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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Sep 26. 2023

스타트업 아이템 선정 이야기


자주포라는 물건이 있다. 대포에다가 바퀴나 궤도를 달아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대포라는 뜻이다. 스탈린이 세계대전의 전과를 보면서 했다는 말이 “포병은 전쟁의 신” 이라고 하는데, 포병이 얼마나 파괴적인 전력인지를 아주 잘 이야기하는 말이다. 실제 최근의 우러 전쟁에서도 양측 병력 손실의 대부분이 대포에 의한 피해라고 하니. 


이렇게 무서운 대포지만 자주포가 되기 전까지는 한가지 단점이 있다. 포를 준비해서 발사하기까지 준비가 길고, 발사 한 다음에 그 장소를 이탈하는 것도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대포가 쏘는 포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라간다. 그래서 레이더로 이 포물선의 궤도를 계산할 수 있다면 그 포탄이 어디에서 발사한건지 그 발사 장소를 특정할 수 있어서 발사 장소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적이 나의 위치를 알아내 내게 역으로 포탄을 날릴 수 있고, 포탄을 쏘는 병력들은 그냥 맨몸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몰살하는 수가 생겼다. 무거운 포를 트럭 등으로 이동하기도 어렵고, 상대의 대포병 사격에 걸려들면 목숨 부지도 어려우니 포를 아예 트럭이나 궤도차량에 올려서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 자주포인 것. 


이 자주포 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50%를 넘는다고 알려진 무기가 우리나라의 주력 자주포인 K9이다. 


이 제품이 말도 안되는 시장 점유율을 가지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고,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다. 


잠깐만, 세계 점유율 절반이 넘는데 세계 최고 성능은 아니라고? 그럼 말도 안되게 싸서인가? 


일단 독일제 등 다른 제품보다 월등히 싼 건 맞다. 무기 가격이라는게 정가라는게 없고 계약마다 세부 조건이 워낙 복잡해서 정확히 비교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 k9이 경쟁 제품보다 절반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근데 무기라는건 험한 환경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물건인데 단순히 싸다는 이유로 세계의 절반을 점유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다못해 무선 청소기도 차이슨 안쓰고 LG나 다이슨 사는게 일반적이니 무기도 마찬가지. (그리고 k9이 싼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내부 수요, 즉 국방부가 이 자주포를 정말 미친듯이 생산 배치해서 규모의 경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자, 무기대백과 하려는 건 아니고, 스타트업 사업 아이템 선정 관련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인데,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k9의 성능이 전세계 최고 제품보다 약간 열위에 있고, 자주포 기술의 퍼스트무버도 아닌데 시장을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가격 우위가 있지만 가격이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시장에서 무엇이 이런 성과를 가져왔고 스타트업에 대한 시사점이 뭘까 이야기해보자는 것. 


세계 최강 자주포로 일컬어지는 제품은 독일 KMW가 만드는 PZH2000 이라는 물건이다. (군사력 세계 최강 미국이 아닌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 애들은 대략 20km 넘는 거리는 포를 쓰는게 아니라 그냥 비행기로 폭격을 한다. 돈 많은 미군만 가능한 전쟁 방식인데, 아무튼 포의 성능에 크게 신경 안썼다는 뜻이다. 미군식 논리는 포병이 아니라 공군이 전쟁의 신.) 냉전 시대 막바지에 개발이 진행되었는데, 아직 소련과 대치하던 시절 나토 동쪽 방벽인 서독을 방어하기 위해 당시 모든 최신 기술과 유명한 독일 기계 공업력을 총집결시킨 제품이다. 출시 후 20년이 넘게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실전 배치된 제품 중 최고의 스펙을 자랑한다. 특히 포실 내부의 강도가 매우 높아서 소모품인 포신의 교체 주기가 매우 길고, 포를 쏘아 올리는 화약인 장약 기술 또한 세계 최고여서 포신이 매우 뜨거워져도 장약을 투입할 수 있는 둔감장약을 통해 1분당 거의 10여발을 3분간 지속 사격 할 수 있다. 빨리 쏘고 빨리 도망가야 하는 현대 포병에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옵션. K9도 매우 우수한 성능이지만 이 정도까지 많은 양을 이렇게 빨리 쏠 수는 없다. 


그런데도 K9은 이 시장을 장악했다. 일단 자주포가 빨리 쏘는게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까지 빨리 쏠 일은 별로 없다. 상대가 대포병 사격을 할 것 같아서 빨리 많이 쏴야 한다면 1대가 이렇게 빨리 쏘기보다 그냥 애초에 2대를 투입해서 나눠서 쏘면 될 일이다. 포신도 1500발 발사 후 교체하면 되는 장점이 있다지만 그냥 1천발 쏘고 교체하는데 비용이 절반도 안된다면 교체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더라도 이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더 싸게 먹힌다. 게다가 PZH2000은 기계 공학의 정수를 보여주다보니 기계가 부품도 많고 조작도 매우 복잡한 반면 징집병들이 사용할 것을 가정한 K9은 부품이 단순하고 구동 조작도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포 사격 전문 군인들이 사격할 것으로 가정한 독일제와 징집병이 마구 다룰 것으로 가정하고 만들어진 물건 중 어느 쪽이 열악한 전쟁 상황에서 더 유리할지는 뻔한 이야기다. 실제로 우러전쟁에 지원된 독일제 자주포는 부품 교체나 조작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투입 규모에 비해 도움이 덜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는 한다. 우크 병사들이 독일 병사들만큼 부드럽고 세심하게 관리하지도 못하고 대규모 전면전 중이니 인력 훈련도 그만큼 하지 못하다보니 독일군이면 생기지 않을 문제들을 겪고 있다고 한다. 기계가 첨단이라는 점은 최적의 상황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다. 


시장에 나온 것도 독일제가 먼저 나왔고, 성능도 독일제가 여러 면에서 낫다. K9이 가진 장점은 대략 80~90% 정도의 성능에 조작이 쉽고 한국의 험한 환경을 기반으로 해서 다양한 지형에서 안정성을 보여주며,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결론으로 인해 K9은 세계 시장의 50%를 장악중이다. 


이제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일단 스타트업이 K9처럼 대량으로 생산해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함부로 '싸게 팔겠다'는 생각은 해서는 안된다. 


다만, 성능이 높다고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쟁터, 특히 대규모 전면전 상황에서 군대를 운영하는 입장이라면 포에 대해 뭘 기대할까? 좋지만 예민하고 1대를 도입하거나 부품을 교체하는데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장비를 선호할까? 아니면 어느 정도의 성능에 막굴려도 되고, 1대로 해결할 수 없다면 두 대, 세 대를 투입해서 해결할 수 있으며, 도입이나 부품 교체 비용이 저렴하면서 지형이나 날씨 등에 영향을 덜 받는 물건을 선호하게 될까? 지금까지의 실적은 후자가 압도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K9은  700대 가량 해외에 판매되었지만 PZH2000은 독일연방군 도입분까지 합쳐서 200대가 되지 않는다고 하니까. 


오버 엔지니어링이라는 말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도한 엔지니어적 접근을 하는 바람에 문제를 오히려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되는 말이 '적정 기술'이다. 기술이 최고도 아니고, 멋내기 위한 부분도 없지만 문제를 해결하는데 비용, 시간, 편리성, 용이성 등이 반영될 때 필요한 만큼의 기술을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시장에서는 언제나 적정 기술이 이긴다. 


스타트업 제조 분야에서 지향해야 하는 것은 맨 처음 시장에 내놓는 것도 아니고, 멋진 기술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객이 실제 상황에서 부딪힐 문제를, 딱 그 정도에 맞게 해결해줄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PZH2000을 만들면 '역시 엔지니어링의 최강자'라는 평은 듣겠지만, 어차피 돈은 'K9'이 번다. 


게다가 기존에 미국이나 독일에서는 매우 어렵고 비싼 방법으로만 사거리 50km대 이상 포탄을 날려 보낼 수 있었는데, K9 등 자주포를 원체 대량으로 뽑아내다보니 우리나라의 포탄 제조사에서 경쟁국보다 훨씬 저렴하고 쉬운 방법으로 60km를 날려보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물량이 확보되고 순환이 빨라지다보니 그에 기반해서 시장 최강자를 넘어서는, 전형적인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스타트업은 이러한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k9이 별로인 자주포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미친듯이 좋은 자주포다. 독일 애들이 좀 과도하게 만든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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