게 대규모의 전환 비용을 물릴 방법이 없어집니다. (우리 회사가 아니더라도 저 회사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심지어 더 싸게.) 우리 회사의 솔루션이 고객의 거래 비용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회사는 One of them이 된 것이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현실적으로 외주를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서비스의 거래 비용을 낮추기 위한 시스템화, 즉 SaaS(Software-as-a-Service)로 성장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해야만 기업의 성장 한계가 고객사 몇 군데의 예산 책정 상황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애초부터 고객이 회사보다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B2C가 가장 대표적인데요, 여기서는 시스템화보다는 고객이 나를 떠났을 때 늘어난 거래 비용을 체감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벽들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입소문과 Install Base입니다. SNS처럼 네트워크 효과가 필수적이지 않은 분야에서도 이런 논리는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고객이 나와 거래할 때 거래비용이 절감되는(신뢰도가 높아서 예측 가능하고, 고객의 그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래 비용입니다.)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래야 전환 비용이 높아져서 고객이 나를 버리지 못하니까요. 




거래비용 이론은 산업 구조론의 기반이 됩니다. 산업구조는 기업의 상장과 마진율을 가장 강력하게 옭아매는 족쇄이자 프레임입니다.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이란 단순히 '누구에게 무엇을 팔겠다' 정도의 계획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산업 구조를 나에게 유리하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아니, 당장 매출도 안 나와서 오늘내일하는 마당에 이런 걸 생각할 새가 어디 있냐고 하실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알겠고 무슨 뜻인지도 알겠는데 우리 비즈니스는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핵심에 집중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성공한 스타트업의 숫자가 매우 적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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