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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ul 03. 2022

성실한 사람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어느 사람이 '성실하다' 라는 표현을 우리는 매우 자주 쓰지만, 학자들이 연구한 성실성에는 매우 여러 종류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쉬운 말로 풀자면, 부지런히 일하는데 이유 혹은 원인의 종류에 따라 겉보기에는 부지런한 모습 하나지만 속은 여러 갈래라고 할 수 있겠다는거다.


사람 마음 속이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수의 다름이 있겠지만, 심리학자들이 테스트 등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고 통계적으로 증명한 성실성의 원인만 간단히 나열해도 다음과 같다.


내재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스스로 부지런해지는 경우

- 호기심과 지적 탐구 욕구 충족을 위한 성실

- 자아 실현에 대한 욕구

- 예술적 감수성에 의한 성실

- 자기 에고에 대한 충족을 위한 성실

- 내부 에너지 발산

 

외부적 환경과의 적응 과정에서 부지런해지는 경우

- 책임감

- 타인에 대해 잘해줘야 한다는 의무감 또는 타인에 대한 동정

- 자기유능감

- 성취욕구

- 사회적 압박 또는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때문에 성실

- 타인에 대한 관심 또는 애정의 갈구

- 자기존재감의 부각

- 타인에 대한 지배 및 통제를 위한 성실


성실성을 위한 성실성

- 삶의 가치관으로서의 성실

- 성실성에 대한 의존적 성실

- 내적 의문이 없는 습관적, 관습적 성실


대략만 살펴봐도 스펙트럼이 엄청 넓다. 우리는 이들 모두를 '성실'하다는 말 한 마디로 퉁치면서 살지만, 위에 적은 성실성 중에서도 상당수는 문제가 매우 많은 성실이다. 차라리 성실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경우들이 많다는 것.

(아침에 일찍 나오고 하루 종일 끝없이 일하는 상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일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정말 열정이 넘친다' 고 할 수도 있고, '멍청한데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라는 평을 듣게 될 수도 있다.)


1. 지적호기심, 자아실현, 예술적 감수성에 따른 성실성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만족도가 높고 사회적 성공을 많이 할 것 같겠지만, 사람의 에너지는 유한해서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세계에만 머무르고 주변과 공유하고 주변에 에너지를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 즉, 인간관계가 좁고 건조하고 피상적이기 쉽다는 뜻이다. 아주 심하면 정상인이지만 자폐 스펙트럼처럼 보이게 된다는 뜻이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머리 좋은 대표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사람은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 사람이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되겠지.그런데 이 분, B2B 영업도 하셔야 하는데.)

주로 학벌좋고, 머리좋지만 자기 관심 분야 외의 세상에 대해 스위치를 꺼버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소수의 성향 맞는 사람들끼리 R&D 스타트업 같은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해내겠지만, 대인관계가 필요한 영역의 업무는 성실하다고 해도 안시키는게 맞을거다. 물론 이 조건으로 성실한데 사람과도 잘 지낸다면 축복받은 사람이고. 이럴 때 금수저라는 표현을 쓰는게 맞는거다. 부모가 엄청난 지능과 함께 대인관계 능력, 그리고 자신의 욕구에 성실한 태도를 함께 물려줬다는 뜻이니 삶을 행복하게 살면서 성취도 많이 하겠지.


2. 내적 욕구지만 자기 에고 충족에만 집중하거나 내부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이를 발산하기 위해 성실한 경우가 있다. 가령 이쁜 자기 모습을 위해 나갈 때마다 화장을 두 시간씩 하고 옷을 수십벌 맞춰본 다음에 동네 편의점에 가고 몸 관리를 위해 하루 두세시간씩 운동하는 사람. 또는 헌팅하겠다며 지치지도 않고 밤새 5차, 6차 다니는 사람들은 사회적 맥락에서는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맥락에서는 매우 부지런하다. 연예인이나 크리에이터처럼 타인의 관심으로 먹고 사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좋겠지만, 조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되지 못한다. 성실하지만 그 성실의 맥락이 타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맥락이 경우가 많기 때문. 다만 그 성실의 결과물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면 성공한 '개인'이 될 것이다. 기업은 아니고. 만약 이런 사람을 직원으로 뽑으면 조직이 아주 이상해진다. 이 맥락에는 외부의 관심이나 애정의 갈구에 따른 성실성도 포함된다.


3. 자기유능감과 성취욕구, 자기존재감의 부각이 성실성의 근원인 경우 사회적 성취에 가장 유리하다. 왜냐하면 자기의 욕구가 사회의 맥락에서만 실현될 수 있으니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성공하려고 할테니까. 다만 이 성실성은 사람에 따라서는 번아웃을 불러오기 쉽고, 자기가 사실은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삶이 붕괴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며, 성취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특히나 에고의 크기가 큰 경우엔 삶의 태도가 극단적인, 마치 조울증같은 식의 태도도 보이게 된다. 그나마 자기통제력이 강하면 어느 정도 장기적으로도 안정적인 성실성을 보여줄 수 있지만 충동성이 강한 경우엔 몇 개월은 미친듯이 하나에 매달렸다가 갑자기 줄이 끊어진 동작인형처럼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통제력 혹은 책임감의 유무에 따라 함께 일을 할만한 신뢰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서울대에 온 학생들 중에 상당수가 대학 입학 후 목표를 잃어버린 채 떠도는 모습을 보인다. 높은 자기유능감과 성취욕구로 좋은 대학에 왔지만, 사실 이런 껍데기의 목표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성실'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번아웃되는 것. 나이들어가면서 사회적 압력을 느껴서 2~3년 뒤엔 다시 부지런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상당수는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시절의 성실성 수준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중년이 된다. 대학교 스펙에 비해 일을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모습의 이유 중 하나.


4. 책임감이나 사회적 압력에 따른 성실성은 지적 능력이나 사고의 유연성 유무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머리가 좋지 않거나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책임감이 강하고 사회적 위치에 따른 부담을 많이 느끼면 매우 경직적이고 답답한 형태의 성실성을 보이게 된다. 소위 말하는 '멍부'형 꼰대가 되시겠다. 자기 확신이 과다해서 타인에게 갑질해대는 꼰대가 아니라, 정말 아침 6시에 출근해서 10시에 퇴근하고, 부하가 제출한 보고서 글자 맞춘법 수정하고 칸 밀렸다고 다시 보고서 제출하라고 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분들에게 소규모 자영업은 괜찮고 (무리하지 않고 꼼꼼하게 잘 관리하는 매장이 되기는 하겠지만 사업의 성장은 무리일거다. 다만 그 매장 자체는 운영 잘하시겠지. 일단 사장님이 부지런하면 무조건 기본은 한다.) 스타트업은 절대 권해서는 안되며, 회사에서는 정해진 일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식으로 해야 하는 일들 및 그 일에 대한 관리 업무 정도가 적절하다. 물론 지적 능력이 높고 사고가 유연하기까지 하면 한자리 하시겠지. 다만 여전히 밑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답답하기 쉽고, 상사 입장에서도 큰 그림을 봐줬으면 더 좋겠다는 이야기는 하게 될 것.


5. 사람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에서 부지런하신 분들이 있다. 이분들은 기업 생활보다 실제 상담이나 종교 분야에서 존경받을만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나같은 하류 인생이 함부로 품평할 분들이 못되어서 패스~


6. 아마도 가장 문제가 될 부류는 타인에 대한 지배 욕구에서 부지런한 경우와 성실성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두고 살아가는 기계론적 성실성으로 무장하신 분들일텐데, 문제는 이게 젊은 시절에는 책임감이나 자아실현 욕구가 강해서 성실한 것과 잘 구분이 안된다는 점이다. 타인에 대한 지배욕구가 아주 강해서 부지런한 경우에도 사회적 지위가 낮을 때는 그냥 일 욕심 많은 사람 정도로만 보인다. 당연히 권력을 얻게 되면 그 권력 쟁취와 권력의 휘두름이 삶의 목적이니 갑질로 이어지던지, 아니면 자기의 무능력이 드러날 때까지 끝없이 승진만을 위해 주변 사람들 다 갈아넣겠지. 이렇게 갈아넣는데 성실한 거니. 유년 시절의 학습이건 혹은 강박에 가까운 억압에 의해서건 성실성을 완전히 기본 탑재했지만 그 성실성의 목표와 방향성이 없는 성실은 주변에서 이 사람을 이끌 사람이 없는 경우엔 완전히 산으로 간다. 아우슈비츠행 기차 부지런히 보냈던 사람들의 성실함. 그런데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성실성이 자기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주변의 태클을 최대한 피하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주변에 자기가 부지런하다는 것을 각인하려고 한다. 회사에서도 보면 계속해서 주변에 규정 만들고, 매뉴얼 만들어서 뿌리고, 누구 보지도 않을 자료 채워달라고 요청하는 인력을 본 적이 있을게다. 기계적인 성실성을 가진 사람은 이런 이유로 지배를 위해 부지런한 사람만큼 주변에게 악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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