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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Feb 14. 2024

스타트업에 영업이 필요한가

스타트업 B2B 영업 가이드 1. 


    스타트업에서 영업이 필요한가?  

우리가 스마트폰용 게임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기획을 하고, 빌드를 만들고, 테스트를 한 뒤에 앱스토어에 올리고, 유튜브 등에 광고를 할 것이다.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을지 몰라도 이 과정은 우리의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다 처리할 수 있을게다. 테스트 단계에 참여할 참여자 모집이나 출시 후 피드백과 마케팅을 위한 커뮤니티 등도 모두 온라인 상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 광고를 위한 외주 또는 광고 운영도 모두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렇게 하고도 매출이 발생할 수 있고, 게임이 잘 만들어졌거나 광고비를 충분히 투입하면 수익을 올릴 수도 있을게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영업이 별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 

외부에서 물건을 떼어와서 이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파는 경우는 어떨까? 물품의 종류나 수량 등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어지간히 큰 규모로 거래하지 않는 한 이 역시 한 두명이서 판매에 필요한 대부분의 일들을 역시 컴퓨터 앞에서 처리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재고를 관리하거나 배송 등을 위해 오프라인에서 활동을 해야하기는 하겠지만, 이 역시 영업이라는 개념이 별로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그냥 온라인에서 이렇게 저렇게 몇 차례 해보면 어렵지 않게 매출 발생이 가능한 일이다.  

그럼 이렇게 온라인으로만, 매뉴얼과 시스템에 따라 일처리를 하면 매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사업들은 진짜 스타트업 사업에서 비중이 얼마나 될까? 중기부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의 사업모델별 비중을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업의 비중은 12% 남짓으로 보인다. 이커머스 영역도 유사한 12% 내외다. 이들 중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에는 영업으로 오더를 따와야 하는 수주업 성격의 사업도 매우 많고, 역시 영업이 필요한 B2B 성격의 커머스도 많아서 이들을 제외한다면 짐작컨데 전체 스타트업 창업의 10% 정도만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시스템과 매뉴얼에 의존에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 분야라면 영업에 대한 고민없이 컴퓨터 앞에서 씩씩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면 된다.  

자, 그럼 나머지 90%는 어떨까? 남들에게 가서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워서 카페를 차려서 커피 머신 뒤에만 머물렀다. 그리고 알바생에게 접객을 시켰다. 다행히 알바생이 사람들에게 매우 잘해서 단골이 늘어났다. 그런데 옆에도 카페가 생기고 나의 인기많은 알바생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떠나갔다. 나의 단골들은 어디로 갈까? 내가 만드는 커피와 디저트가 너무 맛이 있어서 그 알바생을 따라가지 않고 내 카페에 계속 와서 단골로 남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기계를 만지는 것이 좋고 하늘이 좋아서 드론 업체를 만들었다. 기술 개발도 열심히 해서 지원금도 받고 투자금도 받아서 멋진 대형 드론을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 고급의 대형 드론을 사줄 사람이 없어서 유통사도 찾아가야하고, 대기업도 찾아가야 하고, 군납을 위해 국방부도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사람 만나는게 너무 피곤하고 가격 이야기하는게 너무 불편해서 다시 기술개발만 더 집중하고 싶다. 투자금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괜찮지만 이제 실적이 안나오면서 투자금이 떨어져간다. 영업 안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Zoom 같은 성공을 꿈꾸면서 스타트업 업체들을 위한 SaaS 업체를 만들었다. 스타트업들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니 영업없이 매출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광고도 돌리고 사용자들을 위한 커뮤니티도 만들었다. Zoom이나 Slack처럼 굳이 영업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알아서 입소문을 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소개해주길 바라면서 마케팅을 집중했다. 그런데 광고를 많이 돌리고 커뮤니티에 매일 수십편의 콘텐츠를 올려도 반응이 미지근하다. 몇 명의 관심을 보인 예비 고객들이 남긴 피드백을 보니 ‘기능이 좋은데 우리 회사에 그렇게까지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는 말들이 있다. 광고랑 콘텐츠를 더 열심히 만들면 고객들에게 필요성이 잘 전달될까? 

기업의 본질은 ‘파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차별적으로’가 더 관심이 가겠지만, 기업이 다른 사회적 주체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판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는 방법 중에서 온라인 광고와 커뮤니티, 콜센터나 이메일 대응만으로 이뤄지는 업종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체 스타트업의 10% 남짓이다. 나머지는 팔기 위해서 이 이상의 행동이 필요하다. 커피를 사러 오는 고객의 이름과 취향을 기억하며 눈인사를 나누고, 딱딱한 분위기의 고객사에 가서 견적과 거래 조건과 장점을 설명하며, 우리가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를 고객의 눈 앞에서 명료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활동이 추가되어야 우리가 하는 기업 활동의 본질이 충족되는 기업이 90%다. 이런 활동을 ‘영업, Sales’라고 부른다. 우리가 거래의 상대방이 될 능력이 있고, 우리가 파는 제품이 가격에 어울리는 가치를 제공하고, 경쟁사보다 우월한 조건이며, 당신의 문제를 우리가 잘 파악하고 있어서 우리 제품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이 활동이 ‘영업’이다.  

우리가 영업이라고 생각하면 흔히 브로셔들고 고객 귀찮게 하고 뒤통수 때릴려고 하는 가전제품 영업사원이나 잘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로 겁을 주며 계약을 종용하는 보험 판매원을 떠올리겠지만, 영업이라는 활동은 고객의 문제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그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 우리 회사와 우리 제품을 제안하며, 고객이 이 거래를 통해 얻게 될 가치보다 낮은 금액만을 청구한다는 설득을 하는 활동이 영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요소들에 대해 ‘잘 모르겠다 혹은 긴가민가 싶다’ 라고 망설이는 고객을 끌어와서 나와의 거래에 대해 ‘결심’하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마케팅이 우리 회사와 우리 제품에 대한 인지와 관심을 유도하는 활동이라면 영업은 그 인지와 관심이 거래의 성사로 만들어내는 전체 활동을 의미한다. 광고와 웹사이트만으로 이 결심과 거래 성사가 이뤄지는 업종이라면 영업이 주는 부가가치가 낮겠지만, 망설이는 고객이 많고, 거래의 혜택에 대해 헷갈려하며, 경쟁사와 우리 회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고객이 많은 업종일수록 구매 도장을 찍게 하는 영업 활동이 우리 사업의 핵심이 된다. 

고객이 대륙 스케일로 펼쳐져 있고, 수십만~수백만개의 고객이 쉽게 계산된다면 마케팅 활동으로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좁은 지역에 그렇게 많지 않은 고객이 존재하는 경우 내가 온라인 마케팅만으로 거래를 따내려고 할 때 누군가는 고객을 직접 찾아가 설득을 한다. 가까운 곳에서 얼굴보면 있을 때 거절을 잘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내 제품이 어지간히 좋지 않으면 고객은 나보다 경쟁사와 거래를 할 확률이 올라간다. 이렇게 되면 고객이 그 경쟁사와의 거래에서 만족하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 메타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영업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 활동을 의미하고, 스타트업에서 이로부터 자유로운 업체는 극히 소수다. 아무리 사업 모델이 신박하고,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고객을 결심으로 이끄는 강력한 유인이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유인은 기술이나 모델의 신박함이 아니라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전달하는 신뢰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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