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el Mar 20. 2024

창업 초창기 3개월의 기억


자료 만들다가 아주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사실은 지금도 별로 다를 건 없지만 최소한 지금은 그래도 고객이 좀 있으니. 


대기업 다니다가 창업 시장에 나온 뒤에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 명함을 누군가에게 줄 때는 수많은 설명을 주저리주저리 붙여야 했었다. 회사 이름을 잘못 읽는 사람도 많았고, 그 때는 명함보며 제대로 읽어도 좀 지나면 어차피 기억도 못했다. 여러 이유로 은행을 가도 당연히 찬밥 신세고. 


그래도 이건 좀 괜찮았는데, 대기업에서 미팅을 요청해서 갔는데 대기업 사원 대리급 애들이 갑을병정에서 정 정도의 취급을 하는 것도 처음 당해보는 일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을 회사 일들을 많이 했었지만, 덩치 큰 을은 때론 갑보다 힘이 세다. 그렇지만 창업한 이후엔 정 취급만으로도 감지덕지. 일단 오더를 따야 회사가 굴러가니까. 


창업 후 아주 초창기, 그러니까 대략 2~3달 정도 버틸 자금만 있는 상태에서 일이라는게 아예 전혀 하나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 그래도 루틴은 유지해야 제 정신을 가지고 버틸 것 같아 기존의 회사에 가던 길에 있던 카페로 출근했었다. 거기서 하루 종일 사업 계획만 뒤적거리고 있었지만 일에 집중하기가 너무 어려웠었다. 페북을 열심히 하던 시절도 아니고, 뭐 하나 정해진 것이 있어야 집중을 할텐데, 그것도 아니니. 하루 종일 공동 창업자 전화 빼고는 아무런 연락도 없던 때도 있었으니까. 


그 답답하던 3개월,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대략 1년 정도의 듣보잡 생활이 이후 어떤 상황에서도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었다. 특히 코로나 초기 계약되어 있던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취소되는 날벼락 상황에서도 '좀 지나면 괜찮을거다' 라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엔 사업하면서 초기부터 너무 큰 투자를 받거나 편하게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보다 오히려 초기 2~3년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시선을 훈련하는게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한다. 엔비디아 창업자도 극초기 창업 멤버가 모여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서 그저 셋이 모여 떠들기만 했다고 하니까.


사회에서도 낮아져보고, 스스로의 역량에 대해서 실망도 해보고,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다는 스트레스도 받아봐야 그 뒤에 따라오는 작은 성취를 감사해하게 되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성실히.

매거진의 이전글 조직원 동기부여에 대한 짧은 글 (I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