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el Dec 22. 2019

배달 및 외식 시장에 가져올 변화, 과연 우아할까?

우아한 형제들 매각 이슈에 대해 알아보자 (下)

3부작으로 쓸 생각은 전혀 없이 가볍게 시작한 글인데, (1편 읽기/ 2편 읽기)이런 저런 추가적인 이야기도 생기고, 원래 배민 딜을 들여다봤던 이유가 국내 외식 시장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 나름의 추측을 정리하는 걸로 글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이하의 글은 말 그대로 개인의 추측에 불과합니다. 얼마든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편하게 댓글로 의견 부탁드립니다:)



1. 내년 총선 전후에 결론이 날 이번 M&A


지난 한 주간 이번 딜에 관해서 정부 측 인사들의 발언도 있었습니다. 박영선 장관은 "배민측에서 'M&A 이후에도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배달료를 적게 지급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했다."라고 언급했으며, 공정거래위원장은 배달의 민족은 물론, 타다와 관련해서 "기술 발전만 혁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존에 시장에 존재하던 것들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혁신이다."라는 발언을 했죠. 


이런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예전에 이베이가 지마켓을 인수할 때처럼 일정 기간 동안 자영업자들에 대한 수수료나 라이더들에게 지급하는 배달 비용을 현 수준에서 변화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승인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이 딜에 관한 승인은 2020년 4월 15일, 즉 총선 투표일 이후에 나올 것 같습니다. 


공정위에서 OK 한다면 분명 자영업자들이나 외식 프랜차이즈, 라이더 연합체 등에서 강하게 반발할 여지가 큽니다. 가령 3년 정도 수수료를 동결시킨다고 해도 이들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펴겠지요. "예전에도 수수료 안 받는다고 해놓고는 자영업자들한테 광고비 사용 부추겨서는 결국 돈 벌어가지 않았나. 라이더 모집할 때도 배달료 퍼주다가 갑자기 줄였던 전적을 봤을 때 신뢰할 수가 없다."라고. 혹시라도 공정위의 검토를 빠져나갈 수 있는 꼼수가 있다면 그리 근거 없는 반발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승인이 안된다고 해도 우아한 형제들 창업자들이 돈 못 버는 것뿐이고, 오히려 OK 사인이 떨어지면 독점이다 뭐다 괜히 시끄러워지는데 이럴 바엔 그냥 안 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전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승인이 안되면 안 되는대로, 그 자체로 큰 파장이 있을 것 같습니다. 



2. 이번 딜이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


1) 스타트업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스타트업의 성공을 이끄는 것은 정부 투자금이 아니라 다른 창업자의 성공 케이스라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저 사람도 저렇게 성공했는데, 우리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인드셋이 가장 중요하고 이런 생각이 퍼져야 창업시장 활성화는 물론,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하나 둘 나온다는 것이지요. 


우아한 형제들의 이번 딜은 이런 성공신화에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3천만 원으로 보잘것없이 창업해도 10년이 채 안되어서 4조 7천억 원짜리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외부 투자를 받다 보니 지분이 13%까지 줄었지만 그래도 훌륭하게 엑시트를 했다."는 메시지를 스타트업 관계자들에게 던진다는 것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엑시트가 아니고, 사실관계도 다소 다릅니다. 1편 글을 참고해주세요.) 


2) 투자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


그리고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딜을 계기로 한국 스타트업의 가치를 새롭게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한국 주식 시장이나 기업 M&A 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했고, 중국 스타트업의 덩치에 가려져 해외시장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딜은 이런 인식을 불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 남북 분단으로 인한 군사적 대치 상황과 재벌 기업의 지배구조로 인한 이중화, 경기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산업의 높은 수출 의존도, 노동시장의 경직성, 회계의 불투명성 등의 이유로 인한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실제보다 한국의 주가 가치를 낮게 책정하는 것 (출처 : 위키백과)


우아한 형제들에 투자한 외국계 투자자들, 그러니까 골드만삭스, 힐하우스캐피탈, 세콰이어캐피탈차이나, 싱가포르투자청 등은 기존 보유 지식을 팔고 빠져나가기 때문에 이번 딜을 통해 큰 수익을 얻었습니다. 월등히 큰 중국 스타트업 시장에 밀려 상대적으로 유력 주자가 없었던 한국에서 돈을 번 것이고, 이번 딜을 계기로 유사한 기회를 계속 찾아다니겠죠. 우리나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으니 창업 시장, 넓게 본다면 기업 투자 시장에 아주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그리고 투자 업계에 던지는 이런 긍정적인 메시지들은 결국 승인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고, 공정위의 승인 여부는 배달앱 시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즉, 배달앱 시장을 배달앱 자체로만 볼 것이냐 아니면 외식업과 나아가 식료품 소매와 외식 전체를 포괄하는 시장으로 볼 것이냐는 것이지요. 배달앱으로 시장을 한정적으로 본다면 절대 OK 사인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넓게 본다면 승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유통업에 있었던 변화들


딜 이야기 실컷 하다가 갑자기 유통업 이야기를 왜 할까 의아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통업은 배달앱을 포함한 외식 시장과 연관성이 큰 업종이며, 이를 통해 향후 변화를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유통업을 다시 살펴보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유통업은 온라인으로 인한 변화가 가장 거셌던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온/오프라인간 경쟁과 갈등이 첨예했죠. 두 번째로, 유통업은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간 전쟁, 즉 제품 공급자와 소비자에 대한 판매자 간 협력과 경쟁이 극심했던 시장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장기간에 걸친 인구 구성 변동과 생활 형태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시장이라는 점입니다. 


이 세 가지가 배달앱 및 외식 시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차차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그동안 유통업에 있었던 변화를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죠.


1) 오프라인을 삼켜버린 온라인


유통업 전체로 보면 온라인이 이미 오프라인을 삼켜버린 지 오래입니다. 우리나라 오프라인 유통업의 대표로 여겨졌던 이마트도 이미 분기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프라인 업체는 살아남기 위해 1) 편의점같이 접근성이 고도로 높은 모델과 2) 창고형 매장처럼 벌크 판매를 통해 고객당 구매 단가를 극대로 높인 모델, 그리고 3) 최대치의 집객 효과를 노린 쇼핑몰형 매장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죠. 


유통업에서 온라인화가 진행된 것은 내가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지 않아도 상품에 대해 쉽게 파악할 수 있었던 제품군이 시작이었습니다. 전자제품이나 공산품이 주력이었죠. 아마존이 책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도 이와 동일한 맥락입니다. 이후 재질과 색을 직접 보고 내 몸에 걸쳐봐야 했던 패션이 급격하게 온라인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오프라인 최후의 방어선으로 여겨졌던 신선식품과 냉동, 냉장 식품들이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마켓과 옥션의 등장이 온라인 유통의 시작을 상징한다면 쿠팡은 공산품을 넘어 일반 생활용품 유통의 온라인화를, 무신사와 마켓컬리는 각각 패션과 신선식품의 온라인화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라인이 확대되고 나니 이제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업체에서 취급하든 상품과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의 품목군 차이는 사실상 없어져버렸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본 물건은 어떤 식으로든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구매에 시간 제약이 없다는 점과 가격 비교가 편리하다는 점, 그리고 심지어 문 앞까지 배송된다는 점에서 오프라인은 유통시장에서 온라인을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 


2) 제조와 유통 간의 헤게모니 다툼


대형 유통업체는 고객의 구매가 직접 일어나는 곳이라는 점, 그리고 고객을 직접 관리한다는 점에서 제조업체에 비해 훨씬 유리합니다. 한 마디로 고객에게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여러 업체의 제품을 동시에 판매하기 때문에 일정 판매 규모가 넘어서게 되면 자기 브랜드만 판매해야 하는 제조업체들보다 훨씬 강력한 협상력이 생깁니다. 여전히 제조업체들은 자기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지도와 충성도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고 싶어 하며, 가끔은 이런 시도가 유통사를 이기기도 합니다만 대두분의 제조업체에게 이런 이야기는 꿈같은 소리에 불과합니다. 


몇 년 전에 이마트에서 농심 제품이 사라졌던 적이 있습니다. 자초지종인즉슨, 이마트에서 행사를 위해 자기 마진을 깎아서 신라면의 가격을 인하시켜 고객들에게 판매한 적이 있는데 농심 측에서는 이를 브랜드 가치가 떨어뜨리는 행위로 보고 반대한 것이죠. 

신라면 품절 사태가 벌어지고 한동안 시끄럽다가 결국 이마트가 꼬리를 내린 사건이었습니다. 제조업체가 아직 유통업체에 힘을 발휘하던 시절의 에피소드이기도 하고, 신라면이라는 국민 브랜드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분야를 달리하면 애플이나 나이키같이 시장에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제조업체 브랜드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소매 시장 차원에서 보면 이미 유통사로 헤게모니가 넘어간 지 오래죠.


이런 점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제품군이 PB(Private brand. 제조사 브랜드가 아닌 유통사 브랜드 제품)입니다. 이마트의 PB인 노브랜드나 코스트코 PB인 커크랜드의 판매액을 보면 시장에서 누가 더 힘이 센지는 크게 고민할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코스트코 글로벌의 커크랜드 브랜드 매출액은 45조 원가량 됩니다. 커크랜드의 매출원가율을 알 수는 없지만, 대략 60%선이라고 잡으면 커크랜드 브랜드 제품을 제조한 업체들의 매출액은 기껏해야 27조 원 정도입니다. 만약 제조업체 브랜드의 매출이었다면 제조업체 매출액이 45조 원이고, 코스트코 매출액은 판매에 따른 수수료 정도이기 때문에 많아야  6~7조 원이었을 겁니다. PB로 파는 바람에 제조업체 매출액은 18조 원이 줄어든 것이고, 코스트코는 39조 원의 추가 매출을 잡을 수 있었던 거죠. 


이런 PB의 트렌드, 좀 더 넓게는 유통업체의 헤게모니가 계속되면 제조업체는 이제 완전히 유통사의 하청업체가 되어 버립니다. 브랜드 차별화에 성공한 몇 개의 소수 제조업체를 제외하면 그렇지 않아도 힘이 센 유통사가 완전히 슈퍼 甲이 되는 거죠.


3) 1인 가구에 맞춰 변화한 포장과 판매 방식


세 번째는 유통사들의 제품 포장이나 판매 방식은 갈수록 소규모 포장 & 배달에 적합한 방식으로 변경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1인 가구가 대세를 이루고, 소규모로 구매하는 방식이 늘어나면서 예전처럼 벌크로 구매하는 경우는 갈수록 줄어들었죠. 때문에 유통사들도 이에 맞춰 최대한 작게 포장(소분화)해서 판매하고 있고, 포장 방식도 가공도를 높여서 배달에 용이하게 바꿔 왔습니다. 


하나의 예시로 고기를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통사에서 고기를 구매한다면 어떤 부위 어떻게 썰어주세요 하는 식으로 구매를 했지만, 이젠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나눠져서 2~300그램 단위로 포장된 패키지들이 매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부 소형 매장들 (보통 SSM - Super Supermarket -이라고 하는 곳들, 이마트 에브리데이, GS 슈퍼 등이 대표적)은 이젠 아예 고기 손질을 담당하는 인원이 없이 그냥 포장 판매 제품만 있죠. 매장에서 더 이상 인력을 운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대규모의 고기 손질 및 포장 공장에서 한꺼번에 처리해서 비용을 낮추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고기 패키지에는 요리 형태에 따라 먹을 수 있는 부재료가 함께 포장되어 있거나, 소스 등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신선육 조차도 일종의 제조 상품처럼 판매되는 거죠. (라면 포장과 이런 형태의 신선육 포장은 본질적으로 똑같습니다. 공장에서의 제조인 거죠.) 이 형태가 더욱 발전해서 유명 맛집의 레시피대로 제조되어 포장된 고기 재료도 이미 시장에 넘쳐납니다. 드디어 재료를 넘어 요리를 제조하고 포장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온라인화, 제조업체의 하청업체화, 그리고 소분 & Ready to eat 제품화 논리는 연관된 시장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바로 외식 시장이죠.



4. 변화의 시작에 불과한 배달앱


배달앱이 혁신이건 아니건, 분명한 변화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예전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할 때는 어떤 식으로든 그 식당과 고객이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했습니다. 배달을 자주 시켜 먹다 보면 식당 사장님과 손님이 친분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고, 고객의 특성에 대해 잘 맞추는 사장님이 그렇지 못한 사장님보다 경쟁 우위에 설 수도 있었죠. 식당을 하나의 제조업체로 본다면 이 당시까지는 제조업체와 소비자 간의 직접 거래가 있었던 시기라는 겁니다.


하지만 배달앱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연계는 깨지게 됩니다. 그래도 나는 맨날 시키는데서만 시키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집에 직접 짬뽕을 주문하던 예전 방식은 이를테면 제조업체가 운영하는 브랜드샵에서 구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컨버스 매장에서 컨버스를 고르는 그런 거 말이죠. 그렇지만 배달앱을 통한 주문은 유통업체에서 여러 브랜드 제품 사이에서 하나를 고르는 셈이 됩니다. ABC마트(a.k.a '이 시국' 마트)에서 나이키 맥스랑 아디다스 슈퍼스타, 닥터마틴 비교하고 고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한동안은 먹던 데서 먹는다고 해도, 나중에는 다른 곳에서도 시켜보고 싶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배달앱 상단에 노출된 업체를 기웃거리게 되고 다른 사람들 리뷰도 보면서 여기저기를 비교합니다. 결국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게 여러 브랜드를 동시에 보여주는 유통업체의 힘이니까요. 이런 니즈나 효용 자체가 애초부터 없었다면 배달의 민족을 비롯한 배달앱이 단기간에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즉, 단골 식당이라도 매번 먹다 보면 새로운 것을 원하기 마련이고, 그 대안은 예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쉽게 찾을 수 있다 보니 제조업체의 고객 장악력은 떨어지고 유통사의 힘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배달앱의 장악력이 점점 확대되다 보니 이제는 배달만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들이 생겨납니다. 기존에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동네 단골들을 확보한 전통적 업체가 아니라면 임대료가 훨씬 저렴한 작은 공간에서 매장 없이 제조와 배달만 해도 큰 상관이 없는 것이죠. 물론 예전에도 이런 유형의 배달 전문 식당은 존재했습니다. 조리시설, 그리고 전화기 몇 대씩을 가져다 두고 주문 들어오는 음식은 다 만들어서 배달하는 것이지요. 짜장면도 팔고, 김치찌개도 팔고, 부침개도 팔았습니다. 판촉물에 적힌 식당 이름은 여러 개인데 전화는 한 명이 받는 이상한 모델이었죠. 하지만 이런 식당들은 배달 수요가 많은 특정 지역에 서면 작동했던 모델이었고, 무엇보다... 음식 맛이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여하튼 각설하고, 최근에 생겨난 배달 전문 매장들은 고객을 직접 상대할 일 자체가 없기 때문에 '접객'이라는 중요 업무를 삭제하고 조리 자체에만 집중하는 모델입니다. 일종의 전문화가 이뤄진 셈이죠. 이런 업체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시설 투자까지 받으면 말 그대로 '요리 공장'이 됩니다. 자체 브랜드 없이 유통업체 고객만을 상대로 수익을 올리는 제조업체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몇몇 눈에 띄는 업체들에 배달앱이 주목하면, 예를 들어 '배달의 민족이 선택한', '요기요가 강추하는' 등의 수식어가 업체 앞에 붙게 되면 그 자체로 하나의 PB가 됩니다. 기존 프랜차이즈가 본점의 레시피, 성공 요인을 거울삼아 확장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 배달앱 PB 식당은 분명 하나의 프랜차이즈이지만 유통업체가 관리하는 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딜로 배달의 민족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도 좀 생겨난 걸로 보입니다만,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에게 ‘배민이 선택한’이라는 건 신뢰의 증표가 될 수 있습니다. 즉, ‘브랜드’가 되는 것이고, 여기에는 앞서 살펴본 유통사 PB와 하청업체 관계와 동일한 논리가 적용되게 됩니다. 이는 배달앱 입장에서 기존 식당들을 대상으로 한 수수료를 인상할 수 없고, 광고료도 더 이상 높이기 힘든 상태 (왜냐면 이번 배민 딜이 만약 승인된다면 분명 이 조건을 공정위가 붙일 테니까요.)에서 마진을 높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방법일 겁니다.


이런 방식이 더욱 발달하면, 이제 조리시설도 고객 근처에 놓아둘 필요가 없어집니다. 대형 조리 시설을 갖춘 Central Kitchen에서 반조리 상태로 만들어 각 지역별 배달 조리 거점에서는 데우기만 해서 고객에게 보내면 되니까요. 식당을 운영하시는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다른 식당은 물론 프랜차이즈 업체와도 경쟁했었는데, 이젠 공장 하고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겁니다. 음식 맛만으로 승부를 낼 수 있는 식당, 가령 포방터 돈가스집 같은 곳이 아닌 이상 이러한 추세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치 신라면이나 나이키는 유통사와 싸울 수 있지만, 대부분의 제조업체가 유통사에게 휘둘리는 것처럼 말이죠.



5. 앞으로의 전망


앞서 살펴본 변화와 관련해서 우아한 형제들과 DH 간 딜이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이겁니다. 배달 중개, 넓게는 외식을 배달화하는 시장의 매력도가 굉장히 높다는 점. 그리고 만약 이 시장이 정말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군침을 흘릴 업체들이 국내에 몇 개가 더 있죠.


1번 후보 : 쿠팡


이미 배달앱 시장에 뛰어들어서 베타 버전 테스트를 하고 있고,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엄청난 디스카운트로 고객을 싹쓸이했던 경험이 있는 업체가 있습니다. 바로 쿠팡입니다. 쿠팡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기저귀를 팔아서 큰 회사입니다. 쿠팡의 기저귀 판매 케이스는 이 회사가 얼마나 미친 짓을 할 수 있고, 그 미친 짓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불과 1~2년 사이에 시장 점유율이 5%도 안 되는 회사가 시장점유율 35%로 성장하는 괴력을 보여줬죠. 말도 안 되는 할인과 로켓배송의 합작품입니다.


우아한 형제들이 쿠팡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심정적 우위가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민족, 국내 업체인 배달의 민족 vs. 일본 자본을 업은 쿠팡이라는 구도인데요, 팩트만 따져보면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는 대결구도지만 분명 소비자 인식에는 영향이 있었죠. 하지만 이번 딜로 인해서 이런 구도는 깨져버렸습니다. 


배달앱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혜택 수준에 따라 이 앱, 저 앱을 이동하는 행태를 취해왔습니다. 게다가 쿠팡은 물류에 대해서는 도가 튼 회사입니다. 물론 배달망과는 차이가 있지만 전국단위 물류망을 갖고 있는 데다 로켓배송이라는 택배망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즉, 이번 딜로 인해 소비자는 배민과 쿠팡 모두 외국계로 동일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배달의 민족은 이제 독점을 시도하는 업체라는 프레임까지 생겨나고 있죠. 여기에 쿠팡이 '소비자 편익을 해치고 시장을 어지럽히는 독점을 막겠다'는 식으로 출사표를 던지고, 할인 쿠폰을 뿌리며 음식을 칼같이 배송한다면 그동안 배달의 민족이 독주했던 배달앱 시장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쿠팡은 지금 돈이 없습니다. 매년 1조 원이 넘는 적자를 보고 있다는 거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그간 비빌 언덕이었던 비전 펀드가 최근 위워크를 비롯한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이 배달앱 시장은 흔들어볼 실탄이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볼 여지도 있습니다. 배달앱 시장 1위인 배민의 매출은 3천억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는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필요한 실탄이 조 단위까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쿠팡 앱을 통해 주문하는 고객 천만명에게 만 원짜리 쿠폰을 뿌려도 결국 1천억에 불과합니다. 1천억 도 엄청난 금액이기는 하지만, 유통 시장에 1조 원씩 투입하는 쿠팡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작은 돈이기도 합니다. 당장 오늘 저녁에 치킨을 시킨다고 생각해봅시다. 만원 할인이 되는 쿠팡을 쓰실 건가요? 그냥 배민이나 요기요를 쓰실 건가요? 


게다가 쿠팡은 요리 배달에 대한 전문성이 없을지 몰라도, 공장에서 제조된 식품 판매에는 배민보다 월등한 규모를 자랑하는 업체죠. 물론 배민도 최근에 신선이나 조리식품 판매를 시작했습니다만, 시장의 파괴력면에서 쿠팡이 압도적 우위죠. 불과 몇 천억 정도 쏟아부으면 10%가 넘는 영업이익이 나오는 것이 분명한 배달앱 시장을 쿠팡이 펀딩 소스가 없다고 그냥 가볍게 테스트만 할지 상당히 의문입니다.


2번 후보 : 카카오 


두 번째 플레이어는 카카오입니다.

 

돈 많습니다. 그리고 O2O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죠. 특히 해외 시장 진출이 대부분 별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에서 어떻게든 영업을 넓히려고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카카오 택시 같은 모빌리티 시장을 계속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겠지요. 과연 카카오가 배달앱 시장은 우리와 상관없다, 혹은 경쟁이 심하니 그냥 발만 살짝 담가보자 같은 태도를 유지할까요? 기존의 카카오톡 사용자를 적당히 활용하고 배달/식당 네트워크만 좀 갖춰지면 덤벼볼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물론 카카오는 쿠팡처럼 화끈하게 지르는 스타일의 회사는 아닙니다. 굉장히 많은 사업에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어느 하나 정말 대규모로 사운을 걸고 덤벼드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배달앱에서도 적당히 변죽만 울리다 끝날지 아니면 정말 승부를 한번 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카카오가 갈수록 커머스와 O2O 적인 성격을 강화 해내가고 있는 점을 보면 배민의 절대적 지위가 인수 합병 때문에 오히려 흔들릴 지금의 상황을 그저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기타 후보들


그 외에 위메프나 네이버, 그리고 기존의 오프라인 대형 유통업체 등도 호시탐탐 할 것 같습니다. 위메프는 쿠팡과 동일한 논리이지만 보유 자본이나 시장 장악력이 떨어져서 과연 큰 힘을 발휘할지는 의문이고, 네이버도 커머스 쪽에 꾸준히 하고는 있지만 네이버의 성향을 생각해볼 때 카카오만큼 적극적 일지는 상당히 의문입니다. 


의외의 복병은 국내 유통, 식품 대기업들인데요, 기존에는 중소기업들이 더 작은 식당 자영업자들과 일하는 곳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대기업이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영역처럼 인식되었지만, 배달과 외식이 갈수록 유통-제조업의 관계처럼 되어가고, 특히 외국 자본이 배달앱 시장의 99%를 장악했다는 명분을 이용해서 진출하려고 노려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특히 오프라인의 대형마트는 점포 효율이 갈수록 떨어지는데, 그렇다고 그 비싼 마트 건물을 부가가치 떨어지는 물류창고로 쓸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배달앱과 연계된 도심형 요리 제조 공장으로 쓰는 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할 겁니다. 이건 특히 요식업에 관심 있는 젊은 청년 창업자들에게 조리시설을 마음 놓고 사용하게 해 줘서 청년 창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팔 수 있으니 일석이조처럼 써먹을 수도 있겠죠. (물론 이건 굉장히 러프한 추정이고, 대체로 마트는 반경 5km 이상의 큰 범위를 커버하는데 배달은 주로 1~2km의 좁은 영역에서 이뤄지니 이게 가능할지는 많은 검토가 필요하겠죠. 가능하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식당을 하고 계시거나, 라이더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너무 함부로 재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번 배달의 민족 딜은 오히려 장작에 기름을 부은 효과가 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너무 높은 한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많은 경우 시장 고착적 효과보다 오히려 경쟁을 불태우는 성향이 있거든요. 그리고 이런 점은 배달, 넓게 보면 외식과 식자재  B2C 시장의 변화와 함께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 같습니다.


배달 그릇을 둘러싼 전쟁은 이제 시작 같습니다.


1. 슬기로운 직장생활 페이스북에서 더욱 다양하고 현실적인 커리어 이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facebook.com/suljikcareer/

2. 미매뉴얼 테스트를 통해 나의 성격분석과 이에 기반해서 이직, 창업, 상사와의 갈등 등 커리어의 중요한 순간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습니다.
▶ http://www.memanual.co.kr                                     
매거진의 이전글 경영진의 성격이 기업 성장에 미치는 영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