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와 성격
몇 년 전에 중소기업의 기업문화 진단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해온 업체였죠. 매출액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몇 배가 커졌고, 인력도 그만큼 빠르게 늘어난 회사였죠. 우리는 흔히 이렇게 고속 성장하는 회사의 문화는 아주 이상적인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최소한 그 기업체는 이상적인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 그 회사는 어떻게 성장했느냐구요?
제가 제 글에 가끔 적는 내용이지만, 사람들의 생각 혹은 기대와 다르게 기업체의 성장은 좋은 문화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물론 좋은 문화로 성장한 기업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문화가 실적과 연동되는 기업은 특정 산업이나 특정 카테고리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니라면 대표가 정말 강력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경우던지요.
제가 방문했던 그 기업의 성장은 대표 개인의 개인기와 강력한 실행력을 갖춘 영업 담당 임원들과 팀장들의 힘이었습니다. 회사 초기 영업을 진행했던 이야기를 들으면 거의 무협지 수준이었으니까요.
아무튼 그 회사의 표면적 문제는 매출 성장률이 급격히 꺾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조직에 새롭게 들어온 신입 또는 저연차 경력직 직원들의 퇴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뽑는데도 입사하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기업 문화를 진단할 때 통상적인 접근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해석은 까탈스럽지만 빠르고 정확도가 높은 성격 분석 도구들을 활용하는 편입니다.
진단 결과, 우선 경영진은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전이 있고 명석하고 정확하며,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사람들. 잠깐 미팅할 때 인상도 그랬고, 검사 결과도 아니나 다를까 그렇더라구요. 냉정하고 목표지향적이며, 자기 주장이 아주 강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잦은 퇴사가 번지던 주니어들의 경우, 몽상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과 현실적이지만 일에 대한 의욕이 없는 사람들이 반반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집단 모두 자기 의견을 내세우며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일하기보다는 수동적인 성향이 아주 강했습니다. 협조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잘 맞춰주지만 시키는 일만 하는 그런 모습이었죠. 원래 이런 사람들을 회사에서 뽑은 것인지, 아니면 보수적인 기업문화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 생각에는 아마도 전자 같았습니다. 사람의 성향이란게 그렇게 단기간에 바뀌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요. '차분하면서 불평불만 제기하지 않는 사람', '시키는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뽑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간관리자급들을 살펴봤습니다.
앞선 제 글들에서 몇 번 꼰대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마치 그런 표본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 사람들이 70%는 되더군요.
나서고 자기주장 강하고 술자리 좋아하고 활발하지만, 생각이 짧고, 유연성도 떨어지고, 감수성 낮고, 사람이나 상황을 이용해먹을 생각이 많은, 성취욕구는 강한 사람들. 험하게 말하자면 말많고, 남에게 별 관심 없고, 욕심은 많은 사람들이 그 회사의 중간 간부들의 표상이었습니다. 아마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겠죠. 퇴사율이 높은게 당연합니다.
중간 관리자들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메세지는 바로 '어차피 시키는 것 밖에 안하는 애들인데 좀 나가면 어때서. 또 뽑으면 되지'였습니다. 즉, 부하 직원은 위에서 결정한 것을 그냥 실행만 하는 사람이지 그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직원은 단순 실행자이고 도구 이상의 가치가 없다는 인식 → 시키는 일만 잘할 것 같은 사람을 채용함 → 보수적인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직원들이 퇴사함 → 직원들을 성장시키거나 권한 위임 따위 하지 않음. (어차피 나갈 사람들이고 또 뽑으면 그만이니까.) → 다시 채용함 → 또 퇴사함 → ...
이 회사의 경영진에 대해 언급할 때, 분명히 똑똑하고 정확한 사람들이었다고 이야기 드렸습니다. 그럼 그렇게 굉장한 사람들이 왜 답도 없는 꼰대들을 중간 관리자로 앉혔을까요?
여기서부터는 경영진의 철학, 근본적으로는 경영진의 성격이 작용한 부분 같습니다.
다시 경영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그들은 똑똑하고 정확하며 직원에게도 나름 신경쓰는 성향이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우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목표 지향성이 강한, 무엇보다 단기 실적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부하가 실적만 잘 나온다면 승진시키는 식이었습니다. 조직관리를 못해서 팀원들이 다 퇴사하는 부서의 책임자라도 말이죠. 젊은 직원들이야 나가더라도 당사자는 경영진이 시키는 일 열심히 하면서 성과를 만들어왔으니까요.
이런 사실을 경영진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단기 실적을 추구하다보니 직원들을 관리하고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팀을 군대식으로 운영하는 중간 관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하지만 오랫동안 이런 방식으로 성장해왔고, 군대식 관리자들을 단기간에 대체한다면 회사 실적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서 그냥 묵인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 부장들 대부분은 생각이 단순한 사람들이라 임원이 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도 되는 회사에서 부장 달았으면 나가서도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은 갖게 되겠지요. 그들은 어떻게든 실적을 만드는거고 저희는 승진으로 보상해온 셈입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회사 관계자가 꺼낸 이야기인데, 결국 경영진이나 중간 관리자 모두 사람을 도구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경영진이 더 큰 꿈이 있고 또 빅픽쳐를 그릴 수 있었다면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큰 틀에서의 방향성만 언급하겠습니다. 하나하나 파고 들어가면 컨설팅 리포트가 될테니까요.)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장기적인 비전과 그에 맞는 문화를 정의한다.
그 문화의 모델이 될 수 있고, 조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중간 관리자로 승진시킨다.
새로운 중간 관리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원, 적극성과 협업 능력을 함께 갖춘 직원을 채용한다.
하지만 그 경영진은 그 정도 그릇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자기들도 비전은 있었고, 자기들이 운영하는 회사가 멋진 회사이기를 바랬지만 그 비전은 단기 실적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던거죠. 그 회사가 매출 하락을 겪기 시작한 것도 그 정도 매출 규모가 경영진이 담을 수 있는 최대 크기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기업에 자산이 많고 기술 수준이 엄청나도 결국 경영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기업의 크기는 경영진이 가진 그릇의 크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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