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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규 Dec 26. 2023

귀국.

한국으로

2019년 8월.

마치 미래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무런 대책도, 생각도 없이 그렇게 코로나가 창궐하기 4개월 전에 보따리를 싸고 상하이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코로나를 예견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은행 잔고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그것은 더이상 이곳에서 버티기가 힘들어질 것을 말하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한국행을 선택하고 짐을 싸야했다.

25년 세월의 흔적을 싸매고 올 이삿짐은 30박스 넘는 책과 자전거 2대.

아이들의 교육과 견문을 넓혀주자는 것이 그간의 목표인것을 생각해보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버텨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간동안 심신이 지쳐버린  모습이 남았지만 가족들에게는  선물을 받은 시간들이었다.


한 2년은 중국어 강사를 하거나 이런저런 일을 하며 한국에서 푹 쉬려고 했던, 피 터지는 한국 실정을 눈곱만큼도 모르는 그런 순진한 생각만 가진채 호주에 있던 큰 아들, 상하이에 있던 작은 아들과 내가 돌아왔다. 한국의 작은 맨션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내에게로.


중국에서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본 HSK 시험을 마지막으로 15년이 넘게 내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 좌표가 없었고, 한국에서 중국어 강사를 하려면 남들이 내 실력을 평가하고 등수를 매겨준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파고다 어학원에 강사 지원서와 이력서를 처음 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제출한 11급 HSK성적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은 급수였고, 이제 새로운 제도의 급수를 새롭게 받아야 했다.


내 실력은 내가 제일 잘 알터인데 굳이 돈을 써가며 남들에게 내세울 것을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객관적인 평가 수치로 실력을 가늠할 필요성이 있는 그들로서는 어쩔수 없는 조치였고 내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사실 나 스스로도 궁금하기도 했기에 거금을 들여 인터넷 신청을 했다.

시험을 신청하고 시험 당일까지, 늘 그렇듯 책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 딴짓거리만 했다.

함께 시험을 보기로 한 막내 아들의 상태 역시 마찬가지. 뭘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표정으로 임시로 다니고 있던 대안학교의 생활을 즐기고만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나마 공부라고 중국 드라마 시리즈 하나를 정주행 하고는 시험장에 들어서기는 했었지만. 그 시험이 만만하게 볼 시험이 아니라는 걸 아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겨우 턱걸이로 6급에 합격하고 지원서에 포함 할 준비가 되었다.

이제 조건을 구비했으니 학원강사가 되기 위해 이력서를 다시 써야 했다.  집 앞 스타벅스에 앉아 지나간 이력을 생각하니 몇 페이지를 써도 끝나지 않을 잡다한 이력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어떤 경력이 합격에 도움이 될까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어느 아침이었다.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얀 노트북 컴퓨터를 펼치고 있으니 상하이의 아침이 떠 올랐다.

막내를 학교에 보내고 자전거에 올라 우캉맨션이라는 노르망디아파트 앞으로 가면 시애틀의 스타벅스를 본떠 만들었다는 작은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이 있었고, 그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는 짙은 초록색으로 칠해진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서면 익숙한 얼굴들이 익숙한듯 커피를 내어 주는 반복된 나날의 아침이었다.

상하이 우캉루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문을 여는 7시에 그곳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북적이는 인파로 조용히 앉아 하루를 시작하기는 힘이 들었고, 그럴때면 나는 바로 옆에 있는 DAGA라는 - 중국 친구가 운영하는 - 카페로 향했다.

어느 책의 제목이었던가, 나에게 연락해서 연락을 받지 않는다면, 나는 커피점에 있거나, 아니면 커피점에 가는 길입니다. 라던 글귀처럼 이른 아침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과 펼쳐진 노트북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당연히, 작은 카페라도 하나 운영해 보고 싶다는 꿈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슴에 담아 오고 있었기에 상하이의 그 수많은 카페를 돌아다니며 이쁜 인테리어라든가, 종업원의 서비스 방법, 사장의 운영마인드등을 틈틈히 기록해 왔다. 마음이 심란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면 내가 하고 싶은 카페의 청사진을 그려가며 운영방안을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

상하이에서 꼭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하고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또 다시 스타벅스에 앉아 멍하니 눈만 껌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눈앞에 못 보던 작은 카페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아니, 나타 난것은 아니고,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었지만, 내눈에 그동안 들어오지 않던 곳이 정말로 갑작스레이 나타난것이다.


이곳에 이런 카페가 있었나?

커다란 유리창에는 하얀색 레이스가 달린 커튼이 봉긋한 복숭아처럼 유려한 호를 만들어 묶여 있었고, 유럽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플한, 상하이에서 쉽게 봐왔던, 일본식 유럽 스타일, 또는 대만식 유럽 스타일의 작은 카페가 검은색 필기체 간판을 걸어두고 가만히 자리 잡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냥 가만히 자리만 잡고 있었다. 희미한 미등은 켜져 있는 것 같았지만 사람의 기척은 보이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유리문을 열고 나와 가슴팍의 작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어 입에 물고는 슬렁슬렁 걸어가 보았다.


-카페 양도- 연락처 xxx-xxx-xxxx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얼마 전 처형이 작은 카페나 하나 차려볼까? 라며 나에게 좋은 곳이 없는지 물어본 게 기억이 났다. 이제 한국 들어온 지 겨우 두어 달 된 사람에게 물어볼 걸 물어보라며 흘려버렸지만, 이 정도면 처형이 운영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이라는 시간도 잊어버린 채 전화기를 들고 처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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