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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Mar 19. 2024

스타트업 나르시시스트 창업자를
알아보는 방법에 대해


1. 일단 약은 약사에게, 정서에 대한 전문적 분석과 도움은 당연히 의사와 상담사에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나르시시스트 창업자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2. 성격도 유전이 됩니다. 그 말은 특정 성격이 아무리 보통 사람의 눈에 나빠보여도 뭔가 후대를 남기는데 장점이 있어서 진화 과정에서 밀려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뜻입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전체 인구 중 비율은 대략 4% 정도라고 하죠. 25명 중에 1명은 나르라는 뜻. (균질한 분포가 아니라 특정 직업군에 집중적으로 분포합니다. 통계에 따라서는 전체의 15% 이상인 업종도 있습니다 ㅋ. 나르가 6명 중 한명이라면 지옥 아닐까 싶지만, 나름 아수라장 지켜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ㅋㅋㅋ) 


3. 나르는 단순히 ‘자기애’가 강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겉에 보이는 것은 자기애가 강한 사람과 같다는게 문제죠. 별 문제 없는 사람인데 자신감과 자기애가 강한 사람과 나르의 차이는 대략 타인과의 비교라는 맥락에서 자기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냐 아니냐, 타인을 도구로 보느냐 아니냐, 그리고 자기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느냐 아니냐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자뻑을 잘한다고 나르가 아니라는 뜻이고, 자신감 넘치고 잘났다고 나르도 아니라는 뜻이고, 타인을 도구로 보느냐가 매우 중요한 기준이라는거죠. 


4. 나르 성격의 장점은 우선 어떤 나쁜 일이 생겨도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잘못 또는 그냥 운이 나빠서 생긴 것일뿐 자기 잘못이 아니거든요. 죄책감은 사람을 우울에 젖게 하거나 의욕을 상실하게 할 수 있어 후대를 남기는데 불리해집니다. 나르는 그렇지 않죠. 


5. 나르는 타인의 관심, 그 중에서도 애정과 감탄을 갈구하는 사람입니다. (존경이나 존중을 원하지만, 그건 성취하기 너무 오래 걸리고 자신들의 역량으로 얻을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죠.) 본능적으로 이 성향을 가지고 성장해왔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고, 상대방이 내게 눈을 한번이라도 더 주도록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타인에게 매우 잘 맞춰줄 수도 있죠. 이성인 경우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더불어 대체로 몸이나 외모가 예쁩니다. 관리를 잘하죠. 


6. 사람의 관심과 애정을 끄는게 본능적으로 중요한 사람이니 일단 처음에, 낯선 관계일 때 적극적, 외향적이고 말을 잘 합니다. (정확히는 내용은 대체로 부실하고 순발력은 아주 좋은 말입니다만, 처음 만날 때 내용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생각해보면 왜 나르의 부실한 말들이 왜 그저 센스좋다고 해석되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앞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에게도 관심을 달라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호감을 가지기 쉽죠. 거기다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도 아주 잘합니다. 그런데 이 거짓말이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인 경우가 꽤 있습니다. 내 귀의 캔디를 계속 들려주는데 오랜 시간 지켜보지 않으면 거짓말인지 알기 쉽지 않죠. 


7. 여기까지는 그냥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면 좋은 부모 밑에서 건강하게 잘 교육받은 사람 눈에는 5, 6번 같은 사람이 ‘천박’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확률이 충분히 크다는 뜻입니다. 


8. 그런데, 이 나르 중에서 지능이 매우 높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능도 높고, 타인의 관심과 애정, 인정 등을 받기 위해, 그리고 학창 시절 타인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학창 시절의 평가 기준이 되는 ‘공부’에 집중해서 이를 엄청나게 성취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지능이 높고, 공부까지 잘하면 나르라는 성격적 특성 때문에 발생할 수많은 문제를 성인이 될 때까지 상당히 피해갈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죠. 잘난체해도 ‘성적 좋으니 그럴 수 있다’, 좀 이기적이어도 ‘애가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그렇다’, 감정 기복이 있어도 ‘지치면 그럴 수 있다’, 타인을 착취하더라도 너무 드러나게만 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공부하는 거 방해하는 애들한테 화 낸거다’ 같은 식의 실드를 경험한다는 것이죠. 머리좋으니 이런 학습도 잘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실드를 고스란히 써먹습니다. 


9. 이런 고기능 나르들은 평균적인 나르와 다르게 사회적인 성취도 상당히 잘합니다. 왜냐면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게 중요한데 사회적인 타이틀은 이런 것을 매우 편하게 강화시켜주고, 더불어 머리가 좋아서 이걸 얻는 것도 어렵지 않으니까요. 


10. 자, 이쯤되면 고기능 나르가 창업자로서도 매력적으로 보일 여지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타이틀을 상당히 가지고 있고, 머리도 좋고, 게다가 나르라는 특성상 말도 센스있게 잘하고, 외모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외모는 잘생겨서 잘생겨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감과 패션센스가 더 중요할텐데 나르는 남에게 보이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패션 센스가 대체로 나쁘지 않다고 하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해서 자기 관리도 잘하고, 더불어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꽤 쌓았습니다. 자신감 넘치고 외향적이면서 사람에게 호감받는 방법도 알고 있으니 굉장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여전히 그림이 잘 안그려진다면 테라노스로 초대박 사고를 친 스탠포드 출신 CEO 같은 사람을 떠올리셔도 됩니다. 


11. 나르, 특히 고기능 나르 창업자는 해당 분야의 진짜 전문가 시선에서 보면 여전히 어설프고, 내용이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신감 넘치는 전문가’, ‘젊고 매력적인 사업가’, ‘사회적으로 이미 이룬 것이 많은 준 셀럽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같은 식의 느낌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자기를 홍보하고, 자기를 포장하는 능력이 좋다보니 사업의 성공 이전부터 언론이나 각종 행사 등에 자기를 매우 많이 드러냅니다. 허황된 수준의 목표를 곧잘 이야기하는데, 그게 자신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스타트업에서 각광받는 ‘moon shot thinking’ 인지, 정말 황당한 이야기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투자자라면 이런 창업자를 앞세워서 라운드 계속 돌려서 좋은 수익 올리면서 적당히 빠져나갈 기회도 있을 수 있죠. 이런 사람인지 알면서도 투자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못알아보면 그냥 자신감이 좀 많은 똑똑한 창업자 정도로만 인식하고 투자하겠죠. 고기능답게 겉보기 스펙이 매우 좋으니 투심위 등에 가서 설명하기도 좋습니다. 그림이 나오거든요. 


12. 고기능 나르 창업자들이 아주 잘하는 것이 그 당시 투자 동네에 유행하는 트렌드를 사업 모델에 적절히 포장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스타트업 동네엔 매년 유행이 있습니다.  AR/VR, 빅데이터, 블록체인, 핀테크, 메타버스, AI, 모빌리티 등등. 이들 고기능 나르에겐 이런 유행을 자기가 관심 가지고 있는 사업 모델에 연결시키는게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마치 패션에 신경써서 TPO에 맞춰서 옷을 갈아입고 장신구를 고르는 것과 동일한 일이거든요. 스펙좋고 말잘하는 자신감 쩔고 나름 매력적인 외모의 창업자가 자기의 좋은 스펙에 기반해서 최신 유행하는 트렌디한 기술까지 결합한 사업 모델을 들고 나타났으며, 자기 스스로 사업의 모양을 갖추고 여기저기 홍보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당연히 투자하고 싶어집니다. 물론 실체가 부실하기 때문에 결국 시한폭탄일테지만, 자기가 투자금 회수할 때까지 터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13. 투자자야 어차피 리스크 테이커니 그런다고 하는데, 문제가 되는 사람은 직원이죠. 자기가 취업하는 스타트업 창업자가 이런 성향인지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가 문제죠. 뭐, 자신감이 쩔거나,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게 해주면 별 상관없다, 혹은 나르 정도는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성향의 분들이라면 대표가 나르거나 아니거나 별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월급만 잘 나오고 다니는 동안 회사가 계속 성장하면 되는 일이죠. (나르를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싶으실텐데, 신은 공평해서 누구에게나 반대의 무게추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평소 사람 관찰을 많이 해보신 분들은 나르가 사람들 사이에서 굉장히 많이 튀고, 머리좋은 경우엔 각광도 많이 받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집단에서 나르 입막음 시키고 짱 먹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매우 드물지만 이게 자연스럽게 가능한 몇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14. 나머지 사람들은 직원으로서 이런 창업자를 만나지 않는게 좋습니다. 상사로서는 맨 처음 몇 주 정도를 제외하면 어떻게 봐줘도 좋은 상사가 아닙니다. 일단 사업체 자체가 겉보기와 매우 다르게 디테일한 부분을 들여다볼수록 엉망인 경우가 많고, 실체가 있다면 나르 대표자 밑에서 정말 고생하는 실무책임자가 있어서 겨우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 책임자가 퍼지거나 나가면 회사는 정말 산으로 갑니다. 대표자가 입사 때 약속한 보상이나 업무 분배같은 것도 막상 오면 완전히 다른 경우도 꽤 있고, 대표자의 거짓말 또는 위선적이고 강압적, 시건방진 태도 때문에 클라이언트 회사나 외부 파트너들과 불필요한 갈등이 빈번하게 생겨나는데, 직원 입장에서 이런 뒷처리는 정말 자존감을 갉아먹게 되죠. 업무도 체계가 있기보다 엉망 진창인데, 좀 지나면 대표자가 이런 문제의 책임을 직원의 탓으로 계속 돌리기 때문에 만약 내가 이런 책임을 떠안게 되면 삶이 많이 힘들어집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에게 세뇌되어 있다면 차라리 행복하긴 할텐데, 어차피 언젠가는 깨어나야 하는 꿈이기 때문에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한없이 괴로워지죠. 


15. 한번의 만남으로도 이런 대표자를 알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세상에 이런 방법은 없으니 나르가 전 인구의 4%를 넘는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 않겠어요? 그나마 짐작해볼 수 있는 몇 가지 힌트 정도들은 있는데, 우선 규모가 약간이라도 있으면 면접을 가기 전에 블라인드의 코멘트를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회사 불안하고, 체계없다, 윗사람이 일많이 시킨다처럼 여느 스타트업이나 겪는 문제 말고 좀 특이한 점이 없는지 보는 것이죠. ‘대표자가 나쁜놈이다’와 ‘대표자가 멋지다’는 양 극단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던지, 대표자가 외부에 보여주는 것에 엄청나게 신경쓰고, 외부에 대하는 태도와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혹은 말만 그럴싸하고 정작 행동으로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는 식의 코멘트가 있다면 면접시에 대표자 관찰을 잘 해봐야 합니다. 


16. 대체로 회사 규모에 비해 사무실이 좋거나, 아주 좋은 동네의 코워킹 스페이스에 지원 사업이 아닌 회사 돈으로 입주해있고, 대표자의 명함이나 패션 등에서 유독 눈에 띄는 화려함이 있다던지, 면접 시간에 대해 늦는 등 기다리게 만드는데 와서는 사과 한마디 없다던지, 처음에는 과한 관심을 보여주지만 면접이 진행되면서 내가 성실한 모습으로 대답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사람을 내려보는 듯한 자세를 보인다던지, 혹은 같이 면접에 들어온 회사 직원의 말을 중간에 자르거나 핀잔을 준다던지 등의 아주 작은 사인들을 종합해보는 것이죠. 


17. 면접 때 이런 시그널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고, 이후 신문 기사 등에서 회사나 대표자를 소개한 자료에서 사업의 ‘성과’보다 ‘백그라운드 스펙’과 ‘아무리 생각해도 2~3년내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림같은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면’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스펙이나 경력에 비해 과도한 보상을 약속하는 것도 하나의 시그널일 수 있습니다. 


18. 하지만 계속 이야기드리지만, 한방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작은 조각들을 모아서 모자이크를 만들 수 밖에 없는데, 찾아야 하는 키워드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에고’와 ‘방어적인 태도’, ‘타인에 대해 낮게 보는 시각’, 같은 것들입니다. 에고가 사업보다 먼저 오는 사람만은 피하겠다 정도의 생각을 하고 면접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업은’ 보다 ‘내가’가 먼저 나오는 빈도가 높은 사람을 피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어렵죠. 솔직히 정말 잘 안됩니다. 이게 잘 되면 우리가 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에게 속아 넘어갈 리가 없겠죠. 


19. 평소 사람 보는 눈을 키우면 조금은 더 도움이 될 겁니다만, 너무 시간이 많이 들고 그렇다고 해도 잘 골라낸다는 보장은 여전히 없습니다. 때문에 내가 ‘성공하겠다’ 혹은 ‘멋진 곳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는 의욕을 조금은 조절하는게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에고가 부풀려지면 그걸 가장 잘 캐치하는 사람들이 나르거든요. 


20. 거창하게 시작해서 용두사미의 해법만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잘 안되는 걸 된다고 할 수는 없겠죠. 때문에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입사 후 이런 점이 너무 많이 나타나고, 주변의 사람들 역시 퇴사각만 보고 있다면 굳이 커리어가 짧다는 이유로 오래 머물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이 다음 회사 면접에서 '앞 회사에서 근무하신 시간이 짧네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네, 회사가 성과를 개선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 곳입니다만, 막상 들어갔을 때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오래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도 안타깝습니다' 정도의 대답으로 구렁이 담을 넘어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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