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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Oct 02. 2023

스타트업은 어떻게 망하는가?

스타트업은 어떻게 망하나?

스타트업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스타트업의 붕괴는 주로 대규모 시설 투자 후 수요가 나오지 않거나, 혹은 거래처가 배신을 때려서 부도가 나거나 창업팀내에서 욕심으로 내분이 생겨서 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극적으로 망하기도 하고, 이런 과정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불과 몇 달만에 회사가 공중분해 되는 일도 있기는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고로 비명횡사하는 일에 가까운 셈. 예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그렇게 망하지 않는다. 망하는 과정은 자기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 신장질환 등의 만성 질환을 가져서 당장의 생활 습관을 고치고 매우 신경쓰면서 살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냥 평소처럼 막살다가 갑자기 몸 전체가 고장나서 급격히 건강을 잃어버리는, 의사 말 죽어라고 안듣는 50대 아저씨같은 식으로 죽는다. 


이들은 진단을 받은 후에도 대충 살다가, 신체 주요 장기 하나가 문제를 계속 치다보니 다른 장기에 오버로드가 걸리고, 결국 이 주변 장기가 맛이 가면 갑자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되고, 건강을 유지할 최고의 보루인 근육을 잃어버리고, 이후 일상이 어려워지며 보행도 제대로 못하게 된 후 마지막에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죽게 된다. 이 과정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극히 고통스럽게 진행되지만 되돌릴 방법은 없는, 고달픈 죽음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의 죽음이 이렇다. 


자, 그럼 스타트업은 어떤 고질병을 가지게 되고,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지 생각해보자. (같은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미 매출 수백억 이상 내면서 캐시 플로우에서 문제가 없는 기업은 당연히 논외다. 몸 건강 이미 슈퍼맨인데 이들과 배나온 대사장애 50대 아저씨와 비교하면 안되지.) 


1. 시장을 잘못 골랐다 : "수요가 있다"는 것으로 시장을 고르면 결국 망한다. 혈관이 가늘면 콜레스테롤로 금방 막히는 것과 같다. 수요가 있는 곳이 아니라, '규모있게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국내 시장 규모에서 최소 3년내 5백억~1천억의 시장 규모가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안타깝지만 잘못 선택한거다. 물론 투자 안받고 작은 시장에서 안정되게 굴러가도 된다. 다만 이건 스타트업은 아니고 자영업일테니 패스. 사업 전략에 대해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업 전략의 핵심은 'Business domain'을 정하는 것이다. 장수는 싸울 곳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이런 이야기는 전문가 이야기 좀 들어도 된다. 전문가들은 사업을 흥하는 곳은 몰라도 망하는 곳은 잘 아는 사람들이다. 


2. 차별성을 스펙 수준으로 이해한다 : 우리 제품이 이런 기능이 있고, 저런게 더 빠르고, 이런 UI가 더 좋고 등등. 고객은 별 관심없다. 물론 UI/UX는 매우 중요하고, 유명한 핀터레스트 사례처럼 고객 경험을 바꾸는 것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그로스 해킹은 의미가 있는 도구. 하지만 아예 온라인 사업이라면 몰라도 그 외의 차별성은 단순히 스펙이 낫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다. 사업의 본질이 중요하다. 쿠팡 UI/UX 탁월하지만 쿠팡이 처음에 대박을 친 건 UI/UX가 아니라 적자보면서 판 기저귀와 쿠팡맨의 뛰어난 서비스였다. 심지어 로켓배송조차도 이 성공이 어느 정도 자리잡고 난 뒤의 일이다. 차별성은 본질을 건드려야지 아니면 개발자와 디자이너 붙잡고 하는 '돈낭비'일 뿐이다. 창업자 제외하고는 누구도 관심없다. 


3. 그냥 느리다 : 계획했으면 실행해야 하는데, 여기서 실행의 핵심은 고객에게 그 물건을 파는 것이다. 팔아보지 않은 물건이나 서비스 백날 잡고 있어봐야 백원도 안들어온다. 팔아보고 깨지고 바꾸고 다시 팔아보고 깨지고 바꾸다보면 얻어 걸린다. 너무 무책임하지 않냐고? 백날 회의만 하고 있는 것보다 백만배 낫다. IT 서비스나 콘텐츠라면 아이디어에서 제품화까지 1달내에 테스트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도 아닌데 제품 수정 출시하는데 반년 걸리는 경우 너무 많이 봤다. 이렇게 늦어지는 이유는 대표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꾸 챗바퀴돌듯 빙빙 돈다. 그 사이에 현금은 불타고. 


4. 핵심 업무를 창업팀이 아닌 직원이 한다 : 온라인으로만 수익이 나오는 IT 서비스 회사라고 해도 최소한 초창기에는 그 회사의 핵심 업무는 의외로 영업이다. 출시 전 MVP 단계에서도 그렇고 그 이후 레퍼런스를 쌓기 위한 과정에서도 그렇다. 뭐, 게임이나 B2C 콘텐츠처럼 온라인에서 모두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산업도 있겠지만 그 조차도 처음 게임 아이디어를 얻고, 게임을 운영할 노하우를 배우고 개발 과정 등에 대한 조언은 사람에게 얻는다. 이런 일을 창업자가 안하고 직원에게 떠넘기면 창업자는 편하겠지만 좀 지나면 야금야금  회사의 혈관을 잡아먹는다. 


내가 만나봤던 수많은 스타트업들 중에서 망하는 곳들은 이 패턴을 벗어난 경우가 없었다. 모두 하나같이 멋있는 사업계획과 IR 자료, 그럴싸한 사용자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매출도 나왔지만 사업의 차별성은 "개미 뒷다리에서 우리 개미가 마디 하나 더 길다"는 수준이었고, 그런 차별성으로 몇 달을 제품 개발에 돈을 쓰다가 제품 출시하면 온라인 광고나 좀 돌려보고는 "반응이 없는데 광고비 좀 더 써야하지 않을까?" 같은 말 좀 하다가 "아니야, 사실은 이 제품은 애초에 자신이 별로 없었어. 제품을 아예 이렇게 바꾸자" 같은 소리를 하다가 다시 실패를 반복하고, 그 사이 직원들은 슬슬 자신없어 보이는 대표에게 실망하고 핵심 인력 한 두명씩 떠나고, 대표는 더 조급해지니 사람을 마구 뽑고, 실적은 더 안나오고...


이런 상황에서 수익성을 중시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수익을 올리자 같은 소리는 그냥 지나가는 층간소음 수준이 된다. 선명하게 들리지도 않지만 들린다고 해도 뭐 하나 바뀌는 것 없다는 뜻이다. 50대 배나온 대사장애 아저씨의 죽음과 똑같지 않은가?


투자 받은 적이 없다면 이런 상태일 때는 빠르게 사업을 정리하고 자기가 사업가의 자질이 없음을 인정하고 다시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이런 문제가 확인되는 시점은 주로 씨드~시리즈 A 정도를 투자받은 시점이고, 대표자가 멈추고 싶다고 멈춰지지도 않는다. 투자 받았으니 실적에 대한 압박은 매일 더 커지면 커지지 절대 줄어들지도 않고. 


창업자가 고민해야 하는 일의 가장 근간이자 핵심은 돈을 가져오거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장에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의미가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의미에 맞게 시장에 진출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고, 그 방법의 도구가 제품이고 마케팅이고 인력채용이다. 제품과 마케팅과 인력이 전략 앞에 오면 매일 밤 야식을 하면서 혈압 걱정하는 50대 아저씨와 동일한 미래를 맞이하게 된다. 망해보면 알텐데, 절대 즐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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