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과 일머리의 관계, 그리고 핵심 요소
오늘은 지능과 일머리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머리 좋다는 말을 건넬 때가 언제일까요? 가장 흔한 상황은 그 사람이 무언가를 '기억'하는 능력이 좋을 때입니다. 오래되고 작고 사소한 것을 기억해내는 사람을 '머리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잘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말에 '기억력이 좋다'는 표현이 따로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기억력이 곧 지능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력이 좋다 = 머리가 좋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기억력이 좋은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긴 합니다. 많이 외워서 오랫동안 기억하는 사람은 각종 시험에 유리하니까요.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업무 처리를 잘 한다거나 문제 상황을 잘 개선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기억력이 좋다'는 '머리가 좋다'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는 조직에서 학벌 좋고 아는 것도 많은데 막상 실무 현장에서는 도무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기억력 = 지능'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성장해서 그 속에 매몰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펙 좋아하는 회사에 이런 직원이 참 많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지능을 대략, '지식과 정보를 기억하고 현재의 문제에 맞게 추상화한 후, 그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단한 예시를 한 번 들어볼까요?
초등학교때 우리는 곱셈을 배웠습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몇 학년 몇 반에서 배웠는지, 선생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대뜸 '7X8은?!'하고 구구단 문제를 내도 바로바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구요. 하지만 '400m² 넓이의 대강당에 의자를 어느 정도 간격으로 놓아야 90명이 들어올 수 있을까'라는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기억력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설명을 위해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예시입니다.)
지능의 핵심 = 추상화
그리고 앞서 정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능의 핵심요소는 과거의 기억이나 현재의 문제에 대한 '추상화'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추상화를 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예시를 바탕으로 근본 개념이나 원리를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습니다. 곱셈을 처음 배울 때, '사과가 3개씩 5묶음이 있으면 몇 개일까요?'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토대로 7개씩 3묶음일 때도, 사과가 아니라 도시락 가득한 김밥 갯수를 셀 때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원리가 결국은 곱셈이며 이를 바탕으로 보다 고차원적인 상황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구요.
한 마디로 지능이란 '현재의 문제'를 풀어내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며 그래서 우리가 학습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지식 자체가 없다면 문제 해결은 시도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AI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 원리와 동일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기억력이 좋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지능에 분명히 필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걸맞게 재조합하고 변경시킬 수 없다면 학습은 그저 정보의 축적과 자기 만족일 뿐일 것입니다.
즉 지능이 좋다는 것은 다음 요소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1) 과거의 정보를 현재에 맞게 재해석한다.
2) 눈 앞의 문제를 과거의 정보에 접목시킨다.
3) 과거와 현재의 문제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4) 현재의 문제를 해결한다.
추상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가끔 회사원들 중에서 여기저기 교육은 많이 다니고, 책도 읽고, 이런저런 강연도 많이 다니는데 막상 일은 엉망진창으로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지식의 축적 = 지능의 향상’ 이라고 착각하는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넓게보면 내가 스펙이 더 좋은데, 내가 더 좋은 대학교 나왔는데, 내가 아는게 더 많은데 승진이나 평가에서 경쟁자에 밀렸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물론 지식이 너무 부족하면 문제해결을 못합니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지식은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보통 경영학 기본, 산업과 회사에 대한 지식, 업무 진행 절차에 대한 세부 정보 등이 그런 것들이겠죠.
더불어 호기심도 중요합니다. 과거의 정보 재조합만으로 문제해결의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엔 새로운 정보들을 빠르게 배워야 합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호기심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나 기술과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상황이니 어떨 때는 과거에 대한 많은 지식보다 최근의 정보에 대한 호기심이 훨씬 더 나은 답을 제공할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부분은 뒤에 있습니다. 바로 현재의 문제를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 혹은 새로운 학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추상화’해내는 것이죠. 이게 제대로 안되는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흔한 해결 방식은 문제에 대해 단선적, 1차원적 해법을 만드는 겁니다.
가령 우리 회사 어플의 기능에 대해 고객 컴플레인이 심하게 들어온다고 생각해봅시다.
1차원적 해법만 떠올리는 사람은 '고객이 저렇게 욕을 하니 UI를 바꿔봅시다'라는 식의 대응만 할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컴플레인이 많으면 앱 구성을 바꿔보면 되고, 사무실에 짐이 많으면 치우면 됩니다. 기계가 잘 안 돌아가면 기술자를 부르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추상화가 가능한 사람은 다른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객 컴플레인이 사실은 기능 자체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는 것, 혹은 기능은 제대로지만 경쟁 서비스와 비교해 구조가 복잡해서일 수도아니면 해당 고객이 유명한 블랙컨슈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추상화는 그냥 이뤄지지 않습니다. 방향과 맥락을 파악해야 가능합니다. 고객 컴플레인이 많아도 우리 회사의 전체 비즈니스 방향상 이 어플이 앞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 UI 수정 대신에 고객을 다른 서비스로 유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현재 우리 앞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맥락에서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추상화가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문제해결에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이 활용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지요.
우리가 대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단순히 전공만 공부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대해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배우고, 특히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현재의 당면한 구체적인 사안을 추상화하기 위한 내적 역량을 키우는 과정인 것이죠.
결국 일머리가 좋다는 것은,
1) 기억을 잘 하고
2) 파편화되어 있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상황에 맞게 재조합하며
3) 현재의 구체적인 문제의 맥락을 파악하고
4) 그 맥락에 맞게 구체적 문제를 추상화한 후
5) 재조합된 지식을 이용해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는 것
6) 그리고 발견한 해법을 맥락에 맞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실행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문제해결이라는 측면에서의 지능은 수치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Big 5 Personality Test 상의 '개방성(Openness)'이라는 항목을 통해서인데요. 개방성은 '정보와 지식에 대한 감수성', '호기심', '추상화 능력'등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현재 제가 운영 중인 미매뉴얼에서 제공하고 있는 결과표 또한 이를 바탕으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기승전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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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매거진 <B>, 유유출판사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일의 기본기 : 일 잘하는 사람이 지키는 99가지'.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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