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10
3년 전 상하이로 무작정 나를 따라온 아이들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24년 동안 중국어를 배우고, 말하면서 느낀 노하우를 이제 막 상하이로 온 아이들에게 전수를 해 줄 때가 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이 중국어를 어떻게 배우고, 내가 어떻게 보조를 했었는지,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방법을 이야기할까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방법은 지극히 내 개인의 경험에 따라 생각한 방법이라,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이 된다고 확신하지는 못함을 미리 밝힌다.
-내용 중에 나오는 교재의 이름은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나 어찌 되었건 광고의 목적은 전혀 없음을 사전에 알리는 바이다.-
1994년 부산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국내선을 타고, 김포공항 국내선에서 다시 상하이로 가는 국제선으로 갈아 탄 후 어렵게 중국 상하이에 도착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북경이었으니 말이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몰랐던 나는 영문 이름이 길어서 중간이 잘려나가는 바람에 미리 예약을 하고 갔던 북경행 항공권을 발급받을 수가 없었다. 아가씨를 말하는 샤오제(小姐)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했던 나는 중국 무협영화에서 들었던 꾸냥(姑娘)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상하이 공항 항공권 매표소의 직원을 애타게 불렀다. 20 대 초반의 청년이 40대가 넘은 여자에게 대놓고 꾸냥이라고 부르니 아예 상종을 하지 않으려 해서 꽤나 애를 먹고 어렵게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벌써 2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 버렸다. 23세의 젊은 청년이 이미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아이들의 성장기를 쓰고 있으니 정말 시간은 쏜 화살처럼 빨리도 지나가 버렸다. 아직 나의 마음은 그 시절 꾸냥을 외쳐대던 항공사 직원과 언쟁을 하던 한창때의 청춘인데 말이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중국에서 보냈으니 어디 가서 중국어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나에게 중국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어를 배우고 말하는 데에 너무 힘이 들고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중국어가 가진 몇 가지 특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어사전에 해당하는 신화 자전에는 만천 개가 넘는 한자가 수록되어있다. 물론 중국 사람들이 이 단어를 다 쓰는 것은 아니다. 기본 상용 글자는 7천 개 정도라고 하지만 2천 자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한 연구보도에 따르면 천 개의 상용한자로는 중국에서 나오는 92%의 문서자료를 읽을 수 있고, 2천 자를 알면 98% 이상을, 3천 자를 알고 있다면 99%의 문서를 읽을 수 있고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어는 노교수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문헌이나, 고전에 쓰인 모든 한자들을 모아놓은 츠하이(辭海:사해, 글자의 바다)라는 사전에는 10만 개의 한자가 수록되어 있는데, 자신은 평생을 공부하여도 그 절반인 5만 개의 글자만 알고 있다고 했다. 고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조차 2만 개 이하의 글자를 알고 있으니, 일반 사람들은 3천 자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했다.
고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황제내경이나 본초강목 등의 원서를 읽으면 20년을 보냈던 나 역시 지금도 중국 사극을 보면서 간혹 사전을 뒤적거리게 된다.
그런데, 중국어는 글자의 수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방 사투리가 거의 외국어 수준으로 천차만별이다. 중국 표준어를 뜻하는 푸퉁화와 광동지역의 유에위(우리가 흔히 말하는 홍콩 말이다.)는 백 퍼센트 다르다. 발음부터 글자의 구성까지, 한자를 쓴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냥 서로 다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투리가 중국에서는 수 십 개가 넘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만 나눠도 7개로 나누어 7대 방언이라고도 한다.
마지막으로 사자성어와 고시의 사용은, 크지는 않지만 세련된 중국어를 하는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중국사람들은 초등학교부터 고전에 언급되어 있는 사자성어와 유명 시인들의 한시를 필수적으로 외워야 한다. 그렇다 보니, 대화를 하는 중에도 사자성어와 고전에 언급된 인물이나 한시 등을 사용하게 되는데, 중국어를 웬만큼 한다는 사람들 조차도, 고사를 이용하여 비유하는 대화에는 쉽게 끼어들지를 못하고 자신이 그동안 배워왔던 중국어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특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제법 책을 읽었거나, 아니면 유식한 척을 하기 위해서라도 사자성어나 고사를 많이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은 상용한자처럼, 상용 사자성어가 있고, 상용 한시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의 매일 만나던 사람을 하루라도 못 본 뒤 다시 만나면 하는 말이 있다.
一日不见如隔三秋(일일불견, 여격삼추:이르부찌엔,루거싼치우)
하루를 못 봤지만 마치 많은 시간이 흐른 듯하다.
여기서, 三秋(삼추)라는 말은 세 개의 계절, 1 추가 3개월 정도를 이야기하니, 삼추라고 하면 9개월 정도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매일 보고 싶은 연인들 사이에도 흔히 쓰이는 말이다.
24개의 자음과 모음만 배우면 모든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한국어의 습관으로 중국어를 배우려고 하다가는 20년이 넘게 있어도 좌절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중국어를 다 읽고 쓰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건 중국사람들 조차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게 배우려고 마음먹는다면, 한마디로 중국어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어를 너무 잘하려고 하면 매번 넘지 못할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냥 대충 중국사람들이 하는 것만큼만 하면 된다. 중국 사람들 조차 그렇게 하고 있다.
한자는 천 개만 알아도 되고, 사투리는 몰라도 된다. 고사성어는 들릴 때마다 하나씩 외우면 되는 것이다.
사실 중국어를 잘하는 데에 한자의 수와, 사투리, 고사성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어를 배우는 데에 걸림돌 3가지 모두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 중국어는 그리 어려운 언어가 아니라는 말도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2천 글자 이상 알아야 하는 중국어 실력 평가의 HSK5급 이상을 받은 사람도 유창한 대화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배우는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어를 배우는 단계에는 듣는 단계, 이해하는 단계, 외우는 단계, 말하는 단계로 나눌 수가 있다.
1. 듣는 게 먼저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맹목적으로 반복해서 듣는다.
2. 리듬을 익혀야 한다.
어느 언어든지 리듬이 중요하지만, 네 개의 성조가 있는 중국어는 리듬이 아주 중요하다. 역시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그냥 리듬에 따라 흥얼거릴 수만 있어도 된다.
3. 따라 한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리듬을 익힌 뒤 들려오는 말을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듣는 단계이며 워밍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공부를 한다고 마음먹고 하는 단계라기보다는 일상 생활중 틈이 나는 대로 듣기만 하는 과정이라 공부를 하는데에 따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과정이 향후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데에 아주 중요한 요건이 된다. 세련되고 고급 중국어를 하고 싶다면 무조건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
이제부터는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해야 한다. 그동안 자기가 듣고 흥얼거리며 따라 할 수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해야 하는 단계이다. 문장이 있다면 그냥 문장 전체만 이해하면 된다. 단어를 따로따로 외울 필요는 없다.
1. 단어를 외운다
이제부터 공부 같은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듣고 이해한 문장 중에 있는 단어를 따로따로 뜻을 알고 외워야 한다.
2. 외운 단어를 응용해본다.
흥얼거리고 이해를 하고 있는 문장에 단어들을 바꿔가며 응용을 해서 흥얼거려 본다.
3. 중국 드라마를 본다.
중국 드라마를 한글 자막이 아닌 중국어 자막으로 보는 단계이다. 사극은 현대 중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현대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극 드라마는 좋은 교재이고, 중국 사람들과의 대화의 소재로 쓰기에 아주 좋다.
말하는 단계
1. 중국 친구를 사귀고 중국어로 말을 한다.
중국어를 배우고 나서 이야기를 할 때는 가능하면 중국인이나 아니면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자주 사용하는 문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대화도 되지 않고, 공부도 되지 않고 피로감만 쌓여 간다. 중국인이나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내가 말을 잘 못해도 대충 알아듣고 정확한 표현법으로 다시 고쳐 주기 때문이다.
2. 관심 있는 중국 잡지를 본다.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난감해하는 것이 이제 막 외국어를 배운 뒤 책을 읽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보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무슨 말인지 이해도 되지 않지만 무시하고 계속 보다 보면 글자들이 눈에 익고, 대화체가 아닌 문어체에 익숙해지게 된다.
잡지를 선택하는 이유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대화의 소재가 생길 수 있다는 걷고, 중국어를 이용해 실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딱딱한 신문보다는 패션 잡지, 영화잡지, 여행 잡지 등이 적당하다.
여기까지의 단계를 거쳤다면,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이 있다.
서점에 가서 고급 중국어 회화책을 뒤적여 보는 것이다.
한 권의 책에서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되는 가를 직접 확인해 보고, 그것이 책 내용의 절반 이하가 된다면, 과감히 그 책을 구입하여 회화 책을 읽으며 모르는 것만 익히면 된다.
그 후에는 다시 서점에 가서 어려운 회화책을 뒤적여 보고, 내가 모르는 것이 30퍼센트 이하라면 책을 구입하기보다는 선채로 한 번 읽어 보면 된다.
큰 아들 벼리와 작은 아들 누리는 내가 봐도 그렇고, 주위의 중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중국어를 잘하는 편이다. 중국어를 듣고, 외우는 과정을 2년 정도 했다고 본다면 책을 읽고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하는데에 별 문제가 없어서 꽤 잘하는 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벼리는 유치원 1년 정도와 초등학교 1년 정도를 중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기초가 있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리는 한자 조차 쓰는 게 아니라 그려야 할 정도로 완전 초보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중국어를 제대로 배운 지 2년 만에 중국 근대문학 책을 읽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는 것은 중국어를 공부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2년 만에 우리 아이들처럼 중국어를 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 각각의 단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