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매력도에 대한 완전히 객관적인 기준은 당연히 없다. 스타트업에게 1천억짜리 시장은 완전히 좋은 시장이지만 대기업 신사업 기준에서는 너무 작은시장이다. 청자의 입장과 맥락에 따라 매력도는 바뀐다. 이하 설명하는 기준은 스타트업 기준이다.
첫번째 기준 : 시장이 명확하게 정의가 내려지는가?
시장 매력도의 첫번째 기준은 시장을 우리가 매우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이다. 한 문장, 가능하다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최상의 시장 정의다. 설명이 길고 복잡할수록 (1) 창업자가 시장을 제대로 모른다 (2) 없는 시장인데 억지로 존재한다고 설명하려고 한다 (3) 사기성의 뻥이다. 이 셋중 하나일 경우에 설명이 길다. 짧고 간단할수록 좋은 시장이다. 내가 보고 있는 시장이 짧게 정의가 안되면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중3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 기준 : 시장의 규모가 충분한가?
보통 시리즈 A 기업 정도의 기준으로 관련 직접 매출이 국내 기준 5백억원 정도면 괜찮은 시장이다. 주요한 조건은 '직접 매출', '국내', '5백억원' 이다.
만약 내가 어떤 상품을 매입해서 되팔 경우 내 직접 매출은 그 상품의 전체 가격이 아니라 그 상품 판매에 따른 마진이다. (법적으로는 재고 매입하면 판매액전체를 매출로 잡는다. 그래서 유통업은 관련 규모가 매우 크게 나오기 마련이다.) 만약 그 사업의 경쟁사가 매우 많거나 우리가 그 상품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부가가치 창출이 별로 없어서 마진을 많이 못붙인다면 그 시장의 규모는 작을 수밖에 없다. 가령 내가 공장용 열교환기를 독일에서 수입해서 한국에 파는데 그 제품이 10억이고 내 마진이 1억인 경우 내 매출은 1억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10억이 매출액이다. 하지만 사업적인 의미에서 10억은 '취급액'이라고부르지 매출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둘을 뒤섞으면 안된다. 만약 매입액의 3~5배 이상의 마진을 붙일 수 있다면 그 때는 그 원료 매입액까지를 포함해서매출로 잡아도 된다. 제조업이 대표적일텐데, 그 큰 마진만큼이 해당 업종의 부가가치이기 때문이고, 매출을 전체로 인정해줄만한 가치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업체 매출 및 관련 산업 전체의 매출은 해당 판매의 마진의 합으로만 잡는다.
게임이나 카메라 어플, 코인 같은 경우엔 국적이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으니 그 경우엔 곧바로 세계 시장을 바로 내가 플레이하는 시장으로 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의 사업은 이게 안된다. 때문에 국내 시장 규모가 당연히 초기 시장 매력도 판단의 기준이 된다.
오백억원은 좀 임의적인 숫자인데, 사백억원은 안되고 오백억원은 된다는 뜻이냐 같은 식으로 물어볼 수 있다. 당연히 그런 의미는 아니고, 기업 가치가 백억원대가 나오려면 그래도 시장 규모는 아무리 적어도 그보다는 커야 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한 업체가 M/S 100%를 하기는 어려우니 그보다 시장이 더 커져야 말이 된다.
시장 규모를 아무리 추정해도 백억원대가 안나온다면 사업 모델을 피봇해야 한다. 아니면 그냥 외부투자 유치는 기대하지 않으면서 자력 성장을 하던지.
세번째 기준 : 시장의 성장성은 충분한가?
시장 규모가 작더라도 충분히 빠르게 성장한다면 그것도 괜찮다. 초기 배민은 거의 매년 100% 이상의 매출 성장을 보였다. 수많은 배달 어플들이 등장했지만 요기요 등 몇 개를 제외하면 존재감이 미미했으므로 배민의 매출에 2배 정도만 하면 시장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배민 매출이 매년 2배 이상 늘어났다는 말은 시장 규모가 그 속도로 성장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매우매우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뜻이고, 기업가치 평가가 매년 두세배씩 늘어나는 것도 가능해진다.
최소한 시장 규모가 10% 이상의 속도로는 성장해줘야 투자자들에게 호기심을 끌 수 있다. (매년 10% 성장이면 7년내 두배 규모가 된다.) 위의 규모의 기준과 결합하면 지금 오백억원, 5~7년내 1천억원이 일종의 최저기준선 정도다.
네번째 기준 : 시장의 경쟁 구조 및 밸류체인의 혁신 가능성이 있는가?
시장내에 경쟁사가 아무도 없거나 매우 작은 업체들만 존재하고 시장 성장 규모가 정체되어 있는데 스타트업이 들어가겠다고 하면 그 스타트업은 매우 혁신적인 모델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외부 투자를 받을 기회가 생긴다. 가령 매번 치킨집이 망하는 동네에 간 창업자가 '이 동네에 치킨집이 없네? 기회다' 라고 생각하고 투자금을 유치하러 다니면 누구도 투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이라면 그 전에 '나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치킨을 만들어 팔아서 경쟁 가게 대비 원가율이 50%나 낮다' 같은 기술이나 모델에서의 혁신을 떠올려야 하고 그걸 시장에서 작게라도 증명해 내야 투자 유치 기회가 생긴다.
가령 데친 나물을 진공포장해서 온라인으로 파는 스타트업이라면 나물 시장이 미친듯이 성장하거나 매우 큰 시장은 아니어서 시장 매력도를 어필하기가 쉽지 않다. 더불어 경쟁사와 차별화 포인트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때문에 나물 원료의 매입과 손질, 가공하는 과정에서의 원가 절감 등 효율성을 경쟁사가 쉽사리 따라할 수 없다거나, 고객을 감동시켜서 한번 산 고객이 매우 높은 비율로 재구매를 하는, 마케팅과 운영 측면에서의 강한 경쟁력을 보유했다는 것을 숫자로 보여줘야 투자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경쟁사의 숫자는 적고 바이어의 숫자는 많은 시장을 구조적으로 매력적으로 본다. 만약 여러분이 배터리 관련 부품의 원가를 어느 정도 절감하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라면 여러분의 잠재적 바이어는 국내의 대형 배터리 대기업이거나 그들의 1티어 공급사들일 것이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몇 개 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국내 대기업들의 관행상 한 곳과 거래를 시작하면 다른 대기업에 납품하는게 만만치 않을거다. 사실상 exclusive deal 을 요구할테니까. 이 상황이 되면 나는 점점 one of them 이 되어갈 것이고, 그 극소수의 고객사의 요구에 갈수록 시달려야 한다. 그쪽은 소수, 나는 다수 중 하나이니까.
물론 내 기술이 정말 엄청나서 아무도 카피할 수 없고, 법적으로도 막강한 보호를 받고 있다면 그 경우엔 내가 공급업자지만 사실상 갑의 위치에 설 수 있을거다. 가령 ASML 같은 회사가 되면 되는 것. 그 정도가 되면 시장의 구조나 바이어와 내 산업간의 업체 수 차이 같은 걸 고려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정도까지의 기술적 차별성이 없다면? 시장 구조를 고려하면서 BM을 고민해야 하는게 기술이나 제품개발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다섯번째 기준 : 거래비용이 내 산업에서 유리한가?
서방 국가인데 최첨단 5세대 전투기를 구매하고 싶다면 미국의 F35를 제외하면 살 물건이 세상에 없다. 반면 F35 제조사인 록히드 마틴의 입장에서는 F35를 찾는 국가가 전 세계에 수십개다. 이 경우 가격은 사실상 부르는게 값이고 가격 이외에도 록마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할 수 있는 조건은 무조건 상대에게 강요할 수 있다. '뭐, 싫으면 사지 마시던지'를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록마 입장에서는 이 거래 관계에서 가격 이외에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금전적, 비금전적 어려움을 모두 거래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있다. 반면 구매자는 아예 판을 깨지 않는 한 이 요구를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 대당 1천5백억원이 넘게들여서 구매했는데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다시 대당 몇백억원을 내놓으라고 하면 줘야 하는 것이다.
(무기는 단순 산업 논리 뿐 아니라 국제 정치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이렇게 간단히 설명하면 안되지만, 예시를 들기엔 매우 좋아서)
가격 이외에 거래에 관련된 리스크나 시간/에너지의 소모를 거래비용이라고 하는데 이 거래비용은 거래의 쌍방이 다르고, 내가 속한 산업 입장에서 거래 비용을 거래 상대방에게 떠넘기거나 특정 조건을 강요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Bargaining power"가 있다고 한다. I've come to bargain 이라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유명한 대사도 잘 생각해보면 이해될 듯) 그 산업의 매력도는 올라간다.
플랫폼업이 처음에 매우 힘든 것은 플랫폼에 대한 사용자와 공급자를 모아내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이지만 일단 어느 정도 숫자가 모이면 그 때부터는 사용자나 공급자 모두 그 플랫폼 업체에 휘둘리는 것도 바로 이 산업간의 협상력의 차이에 기인하며, 때문에 플랫폼 사업 모델이 가지는 그 도박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자 받는 업체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엔 도박이지만 일단 성공하면 이것처럼 매력적인 업종이 별로 없으니까.
간단히 적었지만, 사실 산업 전반의 큰 그림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판단이 시장 매력도다. 창업자들이 자기 산업에 대해 이모든 것을 다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 맞다. 하지만 남의 돈을 끌어와서 자기 목적에 쓰겠다고 하면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능한 선까지는 시장 매력을 보여줄 수는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