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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Oct 04. 2023

스타트업 조직 운영의 몇 가지 기본


스타트업 조직 관리에 대한 글들이 여기저기 보여서 내 생각 정리 몇 줄.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자들에게 내가 권장하는 조직 운영의 원칙은 대략 다음의 세가지다. 


솔직하자


공식화하자


뒷감당을 준비하자


창업자들을 만나다보면 ‘멋있는 경영자로 보이고 싶다’는 아주 순진한 이유에서부터 ‘유명한 회사가 이렇게 한다고 하니까’ 또는 ‘어느 유명한 경영 구루가 이렇게 이야기했으니까’,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인재가 오지 않으니’ 등의 이유로 창업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별로 내키지 않는 시스템을 도입하고는 한다. 


가령 ‘나는 현재 일하는 애들 중에서 내 피같은 지분을 나눠주거나 스톡옵션으로 큰 보상을 해주는 것이 아깝다’ 라는 생각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맴돌고 있는 창업자도 있을 것이고, ‘나는 애들이 시간에 늦는게 너무 싫고 칼출근, 칼퇴근하는 것도 너무 싫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요즘 애들은 귀에 이어폰 꽂고 근무하는데 눈에 거슬리는데 지적하면 꼰대처럼 보일까 신경쓰인다’ 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창업자가 아무런 말 없이, 쿨한 척 스톡그랜트나 스톡옵션 주고, 칼퇴근하는 직원보고 웃어주며 이어폰 꽂은 직원에게 잘하고 있다고 해주면 되는 것일까? 


우리 모두 잘 알겠지만, 한 두번 혹은 짧은 기간 동안에는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다른 얼굴표정과 행동과 태도를 취해서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장기간에 걸쳐서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이 마음속의 생각이 드러나게 된다. 


주식을 줄만큼 일을 안하거나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결국 언젠가는 창업자는 직원들에게 ‘너희들 도대체 하는게 뭐냐!’ 라고 화를 내거나 아니면 이 때문에 창업자의 자기 몸이 아프게 되어 있고, 칼퇴근보고는 뭐라고 하지 않지만 대신 이메일의 내용이 부실하다도 트집잡아서 싫은 소리 잔뜩하게 되어 있고, 이어폰은 넘어가지만 고객 대응 못한다고 한마디 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만 사항이 계속 반복되고 쌓이면 결국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법이라는 뜻. 더불어 이런 창업자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결국을 눈치채게 되고, 창업자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겉에 보이는 것과 그의 진심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 못믿는 것이 당연. 


창업자 마음속의 갈등과 직원들의 불신이 결합되면 엉뚱한 시점에 엉뚱한 상황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조직에 파열음이 나거나 생산성이 급격히 나빠진다. 


솔직하자라는 말은 창업자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키지 않거나, 잘 모르겠는 조직 관련 항목이 있으면 이걸 외부적인 이유로 도입하지 말라는 뜻이고, 더불어 자기 마음속에 드는 생각 중 창업자 스스로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 것은 직원들에게 이야기하라는 뜻이다. 


‘나는 야근, 주말근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일이 늦어지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훨씬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믿고 이런 모습이 우리 조직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직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라는 뜻이다. (물론 근로기준법 준수하는 범위내에서) 개꼰대 회사에 갑질하는 상사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정시 퇴근하면 인상 찌푸리고 주말에 직원들 등산하자고 불러내서라도 직원들 쉬는 꼴 못보는 꼴보다는 백만배 나으니 하는 말. 


직원들에게 ‘우리는 워라밸이 아니라 성과를 최우선에 둔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 다음엔 내가 그 말에 어울리는 ‘시스템’과 ‘제도’를 갖춰야 한다. 즉, 공식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창업자가 ‘나는 야근을 사랑해’라고 몇 달간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자기가 연애를 시작해서 연애하느라 야근도 안하고 주말 근무도 안한다고 하자. 이 경우 직원들은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하게 될까 아닐까? 어처구니 없겠지만 내가 옛날에 봤던 실제 사례다. 이 회사에서 직원들은 대표가 남아있지 않기 시작했을 때는 야근과 주말근무를 했지만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해서 결국 아무도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대표가 갑자기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시키면 혹은 사무실 나오지 않았다고 화내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대표자에 대한 신뢰도가 계속 내려갔다. 더불어 ‘우리는 야근, 주말근무 기록도 부실하게 남기는데 이 근무 비용은 따로 주나?’ 같은 고민도 하게 되고. 직원들이 이런 비생산적인 의문을 계속 가지게 되니 업무 집중도도 낮아지고 대표에 대한 불만도 계속 쌓여갔다. 


공식화한다는 것은 이런 부분에 대한 것을 명료화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대표자의 ‘빡쎈 근무’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결국 조직을 떠나고, 상관없거나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신규 직원을 뽑을 때 블라인드에 엉망인 평판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기왕 할 거 몰입해서 단기간에 최대한 해치우는 걸 더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점들을 공식화해놓아야 단지 ‘창업자의 취향’이 아니라 ‘조직 문화’로 자리잡게 되고, 불필요한 뒷말이나 불만 사항이 최소화된다. 


그런데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당연시하는 규정과 문화가 생겨나면 이를 위해서는 각종 추가 식대와 야근과 주말 수당 문제가 생기고, 이를 위해 근무 시간 확인 절차가 필요해지고, 대체 휴무 또는 장기간의 휴가에 대한 규정의 정립 등이 추가로 필요해진다. 자칫 잘못 운영되어 직원들이 야근하는 척만 하고 밥값만 청구하는 경우도 생기며, 야근에 참여하지 않는 직원을 왕따하거나, 그걸로 충성 경쟁을 하기도 하고, 근무시간이 길어지며 오히려 생산성이 더 떨어지기도 하고, 핵심 인력이 이 이유로 나가겠다고 할 수도 있다. 창업자는 매우 간단한 생각, 즉 ‘나는 임직원들이 일에 집중하고 워라밸보다 성과를 좋아하면 좋겠어’ 라는 생각을 행동에 옮긴 것 뿐인데 수많은 문제와 고민들이 파생되어 생겨나는 것이다. 야근 예시만 들었지만 거의 모든 경영 의사 결정, 특히 조직과 관련된 의사 결정에는 무조건 이런 후폭풍이 따라온다. 잘못 대응하면 조직이 박살나거나 생산성이 곤두박질치거나, 지역노동청에 소명하러 출퇴근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하나의 간단한 결정이라고 해도 충분히 이런 후과들을 생각하면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뒷감당을 준비하고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 


수많은 유명한 조직 관련 전문가들의 자료가 넘쳐나고, 유명한 CEO들과 창업가들의 성공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도 ‘저 방법만 도입하면’ 갑자기 생산적인 조직이 되고 협력적이며 멋진 팀이 될 것 같겠지만, 그런 거 세상에 없다. 


하이 패션은 얼굴이 잘 생긴 사람에게나 하이 패션이고 내가 하면 그냥 동네 배나온 아저씨의 동네 마실 복장이다. 도구나 성공 사례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 마음’이 중요하고, ‘뒷감당’이 중요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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