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시간, 빠른 시간
조그마한 테라스에 앉아 새소리를 듣는다.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나무 가지들도 그에 따라 천천히 흔들린다.
아보카도 씨가 싹을 틔워 뻗어낸 잎사귀들 사이로 이름 모를 벌레가 느리게 기어가고 있다.
이곳은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간다.
아침 시장을 다녀오는 옆집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느리고,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느지막이 문을 여는 카페들도 느긋하다.
그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것들을 바라보다 똑딱거리는 시계를 보면 어느새 훌쩍 시간이 지나버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느린 이곳에서 빠른 것은 시간뿐이다.
초록불이 켜지자 바로 깜빡이는 것을 보고는 급히 건널목을 건넌다. 지나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급히 뛰어 아슬하게 버스를 타고, 커피 한잔 느긋하게 마실 시간이 없어 테이크아웃 잔에 담은 커피를 든 채 사무실로 뛰어간다. 노트북을 열어 메일을 확인하고, 휴대전화를 꺼내어 SNS에 오른 새로운 글들을 확인한다. 오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급히 서류들을 챙기고 수첩을 꺼내어 회의실로 달려간다. 회의를 마치고 결과를 확인하고 자리로 돌아와 무심결에 시간을 본다. 시간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지난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심을 먹으며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한참이 남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이곳에 느린 것은 시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