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신성장동력은 어떻게 기회를 추구해야 할까
1. A기업이 B고객들에게 C라는 아이템을 팔고 있다고 하자. 우선적으로 신규 매출원을 확보하는 가장 쉬운 아이디어는 B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아이템 중에서 C가 아닌 새로운 아이템도 판매하는 것이다. 우리 회사 냉장고를 쓰는 고객에게 그간 팔지 않았던 세탁기도 팔자로 생각할 수 있는 것. 고객이 같기 때문에 고객의 관심을 새 제품에 끌어내거나, 거래 후 만족도 같은 점 등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 위험성이 줄어든다. 운이 좋으면 B 고객들 이외의 새로운 고객도 우리 제품을 사게 할 수도 있다. 기존에 냉장고 고객만 우리 세탁기를 사는게 아니라, 우리 냉장고를 쓰지 않던 고객도 세탁기를 사고 만족할 경우 우리 냉장고를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2. 이렇게 기존 제품 판매와 연결을 시킬 고리가 분명히 존재해서 새로운 제품의 매출도 ‘저비용 또는 고효율’로 할 수 있게 되고, 기존 C도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보고 ‘시너지’라고 부른다. 신성장동력이라고 하면 가장 흔하게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다. (예전에 IBM에서는 이를 'Sell Our Stuff With Our Stuff' 이라고 불렀었다. SOS WOS)
3. 하지만 이미 엄청나게 고도화된 시장에서 이런 기회는 생각보다 잘 생기지 않는다. 대기업일수록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을 한 회사가 핵심 고객층에게 팔고 있고, 고객이나 회사 내의 핵심 밸류 체인을 공유하는 ‘신제품’ 수준의 신사업은 아주 일상적으로 기획, 판매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신제품을 아무리 잘 내놔도 기껏해야 아주 일부분 실적 개선에 도움을 주는 ‘incremental’ 성과만 보여주기 마련이다. 신제품 몇 개 출시한다고 회사 전체 매출이 20, 30%씩 뛰지도 않을 뿐더러, 이미 규모가 커진 기업의 경우 매출 20, 30%면 그 금액이 적어도 수천억, 수조원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경우엔 10%가 30조원이다. 삼전이 연간 10% 성장하고 싶다면 쿠팡이나 LS그룹 같은 회사를 매년 하나씩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존 제품과 시장이 겹치는 신제품 정도로 이런 매출을 만들 수 있을까? (애플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맥 관련 매출액 합계가 대략 40조원 가량이다. 삼전 규모가 되면 1.3년 정도마다 맥 같은 사업을 만들어야 연간 10% 정도 성장하는 것이다.)
4. 이 상황에서 대기업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방법 중 중요한 것은 ‘시너지’라는 용어에 대해 재정의하는 것이다.
5.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기존의 시각은 ‘기존 사업과 강한 연계성을 띄며, 저비용 또는 고효율을 가지고 신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사업을 신성장동력을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신성장동력 아이디어에 대해 가장 흔하게 나오는 의문인 ‘그 사업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사업이 맞나?’라는 의문이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미 시장 찾아볼만큼 찾아봤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결코 만만한 일이거나 단기간에 변화를 가져오기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이는 시너지를 기존 사업과 신사업 사이의 ‘연계성 또는 협업’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시각엔 상당히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
7. 우선 기존 제품이나 기존 사업이 부실한 경우 신사업을 추가해봐야 효율성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사업의 몰락을 더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기존 사업이 휘청거릴 때 연계성 높은 신제품은 매출 성장은 찔끔 늘어나는데 반해 비용은 왕창 소모하게 해서 기업 전체를 휘청이게 만들 수 있다. 신제품의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계성을 강조해봐야 기존 사업과 신사업의 동시 몰락 가능성이 훨씬 크다.
8. 두번째는 대기업들이 자주 하는 방식이지만 한 제품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카피해서 계속 연계되는 사업을 벌리는 것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는 시대 흐름이다. 엔터사가 한 아이돌 성공 사례가 나오면 그 성공을 카피해서 유사한 그룹을 계속 내놓고, 게임사가 MMO로 돈벌면 계속 MMO 내놓고, 가챠로 돈 벌면 계속 가챠에 중점을 둔 다른 게임 내놓는 방식이다. 기획이나 개발 비용이나 시간이 줄어들고, 운영 노하우도 높으니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이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만약 그 방식 전체에 대해 고객이 더 이상 가치를 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에 대한 비극적인 답이 된다. 가족 중심이라는 가치에 기반해서 원소스 멀티유즈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가 최근 몇 년 그 Governing principle 이 콘텐츠 각각의 매력을 무너뜨리게 되자 디즈니 전체가 휘청인다. 초대형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사실상 한국 유통 전체를 쥐고 흔들던 것이 불과 10여년전이지만, 이젠 하다못해 국회 국감에서도 쿠팡이나 배민이 도마위로 올라오지 롯데나 신세계, 현대 같은 회사들을 부르지 않는다. 시장 전체를 변혁시킬만한 새로운 솔루션이 등장하면 매우 강하게 연계되어 있는 기존 사업들 전체가 한꺼번에 위기에 빠지는 것이고, 그 사이에 등장시킨 신성장동력이라고 해봐야 그냥 기업 전체의 위기에 같이 떠밀려가는 것. 삼국지에서 연환계로 흔들리는 배들을 안정화시키려고 했던 전략이 화공 때문에 모두 한번에 불이 난 상황과 같은 것이다. 이럴 때 새로운 배 한척 옆에 붙인다고 상황이 바뀔 리가 없는 것이다.
9. 세번째는 ‘연계성 또는 협력’이 의미하는 바가 결국 기존의 사업 방식의 답습 및 기존 인력들의 재활용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신사업을 하면서 그 사업의 주요 인력을 기존 인력으로 구성하는 것 또는 M&A한 회사의 주요 보직을 기존 사람들을 보내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긴다. 승자의 권리라는 의식도 있지만, 이 새로운 사업체 경영진이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봐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성과의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수준이 아니라 많은 회사에서 완전히 ‘감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고, 기존 회사에서 인사 적체 등으로 기회를 받지 못한 인력들이 이동하는 곳으로 본다는 점이다. 처음에 꽤 괜찮은 신사업체였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올드보이들이 몰려오면 기대했던 시너지가 아니라 기존 기업의 문제점만 고스란히 반복하는, 골치덩어리만 하나 더 늘어나는 상황이 나타난다. 최근의 실적이 지지부진한 대기업들의 신사업체들을 잘 들여다보면 ‘저런 식으로 운영할거면 뭐하러 신사업이라고 했나 또는 뭐하러 외부 업체를 인수했나’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10. 결국 ‘연계성 또는 기존과 신규 사업의 협력’ 이라는 시각이 맞는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기존 사업의 정체성이 명확하거나 업력이 오래되어서 매우 경직적인 문화를 가진 곳일수록 신사업에 대해 ‘시너지’를 강조하는게 과연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려는 태도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필요하다.
11. 때문에 요즘처럼 시장과 기술, 경쟁사에 대해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는 ‘연계성과 협력’이 아니라 ‘외부 자원을 활용한 경쟁을 통한 기존 사업 혁신의 기회 창출’을 오히려 시너지로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기존 사업체가 신제품을 잘 내놓고 잘 성장하고 있다면 불필요하겠지만, 만약 지지부진하고 시장에서 혁신을 못하고, 경쟁사 대응도 못하고 있다면 최고경영진에서는 이들이 알아서 혁신하기를 기대하기보다 외부에서 이들과 경쟁 가능성이 있는 업체들에게 기회를 줘서 성장을 하도록 하고, 만약 성과가 나온다면 이들이 원래 모회사의 기존 사업부를 통폐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하지 않더라도 기존 사업부와 외부에서 성장한 신사업체가 서로 경쟁 구도에 들어가게 해서 혁신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의미를 가진 ‘규모의 경제’에 따른 시너지와는 매우 거리가 있지만 ‘경쟁을 통한 혁신의 유도’를 통해 기존 사업의 경쟁력과 신규 사업의 성장을 노려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12. 이미 업종에 상관없이 R&D 차원에서는 곧잘 시도되었던 방법이고, 콘텐츠 관련 영역에서는 산업 차원에서도 곧잘 사용되었던 방법이다. 대기업 내의 기존 사업체라고 하더라도 계급장 떼고 외부에 대주주가 투자한 사업체와 동일한 시장을 놓고 경쟁을 시키고, 그 중 성과가 좋은 곳에 더 큰 기회를 주고, 성과가 부실하거나 혁신하지 못하는 쪽을 다른 쪽의 통제에 넣는 것이다. (간단한 예시로 오픈AI와 MS의 인공지능 관련된 스토리를 찾아보면 이런 면이 많이 보인다.)
13. 대기업의 신성장동력이 잘 발굴되지 않는 것은 ‘시너지’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면서 성장 기회만 찾으려는 안이한 태도’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가진 것 많은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안락하게 사업해 왔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배부른 사자를 채찍질해봐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외부에서 하이에나 떼를 불러와서 사자는 사자로서의 공격성을 되찾고, 하이에나는 사자가 잡은 동물 사체를 나눠 먹을 수 있으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면 아예 사자를 잡을 수도 있다. 너무 과격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겠지만, 그래도 내가 불러온 경쟁에 의해 살을 빼는게 나은 것이고, 아니면 정말 나와 아무 상관없는 외부 업체가 나타나서 아예 기업 전체를 휘청이게 만들게 된다. 올해 유통업에서 알리나 테무가 지금의 점유율을 가져갈지 작년 초까지 예상했던 사람이 있나? 세상이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곳이라면 뻔한 노하우에 기반한 협력이 아니라 경쟁을 통한 성장도 훌륭한 시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