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신성장동력과 스타트업이 무슨 상관일까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최근 몇 년 대기업이 신성장동력 발굴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가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한 기술과 시장 tapping이다.
보통 오픈이노베이션이라고 부르지만, 단순히 이런 것만 있는게 아니라 매우 다양한 전략이 존재한다. 적극적인 스타트업 활용을 통한 성장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예시들은 예전 네트웍 장비 업체인 시스코가 했었던 스타트업 M&A를 통한 요소 기술 보완 전략, 애플이 보여줬던 신제품을 위한 기술 통합, 그리고 구글의 유튜브 인수나 페북의 인스타그램 인수, 아마존의 온라인 카테고리 킬러 인수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하게 이런 모습을 보인 사례는 현대차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건을 생각해볼 수 있을게다. 외국인들에게서 'That's how you increase the value of your company' 라는 표현을 들었을 정도의 선택이었으니까)
여기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착각하는 것 하나는 스타트업 인수를 기존의 사업부가 필요로 하는 아주 마이너한 요소 하나를 외부에서 도입하는, 일종의 하도급업체 하나 찾는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면 해결되는 것은 그냥 기존과 같은 납품 업체 하나 늘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럴거면 그냥 납품 업체 찾는다고 하면 되지 굳이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이유 따위는 없다.
개별 사업부가 스타트업을 찾게 하면 전략적인 관점이 배제되어 그냥 갑을의 거래 관계만 남게 된다.
내가 사파리에서 물소떼를 잡고 싶어 사자를 키웠다고 하자. 오픈 이노베이션의 목적은 사파리에서 배를 굶고 있지만 강력한 이빨과 전투력을 가진 하이에나떼를 찾아내서 이들이 현재 생태계의 정점에 있지만 게을러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키우는 사자를 위협하게 하는 것이다. 하이에나떼와 사자가 협력해서 물소떼를 사냥하면 딱 좋겠지만, 이렇게 이상적인 모양새가 사자의 게으름으로 쉽지 않다면 하이에나떼가 사자를 위협하게 해서 사자가 드디어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오픈 이노베이션의 목적이 될 수 있고, 그래도 사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아예 사자를 잡아먹게 하고 그 뒤에 하이에나떼가 물소떼를 공격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업이 성장을 추구하는 방식은 훨씬 다양하고, 훨씬 더 공격적일 수 있는데 우리나라 대기업의 방식은 너무 얌전한, 게으른 방식이다. 정부 규제가 많고 까탈스러운 소비자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많은 규제와 애국주의적인 소비자들 때문에 온실에서 자란 화초처럼 성장을 추구해온 것 같다. 그렇게 해도 20년, 30년 계속해서 1위 업체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오프라인 유통업의 몰락과 알리, 테무의 등장을 보면 게으른 사자같은 대기업의 사업부들이 스타트업들 불러서 공급사 취급하고, 스타트업들은 이렇게 손쉬운 매출에 길들여져서 야성을 잃어버리고 그냥 하청업체가 되는 식의 관행으로는 결코 버텨낼 수 없는 시대가 되어 간다는 점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게 비단 오프라인 유통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관점을 바꿔야 기회가 보인다. 내 사파리의 주역인 사자가 게을러진다면, 혹은 물소떼가 이동경로를 바꿔서 더 이상 내 사파리로 오지 않는다면 사자가 스스로의 가죽을 벗기고 새로운 동물로 태어나는 '혁신'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 만큼이나 저 먼 들판에서 살벌한 눈빛만 남은 채 굶고 있는 하이에나 떼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