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가 발화를 시작할 때,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
구멍.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작가 최원정의 신작 <구멍 난 얼굴(a hollow face)>(2022)에 뚫린 새카만 심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깊은 역사가 보인다. 그 역사는 페미니즘 철학이 주목해온 남성-여성, 정신-몸, 이성-감성, 사회-가정과 같은 이항조합으로 이루어진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모이라 게이튼스(gatens moira)가 그의 1991년 저서 <페미니즘과 철학: 차이와 평등에 대한 관점> 에서 주지한 바와 같이 얼핏 상관관계로 보이는 이 조합들은 기실 앞선 개념이 우위를 가지는 상하관계의 연결고리로 볼 수 있다.
최원정의 2021년도 개인전의 제목 <집안을 들여다보다(Looking into a HOME)>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의 회화들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가 1947년경 여성의 몸을 사적이고 제한적인 공간에 비유한 작품 <여성-집(femme-masion)>에서 사용한 것과 유사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전 전시가 여성의 몸을 가정-집 이라는 공간에 귀속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불화와 착취, 억압에 주목했다면, 이번 전시에서 최원정은 몸(신체)이라는 하위개념에 얼굴(정신)을 달아버리는 유쾌한 레지스탕스로 거듭난다.
얼굴을 지니게 된 몸들은 표정을 부여받는다. 행동하고 소비되는 대상에서 사유하고 표현하는 주체로 거듭난 신체들은 <절규하는 여인(A Screaming Woman)>(2022)에서처럼 온몸의 구멍을 발화하며 울부짖는다. 화면 안에는 세개의 표정이 있다. 머리로 보이는 신체에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과 유두와 음모, 음부로 이루어진 얼굴, 그리고 화면 우측에 치아와 목젖을 보이며 소리지르는 입이 그것이다. 세 개의 얼굴은 한 인물에서 비롯되었지만 각자 다른 지위를 지닌다. 평소 신체에 명령을 내리는 상위기관인 얼굴에 달린 표정은 눈을 상실하고 발언하기보다 포효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유의미한 표현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래에 보이는 또다른 얼굴이다. 눈처럼 보이는 그녀의 유두는 신체에 부여된 지위를 전복시키고 관객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벌린 입으로 적극적인 자기주장을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인물 중 가장 구상적인 얼굴을 지닌 것은 <변기에 앉은 남자(A Man on his Toilet)>(2022)에 등장하는 남성이다. 신체까지 확장되어 있는 <절규하는 여성>의 몸에 달린 얼굴과 달리, 그의 얼굴은 여전히 머리에만 존재하며 화면을 향해 찡그린다. 남성의 머리 아래에 달려있는 것이 고작인 그의 신체는 발화할 수 없고, 부속처럼 기능한다. 얼굴을 부여받지 못한 그의 몸은 털로 덮여 여전히 머리의 지배아래에 있는 수직적인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정작 말을 뱉어야 할 입은 항문과 결합한 듯 <절규하는 여인>의 여인의 입처럼 소리치지 못하고 작게 오므라든다. 얼굴이 오히려 신체와 결합하는 이러한 현상은 또다른 남성의 얼굴인 <그대의 초상(A portrait of you)>(2022)에서도 보여 진다. 마치 성기와 같이 부각된 그의 코 아래에서 여전히 그의 입은 항문처럼 보이며 크게 소리내지 못하고 신체화 되고있다.
이처럼 최원정은 여성의 신체에는 얼굴을 그려넣음으로써 목소리를 부여하고, 남성의 얼굴은 신체화 하여 침묵시키며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던 남성-여성, 머리-몸, 이성-감성 간 이원적 우위를 전복시킨다. 얼굴이 달린 여성의 몸은 단순히 여성-남성의 지위를 치환해 보자는 일차원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서열화되고 수직으로 정렬된 개념들에 질문을 던지며, 과연 그러한 우열이 정말 존재하는지를 관객에게 되묻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꽃봉오리 여인(A budding Maiden>(2022)에서 오롯이 서 있는 여인이 검고 어두운 가운데 꽃봉오리를 피우고 우리를 응시하며 던지는 질문은 어쩌면 사회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상정되고 있는 수많은 줄 세우기에 대한 반문일 수 있다. 이는 이전 전시에서 ‘정상가정’이라는 프레임으로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고 그것에 동조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에 일침을 날렸던 최원정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일관된 메시지로 보인다. 다시 생각해보라, 정말로 그러한가? 라는 질문 말이다.