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은 비극이고, 푸틴은 전범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우크라이나의 희생이 멈추고, 침략자를 물리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기도를.
다만 이 인류사적 비극과는 별개로 왜 세계 군사력 순위 2위인 러시아가 20위권 밖에 있는 우크라이나에게 쩔쩔 매고 있고, 기업들에게 주는 시사점은 뭔지 스타트업 경영 입장에서 좀 생각해보자.
(기업의 ‘경영전략’ 이라는 용어 자체가 1970년대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던 용어다. 당연히 전략은 군사용어였고, 1970년대말~80년대초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오일쇼크와 일본제 제품의 홍수 등으로 동시다발적 위기에 노출되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적을 이기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군사용어를 경영학에서 차용해 쓰게 된 것이다. 비슷하게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용어도 우리에게 지금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1990년대말 인터넷 기업이 득세하기 전까지는 역시 경영학에 없던 용어였다. 그 전엔 그저 제조, 유통, 물류, R&D, 서비스 정도의 사업들만 있었다)
스타트업 분야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커다란 대기업이 스타트업에게 밀려날까?'라는 것이다.
테슬라의 기업가치는 현대차 등 기존 내연기관 업체들 전체를 합친 것보다 크고, 쿠팡과 롯데 등 오프라인 유통사들의 기업가치는 아예 비교 불가 수준이며, 영업이익이 연간 7백억원에 불과한 카카오뱅크의 시가 총액은 최근 1년새 반토막이 났지만 영업이익 6조원이 넘는 신한지주보다도 여전히 크다. 이런 지경이 되도록 대기업들은 왜 스타트업들을 막아서지 않았을까? 혹은 막으려고 했는데 왜 실패했을까?
원래 공격군의 규모가 방어군보다 월등히 클 경우 공격측이 절대적으로 피해야하는 것이 전격전을 하는 것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Blitzkrieg', 우리말로 전격전으로 해석되는 전략을 택했던 이유는 독일군의 자체적인 능력으로는 유럽을 휘저어놓을 규모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공격해야 할 경우 최대한 빠르고 기민하며, 무엇보다 한 곳에 모든 가용 병력을 순간 집중시켜 소수의 공격군이지만 그 시점에, 그 전장에서만큼은 방어군보다 숫자와 화력의 우위를 확보해 무너뜨리고, 이후 이 각개격파의 과정을 반복해 승리를 쟁취하는 전략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장의 선택과 속도다. 왜 스타트업에게 비즈니스모델과 time to market을 중요시하는 lean startup 개념이 강조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만약 내게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면 무리해서 속도전을 전개하기 보다 차분히 적에게 한 두 곳의 퇴로를 준비할 시간을 준 다음 외곽에서부터 하나씩 확실하게 완전히 부서나가는 식의 전략이 선호된다.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장애나 혼선이 생길 정도로까지 부대 규모가 크다면 적절하게 나눠야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부대를 최대한 단일체의 본대 + 소수의 파괴력 강한 별동대 정도로 나눠서 전선을 넓히지 않고 한발씩 전진해 가는 것. 공격군의 압도적인 힘을 방어군이 보게 되고, 이 힘에 따라 방어측의 최전선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공포가 퍼져나가게 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퇴로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방어측에서 혼선과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결국 공격측은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다만 하나의 전선만 형성되면 방어측도 이 전선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별동대를 통해 방어측이 본대와의 대치 전선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도록 분산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 현대에 와서는 이 별동대가 공군이나 미사일 등일 수도 있고, 특수전 부대의 후방 침투를 통한 교란작전일 수도 있다. 요지는 급하게 하면 안되고, 전선을 너무 여러 곳에 만들어도 안되며, 동시에 방어측에서 하나의 전선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해서 최전선에서 방어하는 적군을 각개격파할 수 있게 하는 것.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점에서 완전히 엉망진창인 전략과 실행인데, 아마도 14년 크림반도 병합시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거의 없었기도 하고, 과거 40~50년 이상 러시아가 대규모의 전면전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완전히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 전선은 북부 키예프부터 남부와 동부에 걸쳐 한반도 4배 넓이의 지역에 흩어져 있는데 반해 공격군 숫자는 고작 15만명이고, 그것도 한꺼번에 투입한 것도 아니라 축차투입 중이고, 초장에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확실하게 종심에 깊숙히 들어가서 방어측을 파편화시키는 종심돌파를 한 것도 아닌, 그저 병력을 수많은 전선에 뿌려놓은 셈이니 중무장이 부족하고 민병대 수준의 light infantry 중심인 우크라이나의 현 전력으로 상대하기 딱 좋은 수준으로 전략을 세운 것이다. 거기다가 미국 등에서 공급받은 St.Javelin이 있으니 경보병이라고 해도 분산된 기갑 차량 몇 대 쯤은 한방에 보내버릴 수 있으니 이래저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투지만 발휘하면 딱 물리기 좋은 상황이었던 것.
이런 전략이 세워진 이유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그냥 만만하게 본 것이고, 대 러시아 군대가 진군을 시작하면 우크라이나가 절로 머리숙이고 항복할 것이라 믿은 것이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데 방심한 것이고, 그 대가를 젊은 군인들의 목숨값으로 치루고 있는 것.
이와 반대로 걸프전 당시의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순항미사일과 공습으로 적의 커뮤니케이션 및 부대 이동을 극도로 제한시킨 상태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쪽 국경에서부터 차근차근 방어측인 이라크군을 각개격파하면서 북서방향으로 크게 전선의 분산 없이 밀고 올라갔다. 당시 이라크군도 세계 5위군의 군사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았지만, 적을 사전에 분산, 고립시키고 대규모의 부대를 한 전선에 일거에 투입, 각개격파해나가는 전략을 확실하게 실행해 성과를 거둔 것.
우리 모두 우크라이나를 위해 적십사나 후원금 모집 등에 동참하기로 하고, 다시 기업 이야기로 돌아오자.
대기업이 스타트업에게 의외로 맥을 못추는 것, 혹은 작은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밀어낼 수 있는 이유는 같다. 작은 스타트업은 시장의 니즈 중에서 자기들의 작은 자원과 능력으로 공략이 가능한 작은 영역 하나에만 모든 전력을 다 투입해서 '기존에 존재하던 시장' 이라는 댐에 균열을 내는 전략을 택하기 때문이고, 반대로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밀리는 이유는 스타트업이 파악해 낸 고객들의 작은 니즈에 대해 방심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최대한 집중한 전격전에 목숨을 걸고, 다른 한쪽은 느긋하고 방만하게 접근하는데 당연히 목숨 거는 쪽이 유리하다. (게다가 스타트업은 사실 수백, 수천개가 덤벼들어서 그 중 한 두 업체만 살아남기 때문에 살벌한 약육강식을 거쳐오지만 대기업은 내 산업에 나타난 스타트업을 그냥 매출액 규모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그 정도로 파괴력있는지 알지 못한다. 대기업의 레이더에 포착되는 스타트업 정도가 되면 이미 적어도 수십개의 경쟁 업체는 밀어내고 그 자리까지 올라온 업체다. 방만한 대기업의 일개 사업부 따위가 덤벼들어서 이길 수 있는 레벨이 아닌 셈. 소수더라도 특수부대 현역들에게 군기빠진 예비군 부대는 아무리 규모가 커도 이길 수가 없는 거다.) 스타트업은 시장을 한방에 휘어잡는 존재가 아니라, 얼음 절벽에 힘을 다해 꽂아넣은 후 온 몸을 견디게하는 아이스 바일처럼 작지만 한곳에 집중된 힘을 통해 나의 영역을 확보하고, 그 이후 그 강력한 한 지점을 기반으로 주변을 쓸어버리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전형적인 전격전 전략인 셈이다. 피터 틸이 '작은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 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전략이며, 소수더라도 강력한 고객 기반, 즉 팬덤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쉽게 밀려나지 않게 된다.
때문에 스타트업 입장에서 내 사업에 대기업이 나타나면 어떻게하나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정부 지원 사업이나 투자자 미팅 등에서 이 질문이 나오면 '별로 걱정 안되는데요?' 라고 반문하면 안되는 것은 당연하고, "대기업이 나타나는 것은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대기업이 모든 시장을 100% 점유할 것은 아니고, 우리는 비록 소수의 고객으로 이뤄진 작은 니치 시장이지만 그 시장만큼은 독점할 수 있고 (가능하다면 투자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쯤이면 이미 니치 시장에서 독점하고 있다는 데이터가 이미 있어야 한다. 이보다도 초기면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내세울 수밖에 없지만.) 그 독점력을 기반으로 대기업이 들어왔을 경우의 약한 고리라고 판단되는 영역들에 대해 각개격파해나겠다"고 이야기 해야 한다. 당연히 어떤 고객이 약한 고리이며, 왜 그 고객들에게 나의 스타트업의 발톱이 들어가는지 정밀하게 추가 설명해야 하고.
그럼 대기업 입장에서 자기의 주력 사업이 정말 성장이 둔화되고, 혹은 추가적 성장의 기회가 잘 안보여서 ROE가 계속 감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기업이 신시장을 만들어야 할 때는 단순히 내부 R&D 나 신사업팀에 의존하는 형태의 성장은 매우 어렵다. 이들 기능은 기본적으로 자사의 원래 주력 시장에서 '점진적 개선'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들이며, 신성장동력 발굴, 특히 기존의 주력 시장을 위협할 수도 있을 정도의 과격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R&D 는 기존 제품 개선에 초점이 맞춰지기 쉽고, 장기적인 원천 기술 연구는 기업체 R&D에서 각광받기 힘들다. 신사업팀의 문제는 기존의 '주력 시장'은 일단 고려 대상에서 배제한 채 새로운 기회를 탐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신사업팀이 주력 시장을 전복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되면 그 담당 임원은 당연히 고홈이 된다. 주력 사업의 사업부장이면 보통 거의 최고위급 경영진이고, 신사업팀 임원은 잘해야 말단 임원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물론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마존의 AWS 처럼 내부적인 노력을 통해 신사업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정말 가뭄에 콩나듯 하는 경우라서 이런 경우를 목표로 대기업이 신사업을 찾는 것은 확률이 너무 떨어지는 짓이고, 대부분은 외부에서 찾으려고 그냥 M&A를 한다. 삼성전자가 하만을 사거나, SK가 하이닉스를 사거나, 마소가 블리자드를 사는 것 같은 일들이다. 다만 이 방식은 100여년전에도 해오던 일이기 때문에 추가로 코멘트할 일은 아니다.
다른 방법은 스타트업을 통해 기회를 찾는 것인데,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기회를 찾았을 때 그 다음이 중요하다. 여기서 대기업이 러시아 군처럼 방만하고 편안하게 진입하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투자한 돈만 날리게 된다. 새로 찾은 기회에 확실하게 주력의 역량을 투입하고 (기존 사업은 운영 유지가 가능한 수준으로만 남겨놓고. 마치 삼국지의 조조가 새로운 영토를 위해 출정할 때 주력 자원을 원정대에 투입하고 수성할 인력은 최소만 남겨놓은 것처럼) 한 세그먼트씩 순서대로 차근차근 확실하게 확보해나가는 전략을 택하던지, 아니면 본대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은 파견대를 보내서 그 파견대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게 한 뒤에 그 파견대가 만들어낸 성취를 제대로 된 가격으로 M&A하는 것이 적절한 답이다. 외부 스타트업 M&A하는 것과의 차이점은 이 파견대는 원래 모기업 출신들일 것이기 때문에 문화적 DNA를 매칭시키는 어려움이 줄어들게 된다. 이 방법이 워킹하는 것은 이 파견대는 한 때 대기업 직원이었을지 몰라도 일단 정글 한복판에 나홀로 떨어진 이상 스타트업과 동일하게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해야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살아남았으니 M&A 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을 요약해보자면,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이기는 전략은 전격전을 통해 작은 세그먼트에서 순간적으로나마 그 어떤 경쟁 기업보다도 강력한 우세한 포지션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큰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들어가서 성공하려면 관련 기술을 가진 완성된 기업을 M&A하던지, 혹은 기존 주력 사업은 유지만 한채 새로운 기회에 가진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all-in 을 하던, 아니면 독립적인 팀을 구성한 후 정글에서 살아서 돌아 오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레이더 망에 포착될 정도가 되면 대부분은 대기업의 일개 팀으로는 이미 그 스타트업 꼬리도 못쫓아간다. 스타트업이 눈에 띄는데 잠재적 위협이 될 것 같으면 전사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그 스타트업을 죽이던지, 회사 내의 가장 전투적이고 유능한 인력을 뽑아서 독립시킨 후 그 스타트업을 따라 잡으면 절대 다수의 지분을 인정해주며 M&A하는 수 밖에 없다. 제일 멍청한 짓이 그 스타트업과 경쟁을 하게 될 일개 사업부에게 대응 방안 과제로 내주고 '잘해봐라' 라고 하면서 마음 편하게 믿고 있는거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4일만에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근거가 바로 이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