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마케팅, 구매, R&D 등 기업 실무자들에게 기업 전략 교육을 하다보면 멀뚱멀뚱한 눈빛 혹은 '내가 이 이야기를 왜 듣고있나, 당장 일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같은 표정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정확히는 매번 보게 된다.
산업이 어떻고, 차별적 경쟁력이 어떻고, 신사업이 어떻고 하는 등의 이야기는 사실 기업 실무자들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당장 거래처 클레임 처리해야 하고, 납기 문제 터진 생산 라인과 싸워야 하고, 매출 채권 미수금으로 골머리 썩어야 하고, 지난 주 납품받은 파일럿 설비 안정화시켜야 하고, 말안듣는 후배 직원 갈굴 방법을 고민하고 상사가 지시한 무리한 차주 업무 다른 부서로 밀어낼 고민해야 하는게 실무자다. 이런 사람들 대상으로 마이클 포터 같은 이야기는 해리 포터도 아니고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다만 문제는 이들이 연차가 차서 대략 40대 초중반 정도가 되고, 임원이 되어 사업부를 운영하게 되었을 때 생긴다. 지난 20여년 동안 열심히 살아오면서 배우고 알고 있는 방법으로 일을 잘해보려고 보니 산업의 경쟁의 문법이 달라졌다. 불과 2~3년전까지 이름도 모르던 업체가 갑자기 튀어나와 시장점유율을 빼앗아가고, 주력 거래처가 휘청거려서 다른 매출처를 찾아야 하고, 경쟁사가 이미 채택한 기술이라며 신제품에 알지도 못하는 신기술을 붙여야 하다보니 원가 경쟁력이 낮다고 영업들은 투덜거리고 등등등. 매년 동일한 상황에서 매년 동일한 일을 하는 극소수의 회사 (만약 그런 회사가 진짜 있다면. 그나마 공기업 정도?) 를 제외하면 재수없게도 내가 사업부장이 되면 뭔가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고, 정작 나는 그 예상치 못한 것에 대해 대응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나이 먹어서 유명하다고 하는 전략 책 몇권 사서 보고, 경영 관련 신문 기사 읽고, 유명한 교수가 나온다는 조찬간담회 찾아가지만 그래봐야 그 때 뿐이고, 좋은 말인줄은 알겠지만 그래서 내 사업에 어떻게 적용하라는 것인지는 죽어도 모르겠다. 그 사이에도 시간은 가서 올해 실적도 그냥 지난 몇년과 유사하다. 이 수준까지 버텨내는 것도 얼마나 고생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대표이사가 새로 바뀌면서 내놓는 첫마디가 '내년부터 우리는 혁신적으로 성장하겠습니다. 각 사업부별로 매출 전년비 30% 추가!' 다.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서 상당수가 top line 성장이 안되는 이유가 별 것 아니다. 큰 그림의 이야기를 별로 듣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그런 이야기를 들어봐야 '바빠 죽겠는데 이 무슨 시간 낭비야. 우리같은 허접한 중견회사랑 테슬라가 뭔 상관이야'를 속으로 백번 생각했기 때문이다.
40대 후반 막상 뭔가 제대로 아는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어느 날 사업을 책임지게 되었고, 혹은 반쯤은 등 떠밀려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큰 그림은 누구도 대신 생각해주지 않는다. 당장 실무에 써먹을 수 있고, 이해가 쉬운 공부만 하지 마시고 가끔은 내가 속해 있는 곳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