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스타트업 시대 속 기업의 성장전략 (1)
※ 2015년 정도부터 지금까지 약 7년은 그야말로 '대 스타트업 시대 (Grand Startup Era)'였습니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스타트업들 중에서 대기업들을 앞지르는 업체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을 배우는 동시에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죠.
이 '대응 전략'에 관해 기존 기업들의 케이스를 중심으로 시사점을 살펴보는 시리즈를 써보고자 합니다.
코닥은 약 150여년전부터 필름과 카메라를 만들어온 회사입니다. 필름 카메라의 막을 연 회사이며 그 시장의 관 뚜껑을 닫은 곳이기도 합니다. 코닥은 2011년에 사실상 파산했고 지금은 사실상 브랜드만 유지되고 있죠.
흔히들 코닥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을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코닥은 이미 1975년에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었고 메가 픽셀 이미지 센서를 만든 기업도 코닥이죠. 심지어 2005년에는 미국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40%를 점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5년 후 코닥의 점유율은 7%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1년 뒤엔 파산 신청을 하게 되죠.
코닥은 필름으로 꾸준히 큰 수익을 올리던 회사였습니다. 프린터 업체들의 비즈니스 모델, 그러니까 프린터와 카트리지라는 구조와 기기를 싼 값으로 보급하고 그 소모품으로 수익을 올리는 비즈니스 형태의 기원이 코닥의 카메라 - 필름일 정도니까요. 필름의 영업 이익률이 너무 좋아서 디지털 기술 R&D를 완료하고도 10년이 넘게 그냥 팽개쳐둬도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디지털 기술은 필름과는 다릅니다. 추가로 판매할 소모품이란 게 없고, 기기를 팔면 거기서 수익 창출은 끝나죠.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개발하고 나서 이것이 필름 산업에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필름 산업에서 번 돈을 가지고 디지털카메라 관련 특허와 생산시설은 물론, 스타트업까지 사들입니다. 앞으로 열릴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도 필름처럼 시장을 주도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경영진은 한 가지를 간과했습니다. 필름과 디지털카메라의 기술 개발 속도였죠. 필름은 화학 공정이며 관련 기술개발이 느린 반면에 디지털카메라는 조립 공정이며 기술 개발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코닥이 미국 회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조립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 업체들을 앞지르는 것은 무리가 있었죠. 당시 크라이슬러, 포드, GM과 할리데이비슨까지 위협했던 것이 일본 기업들의 조립 역량이었습니다. 코닥이 애초에 이길 수가 없는 상대였습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꾸준히 반복 판매가 이뤄지는 필름에 비해 디지털카메라는 1회성 구매가 끝입니다. 고객 관계 설정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코닥에게는 큰 벽이었죠.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코닥은 필름 카메라 시장에서 수직 통합을 달성한 후 100여 년 간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이런 전략을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도 똑같이 써먹으려고 했죠. 하지만 너무나도 달랐던 시장 특성에 적응하지 못하고 투자비만 날린 뒤 결국 주저앉았습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주주의 것입니다. 경영진은 주주에게 회사 운영을 위임받았을 뿐이며 경영진의 투자 결정은 어디까지나 주주의 장기적 수익을 위한 것이어야 하죠. 이게 어려울 땐 투자와 비용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시장이 주는 수익을 최대화하고 그 수익을 전부 주주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코닥 경영진은 디지털 시장에서도 필름 시장에서처럼 잘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했던 수익금과 사내 유보금을 탈탈 털어서 신시장 개척에 투자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자기들에 대한 과신으로 투자자의 수익을 까먹은 거죠.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배임이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지만 그래도 코닥 경영진이 섣부른 생각으로 기업 가치를 파괴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디지털카메라 기술이 필름과 성격도, 수익성도, 수익을 만들어내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1990년대 중반쯤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기술 투자를 중단하고 비용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남아있는 필름 시장에서 최대한의 잔존 수익을 쥐어짜는 전략(이른바 'Milking the cow')을 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은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필름 시장이 완전히 죽었을 때 남아 있는 회사도 청산해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주주들의 대리인으로서 코닥의 가장 충실한 의사결정이었을 겁니다.
너무 결과론적 이야기 아닌가, 코닥이 어쩌면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도 잘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코닥이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시도한 수많은 디지털카메라 관련 프로젝트들을 보면, 코닥이라는 기업이 여태껏 갖고 있었던 자산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는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즉, 기존 필름 시장에서는 최강이었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써먹을 곳도 없고 호환도 안 되는 자산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거죠.
이제 와서 굳이 코닥 이야기를 하는 것은 2021년 현재도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LG입니다.
LG는 내구성 높은 전자제품을 만드는데 탁월한 회사입니다. 그렇지만 소프트웨어 생태계 운영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없죠. 삼성과는 달리 스마트폰으로 스케일을 확보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던 2010년대 초반에 LG는 스마트폰 비즈니스를 매각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려 10년을 끌었고 그동안 수조 원의 주주가치를 상실했습니다. 매각으로 수익을 얻는데도 당연히 실패했죠. 그래도 스마트폰 매각 이후 LG전자의 수익이 성장했다는 사실은, 너무 늦긴 했지만 옳은 전략을 택했다는 반증입니다.
미지의 영역에 기업이 진출하는 것은 경영자의 자존심을 채워줍니다. 하지만 역량이 없는 영역에 섣불리 손을 대는 것은 아주 높은 확률로 주주 가치를 파괴하죠. 기업 내부 자원이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그 자원이 차별적 결과를 낳지 않는다면 기존 보유 자원에 기반한 신규 사업화를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전략이 너무 보수적으로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AI 등 신기술 시대에 대처하는 첫 번째 인사이트를 줍니다. 내가 잘하는 영역에서 최대한의 Cow milking을 하는 것이죠.
롯데가 한샘을 인수했습니다. 한샘은 온라인몰도 운영하긴 하지만 실상은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가깝습니다. 작은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은 몰라도 큰 가구는 보통 직접 보고 구매하는 데다, 단순 배송이 아니라 설치 서비스도 붙어있기 때문이죠.
Cow milking 관점에서 본다면 롯데는 온라인에 대규모로 투자하거나, 적자 상관없이 M/S를 높이는데 힘을 쏟는 쿠팡 같은 전략을 택해서는 안됩니다. 롯데가 전통적으로 경쟁력 있는 자산을 보유한 오프라인에서 끝장을 봐야 하죠.
오프라인 비즈니스는 온라인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쉽게 망하는 비즈니스도 아니죠. 물론 디지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서 당장 내년부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세상이 뒤바뀐다면 롯데도 코닥처럼 고배를 마시겠지만 말입니다.
확장성이 엄청 큰 기술이나 경영 역량이 아닌 자기 산업 분야에서의 경쟁력에 집중해온 일반 대기업에게 적절한 전략은 바로 수많은 자원을 가지고 여태껏 잘해왔던 시장에서 추가 비용을 줄이면서 수익을 최대한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전략은 너무 보수적이라 꺼려지고, 매출도 안 생기고 성장이 없는 상황도 절대 싫다면 대기업은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요? 똑같은 신사업 개척이라도 코닥이 아니라 애플처럼 컴퓨터에서 스마트폰 시장으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건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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