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확장 전략과 경영진의 관계
네이버가 경영진을 교체했습니다. CEO와 CFO를 모두 40대 초반으로 교체했는데요, 보도자료에 따르면 조직문화 쇄신과 해외 시장 진출에는 더욱더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교체의 이유라고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새 CEO와 CFO 모두 공대 출신의 전직 변호사로서 글로벌 투자 전문가라는 점이 퍽 흥미롭습니다. 네이버의 향후 지향점은 결국 자체 서비스의 Organic 성장보다 해외에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인수해서 성장하는 투자 중심 회사가 되겠다는 시그널로 보입니다. (자체 서비스를 통한 해외 시장 진출을 꿈꾼다면 공대 출신의 개발자나 기획자가 더욱 적합했겠지요.)
이번 글에서는 이런 시그널에 대해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업에 인생을 걸고 있는 스타트업에는 썩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철저히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업체 역시 하나의 '투자 상품'에 불과합니다.
가령 어떤 투자자가 잘 나가는 반도체 회사 A에 투자한다고 생각해봅시다.
A사는 반도체 설계는 물론, 제조와 판매도 잘해왔고 투자자에게 주가 상승이라는 형태로 수익을 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반도체 시장의 성장성이 느려지자 갑자기 경영진이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웹소설 플랫폼에 뛰어든다고 선언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무슨 생각이 들까요?
A사 경영진이 사업 다각화에 역량이 있었거나, 과거에 웹소설 관련 시장에서 큰 실적이 있었다면 투자자는 A사의 선언을 어느 정도 맥락 있는 아이디어로 받아들일 여지가 큽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밀 제조업이자 B2B 판매가 이뤄지는 반도체와 콘텐츠를 바탕으로 B2C로 판매해야 하는 비즈니스 사이에는 그다지 연관성이 없습니다. 반도체에 익숙한 경영진이 완전히 성격이 다른 비즈니스를 동시에 잘 이끌어나갈 가능성도 크지 않고요.
주류를 판매하던 두산(오비맥주 기억하시죠?)이 중공업 회사로 탈바꿈한 사례가 분명 있기는 하지만 투자가 일종의 확률게임임을 생각해보면 반도체에서 웹소설로 가는 이런 '非연관 확장'은 투자자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회사의 주력 사업이 속한 시장의 성장성이 둔화되고 급기야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관한 경영학의 답은 1)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존 사업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사업을 축소하고 2) 마지막에 남은 자산은 유동화해 투자자들에게 자본금을 나눠주고 사업을 마무리 짓는 것입니다. (소위 'Milking Cow'인데, 여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예전에 코닥에 관해 적었던 글(클릭)을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아래와 같은 논리가 있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기업은 자본을 통해 수익을 만들어내는 투자 상품이다.
기업이 세상 모든 시장에서 성과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 전략에 있어서 레버리지 할 수 있는 명확한 자산이 있는 시장으로의 확장은 성공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기존 비즈니스와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고 레버리지 할 자산조차 없는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경영진이 '非연관 확장' 결정을 내리는 것은 곧 주주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非연관 확장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자본금은 주주에게 돌려줘서 그들이 해당 기업이 확장하려고 했던 '비연관 사업' 영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다른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투자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논리와 충돌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이나 일본의 소프트뱅크, 그리고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입니다.
이들은 투자자들로부터 위임받은 돈을 가지고 굉장히 많은 분야, 심지어 전혀 연관성이 없는 분야에 투자합니다.
이런 케이스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대기업, 소프트뱅크, 알파벳과 같은 기업들은 좁은 한두 개의 시장에서 경쟁하는 역량도 있지만 여러 산업 분야에 투자하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월급을 가지고 펀드에 가입하거나 주식 위탁 매매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나보다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언급한 기업들도 주주로부터 위임받은 돈을 여러 분야에 투자하고 수익을 내는 능력이 좋을 것이라는 것이 주요 논지입니다.
다만 이런 전략은 자사의 기존 주력 사업이 더 이상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장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ROE가 낮아진다는 것이고, 그 빈 부분을 다른 분야에 투자해서 벌어들이는 수익과 사업 기회 확장을 통해 채우려는 것이죠.
모든 기업은 명확한 영역에서 실체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시장 규모의 한계로 인해 성장이 둔화되는 시점이 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그동안 빠르게 성장하던 기업이 재무와 수익률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주로 CFO 출신)을 경영진으로 앉힌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죠.
즉, 기존 시장에서의 수익을 극대화하면서 운영 중심으로 경영하겠다는 시그널입니다. 일전에 이야기한 코닥이 이런 전략을 택했다면 아마도 주주 가치 파괴의 대명사가 되는 비극을 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회사는 공중분해되었겠지만.
반대로 상품개발이나 서비스 기획 전문가가 경영자가 된다는 것은 기존 시장, 또는 유사한 연관 시장에서 새로운 상품을 통해 다시 한번 고속 성장을 노려보겠다는 뜻이 됩니다. 대부분의 기술 기업들이 이런 전략을 취하죠. 이미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고객을 활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성장 한계에 다다른 기존 서비스와 국내 시장에서는 법적, 정치적 문제가 벌어지고 있으며, 그렇다고 해외로 진출하자니 여전히 낯설고 시장 전망 또한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각종 이슈를 안정적으로 관리함과 동시에 해외 시장에서 레버리지를 만들어서 다시 한번 고속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결국 법률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투자에 익숙한 사람에게 기업의 키를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런 결정을 하는 기업은 다른 투자 전문 기업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비전펀드나 알파벳, 텐센트 같은 초 거대 투자 전문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무작정 아무 분야나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이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규모가 확보되는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일 것입니다. 최근 1~2년 사이의 네이버의 해외 M&A나 CEO 및 CFO 선임에 대해서는 이런 논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이버는 이번에 선임된 경영진이 투자한 해외 사업들이 다시 한번 고속 성장할 가능성이 보인다면 아마도 개발과 서비스 기획 전문가들이 새로운 경영진이 되어 성장을 이끄는 모양새가 될 것 같습니다. 만약 투자 성과가 별로라면 계속해서 투자자 포지션에서 기회를 탐색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겠죠.
여기까지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네이버의 경영진 교체를 살펴봤습니다. 철저히 '투자자' 관점이다 보니 직원에 대한 고려가 빠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경영진 교체를 직원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우리는 더 이상 국내에서의 고속 성장을 추구하지 않고 해외 시장에서는 투자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접 서비스를 기획하고 런칭해서 성장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 회사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가 될 것 같습니다.
네이버는 네이버이므로 앞으로도 국내 최고 인력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하지만 서비스를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성과를 추구하는 인재들에게는 아무래도 지금처럼 매력적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마치 삼성전자가 요 몇 년 사이에 최고 인력들에게 꿈의 직장이 아니게 된 것처럼 말이죠.
결국 네이버는 국내에서는 안정적 운영에 집중할 것이고 해외 사업은 투자 전문가들의 세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네이버의 기업문화는 지금보다 더 유해지고 좋아지겠지만 IT 기업 특유의 활기는 아마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요?
패스파인더넷은 기업 성장 전략 전문 Advisor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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